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책을 읽어요, 나 홀로 하려던 문학의 밤.
<문학의 밤>이 뭐냐고?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은근히 고민되지만 또 은근히 재밌는 포스터 만들기.
이번에는 시간에 쫒기지 않기 위하여 미리 만들었다.
이번에 읽은 책 들이다.
내 것은 쇼코의 미소,
함께 하게 된 몽블님의 것은
내일도 사랑을 할 딸에게.
마음 단단히 먹고선
나는 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제 2회 <문학의 밤>을 열기로 했다. 이유는 그 때와 비슷하게, 예약해 두었던 책을 빌려 왔기 때문이다. 저번 때 부랴부랴 포스터를 만드느라 머리를 쥐어뜯을 뻔 했던 지라, 이번에는 미리 포스터도 만들어 놓고 시작했다.
사실 애초에 계획했던 프로그램(?)은 그저 혼자 책을 읽는 게 끝이었다. 정말 단순히 혼자 읽고 혼자 감상을 쓰는 것. 남들 눈에 보면 결국 그저 책 읽는 행위. 그러니까 아주 일상적인 책 읽기와 다름이 없다는 거다.
그러나 책 한 권 읽기 쉽지 않은 요즘이라 남다른 결심을 하기 위해 포스터 까지 만드는 수고를 자처했다. 고작 손 만 한 스마트 폰 속에 짧고 재미있는 글들이 널려 있는데다가, 대부분 이미지와 영상이 주를 이루니 글자가 몇 되지 않는데도 그것들조차 읽기 버거워 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단한 결심 없이 저번 1회 <문학의 밤>을 시작했을 때, 의도치 않게 은비 언니와 함께하게 되었다. 함께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런 형식이 없었기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즐겁게 시간을 보냈었다.
<문학의 밤>이 끝나고, 브런치에 글을 올렸더랜다. 재밌어서, 다행히도 아직까지 이렇게 노는 게 즐거워서 글을 썼다. 거의 혼자 노는, 이런 답지 않은 행사에 사람들이 무슨 반응이나 있을까? 싶었던 게 무색하게도 연락을 달라던 분들도, 또 재밌어 보인다고 말해 주신 분들도 계셔서 아, 나 아직까지는 재밌게 살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꼭 다시 해야지, 누군가 함께 하지 않아도 2회도 3회도 꼭 해야지, 하고 다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오늘, 또 한 번 문학의 밤을 열자, 하고 마음을 먹고선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함께 하겠느냐고 먼저 물었다. 애초에 그들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나이니, 오늘은 왠지 혼자서 <문학의 밤>을 보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브런치 댓글이 생각났다. 그 때 댓글로 다음 번 참여하고 싶다고 말씀하신 두 분이 있었는데, 사실 정말로 연락 드려도 괜찮을까, 싶어서 망설였지만 두 분에게도 용감히 연락을 드렸다. 결국 예전부터 마음을 주고받았던 몽블 님과 함께 <문학의 밤>을 하게 되었다
글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 전해드리고 싶다 :)
이번에 읽을 책인 쇼코의 미소라는 책은 사실 미리 앞 쪽을 조금 읽어 보았다. 여러 편이 모여 있기 때문에 끊어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읽은 부분 역시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처음 책을 펴는 그 마음으로 돌아가 책장을 펼쳤다. 사실 나는 책이나 영화, 드라마 같은 것들을 다시 보기를 꺼려하는 타입인데도 이 책은 왠지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든 이유는 따습고 습기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도 한껏 투명했지만 공허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쇼코의 미소
+ 나는 차가운 모래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9, 쇼코의 미소)
이런 표현들이 등장해 마음 속 한 구석을 지잉, 울리곤 한다. 때로는 지독하다 못해 비겁하기 까지 한 현실에 몸서리치다가도 어느 순간 몸도 마음도 다시 뜨듯해 지곤 하는 게 쇼코의 미소라는 책의 첫 이야기, 쇼코의 미소 다.
+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24)
씬짜오, 씬짜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 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89)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마당에 우두커니 서 있던 이모를 처음 봤을 때부터 엄마는 순애 이모가 좋았다. 언니라는 말의 울림이, 그 다정하고도 애틋하게 들리는 말이 엄마는 좋았다. (98)
그래, 나도 언니, 하고 부르는 어감이 어느 순간부터 간질거렸다. 니은과 니은의 울림이 마음 한 켠에서 자꾸만 메아리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 해옥아, 잘 살아. 이모는 뭍에 걸린 배를 호수로 밀어내듯이 그 말을 했다.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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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연락을 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어떠한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충분히, 마음이 동요한다.
책을 읽은 지 한 시간이 되었지만, 사실 진도는 많이 나가지 못했다. 곱씹고 곱씹느라 앞뒤를 왔다 갔다 반복한 탓이다.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흐르는 물. 같다고 생각했다. 느릿느릿 흘러가는 투명한 그런 물. 무엇 하나 깊게 찔러오는 법 없이, 알고 보니 마음 깊숙이 찔려 있는.
또 호흡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살아 숨 쉬는 구나, 어쩌면 죽어있는 게 내 쪽인가 싶을 정도로 그들은 선명히도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아무도 온전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은 사람들의 어쩌면 그저 그럴 수 있는 이야기 들이다. 그런 이야기 들이 온도를 가지게 되기까지 작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감정은 어쩔 땐 온전히 이해가 되다가도, 어쩌면 섣부른 이해가 아닌가 하며 알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진도가 지지부진 했지. 머릿속에서 소유와 쇼코가, 투이와 응웬 아줌마가, 해옥이와 순애 이모가, 한지와 영주가, 소은이와 미진 선배, 그리고 율랴가 제각각 삶을 살아보겠다고 떠들어대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그들이 다섯 개의 삶을 내 머릿속에서 살아가려 하는 것을 깨닫자, 더 이상 다른 이들을 내 머릿속에 담아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들이 편안해 질 때 까지 다른 이들의 이야기는 잠시 보류하는 걸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이 되고 나서야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누구보다도 초연한 모습의 그들이 어쩌면 삶에 가장 애착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 같아서, 나는 알지 못하는 것들을 그들은 알고 있는 것만 같아서
몽블 님도 한시 즈음에 주무셨고, 나는 두시가 되어서야 자기로 했다. 정말 즐거운 독서의 시간이었다. 좋은 책이 함께 여서 훨씬 좋았던, 제 2 회 <문학의 밤>.
오늘은 여기서,
막을 내립니다!
ps. 책의 뒷 이야기
<문학의 밤>이 열렸던 날이 지나고, 일요일도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서 나는 나머지를 모두 읽었다. 나머지라고 해 봤자 미카엘라와 비밀, 두 이야기가 끝이었지만.
미카엘라라는 이야기와 비밀이라는 이야기는 앞 다섯 이야기들보다 더 순수한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그런 것. 삶이라는 것.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것…. 힘이 들 때, 허무 할 때, 그리고 정말 언제나 이 책을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렇게나 투명하고 순수한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의문 하나를 남겨 놓고 책을 덮었다.
그렇게 하여 저번과 같이 조용하고 은밀하게 시작되어 조용하고 은밀하게 끝을 맺었다. 그리고 나는 또 읽고 싶었던 책을 빌리러 왔다!
고등학생 때에 일본 소설에 빠져 (그것도 거의 추리 물에만) 하루에 네 다섯 권씩 닥치는 대로 읽었던 때가 있었다. 그 땐 책을 읽는다는 개념 보단 훑는다는 느낌으로 읽어댔었다. 오죽하면 읽을 책이 없어 신권 나오기를 기다렸을 정도로 많은 책을 읽었다.
그 이후에 책을 읽은 기억이 많지 않다. 시간 상의 이유로, 약속을 핑계로 자연스럽게 책들과 멀어졌고 그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바가 크다.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 지는 것은 물론이요, 다양한 울림을 선사해 주니 자연스럽게 느끼는 바가 많아지고 그것이 내 안에서 또 다른 울림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더불어 가을 역시 독서의 계절이 아닌가.
혼자, 또 같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