남자의 말에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가족을 만나러 온 나에게 이곳을 알려준 남자의 의도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나의 뾰족한 말에 남자가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이곳은 사람들이 떠나기도, 머물기도 아주 잦은 곳이란다. 네 어머니의 가족들이 아직까지 그곳에 살고 있을지 알 수가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을 알려주는 거란다. 네 어머니의 가족들이 이곳에 터를 잡아 산다면 아주 다행이지만 혹시나 이미 이곳을 떠났다면 네가 지낼 곳이 없지 않니.”
나는 남자의 말에 가슴에 무언가가 쿵 하고 떨어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곳 역시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떠남이 쉬울 수가 있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에요. 그럴 일 없어요. 사람이 살고 떠나는 게 어떻게 잦을 수 있어요. 제가 살던 동네는 한번 터를 잡으면 계속 그 마을에서 살았는데 그곳과 여기가 무엇이 다르다고.”
“아이야. 네가 살던 곳과 이곳은 많이 다르단다. 이곳에는 바다를 통해 배를 타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곳이라. 바다를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주 많단다.”
“하…” 남자의 말에 나는 다시금 다리에 힘이 풀러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곳까지만 오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이미 터를 잡아 이곳에 자리 잡고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곳으로 가는 기차는 매일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묵고 내일 출발하자꾸나.”
‘똑. 똑. 똑’
“선생님.”
문을 두드리며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문을 여니 아까 보았던 아이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반가운 표정으로 아이들을 반겼다.
“잘 지냈니.”
“그럼요. 어머니도 아주 잘해주시고 너무 좋아요.”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던 아이가 말했다. 아이의 옆에는 나보다도 어려 보이는 아이가 서있었다.
“이 언니는 누구예요?”
아이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토닥이더니 내 앞으로 나와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난 철민이라고 해.”
“반가워. 그런데 아까 그 아주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거야?”
“아. 응. 여기 사는 모두가 가족이 없거든. 내 부모님은 사고로 두 분 다 돌아가셨고, 다른 아이들도 비슷비슷한 이유로 가족이 없어. 아주머니가 어머니처럼 우릴 돌봐주고 계시는데 우린 모두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어. 넌?”
“나도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그 소식을 어머니의 가족들에게 알려주려고 이곳으로 왔어.”
“그럼 넌 가족을 만나러 온 거구나. 난 선생님이 우리와 함께 지낼 친구를 데리고 오신 거라 생각했어.”
“아니야. 내일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갈 거야.”
“이제 시간이 늦었으니 너희도 방으로 들어가거라. 너도 푹 쉬어야 내일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으니 어서 잘 준비를 하고.”
남자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자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남자는 이부자리 두 개를 펴면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이불은 아주 따뜻하고 포근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만에 편하게 잠자리에 드는 건지… 나는 이불의 감촉을 잊지 않으려고 이불을 계속 쓰다듬었다. 오늘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처럼 계속 고생스럽게 주소를 찾으러 가야 했겠지.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남자에게 말했다.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나의 말에 남자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내일 일찍 출발해야 하니 어서 자렴.”
집을 떠나 두 달 만에 배부르게 먹고 따뜻한 이불에서 잠이 들어서인지 나는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부터 분주하게 준비를 하는 남자의 소리에 눈이 떠졌다. 아직 밖이 환해지지 않은 새벽인데 남자는 벌써 나갈 준비를 마친 후였다.
“맞게 일어났구나. 어서 나가자꾸나. 아침은 기차역 주변에서 먹어야겠다.”
남자와 나 외에는 아직 일어난 사람이 없는 듯 집 안은 아주 조용했다. 내가 준비를 마친 것을 본 남자는 방 책상 위에 봉투 하나를 놓아두고는 조심스럽게 대문을 나섰다. 조심스러운 남자의 모습에 나 역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대문을 나섰다. 대문을 나와 골목을 걸으며 남자가 말했다.
“이곳에서 아침까지 얻어먹을 수 없어 더 일찍 나왔단다. 아주머니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을 바다에서 잃었단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혼자서 키워낸 분인데 아들마저도 바다에서 잃었지. 아이들을 돌보면서 바다에서 잃은 아들을 잊어보려 노력하는 분이란다. 어린 아들을 돌보듯 저 아이들을 돌보는데 여자 혼자서 아이들 셋을 돌보기가 만만치 않아. 아마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아침을 차려주려고 자신이 먹을 음식을 쓰셨을 거야.”
“좋은 분이네요. 어머니에게 들은 바다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바다는 아주 무섭네요.”
“하하. 바다가 화를 낼 때는 무섭지. 하지만 항상 무섭지만은 않단다. 네 어머니에게 들은 바다는 어땠니.”
“어머니는 바람이 불면 짠 소금냄새가 나는데 그 냄새가 좋다고 했어요. 그런데 어제 기차에서 내려 맡은 냄새는 제가 알고 있던 소금냄새가 아니었어요. 뭔가 비릿한 냄새도 나고 제가 생각했던 소금냄새가 아니었어요.”
“하하하. 아마 어머니가 말씀하신 소금냄새가 그 뜻이 아닐 게다. 아마 너도 이곳에서 더 있어보면 어머니가 말씀하신 뜻을 알 수 있을 것이야.”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기차역에 다다랐다. 남자는 미리 사둔 표를 역무원에게 보여주며 기차에 올랐다. 몰래 숨어서가 아닌 표를 사 당당하게 자리에 앉아 가는 기차는 몰래 타고 갔을 때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달리는 기차 창문에는 정말 어머니가 이야기한 끝이 안 보이는 큰 바다가 보였다. 창문을 스쳐가는 바람에는 어제와는 다른 냄새가 났다. 언젠가 집에 있는 소금에서 맡은 소금냄새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소금냄새. 이게 어머니가 이야기한 소금냄새가 맞는 걸까.
몇 시간을 달려 기차에서 내리고 남자는 나에게서 종이를 받아 주소를 읽으며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한 번씩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며 남자는 어제와는 다른 골목길을 걷고 또 걸었다. 분명 어제도 처음 본 주택가였는데 오늘은 더 복잡하고 미로 같은 골목이 계속되고 있었다. 꼭 산을 오르듯 걷고 또 걷다 보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무거워졌다. 하지만 곧 어머니의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무거운 다리를 끌고 남자의 뒤를 따라 계속 걸었다. 한참을 걷던 남자가 골목 끝 집 대문 앞에 멈춰 섰다.
[쾅. 쾅. 쾅]
남자는 대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집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남자는 나를 힐긋 보더니 더 크게 대문을 두드렸다. 대문을 두드리는 큰 소리에도 집 안에서는 조금의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들리지 않는 인기척에 불안해져 계속해서 대문을 두드렸다.
“그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
계속 쾅쾅거리는 소리에 옆 집에서 대문을 열고 한 아주머니가 고개를 내밀었다. 시끄러운 소리를 더 참을 수 없어 밖으로 나왔다는 아주머니는 대문 앞에 서있는 나와 남자를 경계심 어린 눈으로 살폈다. 남자는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며 물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을 아십니까.”
“혹시 김연이를 아세요? 여기 편지에 있는 김연이가 있어요. 김연이는 내 어머니예요. 어머니가 김순이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김순이가 어머니의 동생이래요.”
“여기 살던 사람들? 알죠. 여기에 할머니와 딸, 아들이 살고 있었어요. 이 골목에서 꽤 잘 살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이곳을 떠난 지 한참 되었는데 왜 찾는 거예요?
“이 아이의 어머니가 이곳에 살던 할머님의 딸이라 해서 찾아왔습니다.”
남자의 말에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예전에 딸 하나를 멀리 시집을 보냈다고 들었어요. 그때는 너무 가난해서 첫째 딸을 멀리 시집을 보냈다고. 그런데 계속 소식을 주고받지는 않았나 보네요. 그 사람들 여기 떠난 지 몇 년은 됐어요. 할머니가 여기에서 장사로 큰돈을 벌었죠. 이 골목에서 잘 살던 사람들이었는데 언제부턴가 할머니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더라고. 집도 못 찾고, 자식들도 못 알아보고. 그러다가 바다에 빠져 죽었어요. 할머니가 죽으니까 자식들도 이곳을 떠났고.”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머니의 소식을 어머니의 가족들에게 알려준다는 생각으로 이곳까지 왔는데 이미 모두가 떠난 뒤라니. 그 자리에 푹 주저앉은 나를 보고 남자가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혹시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습니까.”
남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나의 눈물 고인 눈을 본 아주머니가 내 앞에 주저앉고 말했다.
“그 사람들은 일찍이 여기를 떠났단다. 여기 살던 할머니가 죽고 할머니의 재산들을 가지고 자식들이 뿔뿔이 흩어졌어. 김순이라는 사람도 할머니의 자식 중 딸의 이름 같은데 그 아들도 딸도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구나”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적어도 한 사람은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모든 기대가 무너져 버린 듯했다.
어머니의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는 슬픔과 어머니의 가족들에게 어머니의 소식을 알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이곳을 떠나면서도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은 거 같은 그 사람들에 대한 원망…그리고 어머니를 잃은 나에게 더 이상 기댈 곳이 하나도 없다는 좌절…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멍하게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던 남자가 옆집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는 내 손을 잡고 그 골목을 벗어났다.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남자의 손에 이끌려 계속 걷고 또 걸었다. 한참을 걷다 남자에게 말했다.
“모두가 떠났어요. 이제 아무도 만날 수 없어요.”
“그래. 하지만 네가 더 자라고 기회가 온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지 않겠니.”
“그럴까요. 어머니의 가족들에게 어머니가 가족들을 많이 그리워했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래”
“그런데 어머니의 가족들은 어머니를 그리워하지 않았었나 봐요. 어머니는 항상 편지를 보면서 집이 너무 가난해 첫째이자 맏딸인 어머니를 아주 멀리 시집을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이해했다고. 어머니는 시집을 간 후 한 번도 어머니의 가족들을 만날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었대요. 단 한번. 단 한번 온 저 편지를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소중하게 간직했어요. 이곳을 떠날 때 어머니의 가족들은 어머니를 생각했을까요.”
“아마도. 단 한 번이지만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낸 것을 보면 멀리 살고 있는 첫째 딸이자 형제인 어머니의 안부가 궁금했지 때문이겠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먹고살기가 힘들어 집 안에 입 하나를 줄이기 위해 어린 딸을 멀리 시집을 보내고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걸까. 아까 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머니가 시집을 가고 할머니가 큰돈을 벌어 잘 살게 되었는데 그때도 어머니의 소식이 궁금하지 않았던 걸까.
어머니는 이런 가족들의 생각을 알고 있었을까. 혼자만 가족들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남자의 손을 잡고 한참을 걸으니 바다가 보인다. 바람이 머리를 스치는데 바람에서 어제와는 다른 냄새가 났다.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다 남자의 손을 놓고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차가운 바닷물이 다리를 적시고 모래가 발을 간지럽히고 하얀 파도가 나를 채찍질하며 휘둘렸다.
한참을 서 바다를 느끼다 품 안에 소중하게 가지고 있던 어머니의 종이를 바다에 던졌다. 종이는 파도에 쓸려 끝이 보이지 않는 저 멀리 흘러가다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나는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바람에게 느끼는 바다냄새.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제야 어머니가 얘기했던 짜디 짠 소금의 냄새. 그 의미를 알 거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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