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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린 Sep 02. 2024

스르륵스르륵 소리의 정체

다리 짧은 고양이

불과 며칠 전에 일어난 일이다. 보통 일찍 자는 편이지만, 쉬는 날 전날에는 오후에도 커피를 마시고 늦게 잠드는 편이다. 그날도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던 중이었다. 어디선가 ‘스르륵스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순금이가 장난감을 끌고 다니는 소린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소리가 1분, 2분, 3분... 약 5분쯤 계속되니 이상했다.


새벽 1시라 어두웠지만 나는 불도 안 켠 채 어둠에 눈이 곧 익숙해지겠지란 생각으로 소리를 따라갔더랬다. 도착한 곳은 큰방의 테이블 겸 책상. 그 위에서 무언가 스르륵거리며 쓸려 다니고 있었다. 물론 그 무언가는 순금이었다!


이제 어둠에 눈에 익숙해지고 모든 게 다 보였다. 순금이가 쓸려 다닌 이유는 실내 자전거에 묶어 둔 손수건에 앞발 발톱이 걸린 탓이었다. 순금이는 발톱을 빼려고 발버둥 치는 중이었다. 서둘러 발톱을 빼 주었다. 손수건은 당장 버리고, 오밤중이었지만 발톱도 억지로 깎였다.

순금이는 비교적 관리를 잘 받는 편이다. 빗질은 매우 좋아하고 물티슈 세수도 싫어하진 않는다. 양치는 싫어하지만 억지로 하면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발톱 깎기는 전쟁 그 자체이다.


순금이는 ‘먼치킨’이라는 앞다리가 짧은 고양이다. 뒷다리보다 앞다리가 훨씬 짧기 때문에 신체적인 한계로 다른 고양이들보다 점프 능력이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순금이는 앞다리에 유독 예민하다. 뒷발 발톱은 내 무릎에 있을 때 한두 개 정도 깎을 수 있지만, 앞발은 만지자마자 물려고 하거나 우다다 도망가 버린다. 예측하기로 순금이는 짧은 앞다리가 콤플렉스 같다.


나에게도 콤플렉스가 있다. 아니, 많다. 모두에게 말할 수 있는 콤플렉스를 하나 말하자면 ‘달리지 못한다’는 거다. 몇 년 전부터 땅에서 다리가 잘 안 떨어져 달리기가 어려웠다(사실 어릴 때부터 달리기 능력은 최하였다). 극복하고자 러닝 머신 달리기를 시도했는데, 오히려 족저 근막염에 걸려 두 달간 고생한 경험이 있다. 까치발로 다녔던 그 시간을 떠올리면 정말이지 끔찍하다.


다른 콤플렉스들도 마찬가지다. 극복하려고 노력해 극복한 것도 있지만, 안 되는 건 오히려 역풍을 맞곤 했다. 그래서 내가 족저 근막을 앓고 난 후 내린 이상한 결론은 ‘그냥 살자’다. 이미 사는 것 자체가 노력할 게 너무 많으니 콤플렉스고 나발이고 그냥 지금을 즐기며 살자!

“근데 내 발톱은 왜 깎냐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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