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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 Oct 30. 2016

제가 시를 써 보려고 하는데요.

문학에 한 발짝 씩 다가가는 일.

요즘 시를 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 같은 것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른 매거진 ‘독백’의 최근 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시를, 시 같은 것을 쓰려는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는 것도 같고, 생각해보자면 끝도 없는 것 같다.      

글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끼면 느낄수록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다. 오늘 먹은 맛있는 음식이나 즐거웠던 일들부터 시작하여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알쏭달쏭한 기분, 사람과 사람의 관계까지 매 순간마다 다가오는 감정들을 색다르게 해석하고 또 표현하고 싶어 진다. 글을 전문적으로 배우거나 깊이 파지는 않았으나 일기처럼 시작했던 작은 문장들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접근해보려 애를 쓰고 있다. 어쩌다 보니 소박하고 작게 나만의 책도 만들었다. 사실은 그렇게 책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나는 글이라는 것을 재미 그 이상과 이하 어딘가에 두고 생각했던 것 같다. 조금 깊은 취미, 나를 더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도구 정도라 하면 맞을까. 그런데 이게 쓰다 보니 그런 건지 혹은 뒤늦게 깨달은 건지 모르게 점점 더 깊어지더란 말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소설도, 시도, 수필도 쓰고자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러면서는 나의 글을 읽고, 댓글로 감상을 남겨주고, 공유한 사람들에게도 큰 고마움을 느꼈다. 언젠가부터 나는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고선 어떠한 것이라도 남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었다.     


가을이 되면서부터 글을 향한 열망이 커지는 것을 느끼던 차에 마침 누군가 나에게 시집을 한 권 추천해주었다. 시가 어떤 것인지 한 번 볼까, 생각했었는데 결론이 '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거였다. 이렇게 만들어도 시고 저렇게 만들어도 시가 되는데 그게 참 어려운 것이, 절묘한 느낌이 없으면 그저 글 덩어리가 된다는 것이 조금 무섭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가 아니겠는가. 그저 하는 것. 결국 이전부터 쓰고 싶었던 시를 나도 써 보자고 마음먹었다.     


시에 다가가려고 처음으로 한 것은 검색이었다. ‘시 쓰는 법’과 같이 검색하여 방법에 먼저 다가갔다. 어떻게 써야 시를 쓰는 건지 알아야 첫 줄이라도 쓰지 않겠는가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검색해도 명확히 나오지 않았다. 요즈음에 들어서 특히나 시는 그만의 형태가 없다고 한다. 하기야 내가 읽었던 수많은 시들에 공통점이란 없었으니까. 결국 또다시 원점이었다. 무언가를 써야만 다음 길이 보이겠구나, 싶었다.    


결국 나는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첫 글. 돛 없는 배처럼 휩쓸리며 적은 결과물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반, 그리고 공들인 첫 시여서 애틋한 것이 반. 물론 누군가가 보면 비웃을지도 모르는 글 뭉태기 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쓰고 나니 아, 누군가의 평가가 절실하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그 누가 아마추어 글을 그토록 진지하게 평가해 주는가. 하던 차에 발견한 것이 바로 <시를 생각하고, 말하고, 퍼트리다>라는 세미나였다.    



특히나 황인찬 시인은 내가 처음으로 마음을 준 시인이기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구관조 씻기기라는 시집을 처음 읽게 되었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니 말이다.

그런 저런 이유들을 가지고 나는 이 포스터를 본 다음날에 진행되는 세미나에 덜컥 신청을 해 버렸다. 마침 시간도 기가 막히게 맞아 들어가 다행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출석 서명을 한 뒤, 드라이플라워를 붙인 엽서를 하나씩 떼어가라고 했다. 정갈하게 적힌 시와 아기자기한 드라이플라워가 참 잘 어울렸다.



그중 내가 고른 것은 유희경 시인의 <숲>이라는 시였다. 왠지 모르게 요즘 날씨와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곧이어 세 시인이 차례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적으며 깊이 새겨나갔다. 아래는 내가 세미나에서 들은 것 중 인상 깊었던 내용들이다.


1. 황 인찬 시인


오늘날처럼 짧은 글과 강렬한 이미지가 각광받는 시대의 문학은 당연히 소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학은 각 잡고 읽어야 하고, 읽으면서 머리와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하니까요.  

  

시는 단순히 글에서 발화되는 감정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구조’를 통해서죠. 물론 한 구절만 떼어 와도 서정 정이며 굉장히 그럴 듯 해 보이는 구석이 있으나 구조를 훼손하는 것은 그 시를 훼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문학이 소비되는 방식은 바로 이미지입니다. 다양한 sns 속 이미지들이 바로 그것이죠. (예시) 저는 그것이 재미있다가도 금방 재미없어집니다.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쉬운 시는 항상 있었습니다. 제가 시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불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고, 물음표가 생겼습니다. 그 뒤에는 이해하고 싶었고 그렇다면 써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공감이 아닌 놀라움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시를 읽으며 느낀 즐거움입니다.    

시에 어려운 말들이 참 많죠, 사실 쉬운 말을 어렵게 적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엔 생각보다도 더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훼손되는 감정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잘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것이 답답합니다. 좋아요 슬퍼요, 그런 말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2. 오 은 시인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1. 호기심, 2. 같은 것을 다르게 보려고 애쓰는 노력. 똑같은 길을 걸어도 틈을 만드는 것입니다.    


일상의 균열이 인생의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3. 유 희경 시인


시는 왜 읽어야 하나요? 너무 모호하고 애매해서 알 수가 없습니다,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시라는 것은 a를 a라고도, a를 z라고도 하며 그것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어떤 이의 슬픔과 또 다른 이의 슬픔은 모두 다릅니다. 우리가 과연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몇 개나 있을까요. 시는 바로 이렇게 모두 다른 것들 중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찾는 일입니다.   

  

시는 외면하고 싶은 것을 제공합니다. 모호하고 어렵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면 이상하게 아름답기도 합니다. 바로 마음을 언어로 구조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시는 왜 읽어야 하나요? 너무 모호하고 애매해서 알 수가 없습니다,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시라는 것은 a를 a라고도, a를 z라고도 하며 그것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어떤 이의 슬픔과 또 다른 이의 슬픔은 모두 다릅니다. 우리가 과연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몇 개나 있을까요. 시는 바로 이렇게 모두 다른 것들 중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찾는 일입니다.     



 세 분 다 모두 유쾌하고 즐겁게 이야기해 주셔서 한 순간의 지루함도 없이 경청하며 들었다. (세미나 내용은 당연히 내가 적은 것보다도 훨씬 더 풍성했다!) 이후 세 분과 함께 토크 및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을 때도 즐겁고 또 소중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 주셨다.




세미나 이후, 다시 한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글을 쓰는 이유의 본질과도 관련이 있다. 바로 내 마음, 내 상황을 정확하게 아는 것. 그것을 단순한 감정으로 치부하지 않는 것.

유희경 시인이 시가 마음을 언어로 구조화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아마도 내 마음을 끊임없이 글로 적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지럽고 또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나는 자신을 아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또 답을 내리고, 신념을 세우고 그것에 맞추어 행동하고, 행동에 또다시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리며 신념을 세우고 행동해야 진정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것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는 이런 나의 가치관과 정말로 부합하는 문학이다. 어쩌면 나는 이전부터 시를 쓰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닐까.


처음엔 단순히 ‘시’라는 것을 쓰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이, 이제는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그로 인하여 누군가에게 이런 감정도 있다고, 혹은 당신도 나와 같으냐고 묻고 싶어 졌다. 세상에는 정말로 많은 슬픔과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몰랐던 슬픔과 기쁨을 발견하고, 그것을 적을 것이다. 더불어, 시를 쓰고자 하지만 두려워하는 많은 이들에게도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난히도 추운 가을이다. 어쩌면 이미 겨울이 시작된 지도 모르겠다. 또 많이 힘겨운 날들이다. 모든 상황이 우리를 옥죄어 갈 수록 더욱 굳건한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앞서기 위해 애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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