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2학기 과학 2단원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과학 2단원의 주제는 <물의 상태 변화>이다. 단원 내 성취기준들 중에는 이러한 문장이 있다.
[4과14-02] 물이 증발할 때와 끓을 때의 변화를 관찰하여 차이점을 알고, 이와 관련된 예를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다.
물은 높은 온도로 인해 기체로 변화한다. 그러한 변화에는, '증발'과 '끓음'이라는 두 가지의 현상이 존재한다.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 둘을 구별하지만(라면물을 '증발'시킨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의 개념적 차이가 정확히 무엇이냐고 하면 한 템포 멈춰서 잠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나도 순간 멈칫해서 교과서를 펼쳐 보았다.
증발과 끓음의 개념에는 겹치는 부분이 존재한다. 바로 '액체가 표면에서 기체로 변하는' 부분이다. 두 현상 모두 액체가 기체로 변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결과론적으로 두 현상은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증발과 끓음의 근본적 차이는 바로 '기체로 변하는 위치'에 기인한다.
증발 : 액체가 표면에서 기체로 변하는 현상.
끓음 : 액체가 표면과 속에서 기체로 변하는 현상.
끓음은 증발과 달리 표면 속에서도 기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현상을 육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바로, 보글보글 피어나는 '기포'를 통해서이다. 즉, 끓음은 '기포'라는 존재를 통해 액체의 변화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다. 끓음은 현상의 지속성을 가리킨다. 물 안에서 거칠게 요동치는 기포의 장엄한 투쟁을 목격하며, 우리는 이에 끓음이라는 언어를 부여한다.
이에 반해, 증발은 액체가 표면에서 기체로 변하는 현상이다. 기체, 특히 수증기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여름철 밖에 널어둔 빨래에서 물기가 빠져나가는 순간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다. 기화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증발은 현상의 완결성에 무게를 둔다. 우리는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없기에, 기화가 발생한 후 줄어든 물의 양을 보며 현상의 발생을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우리는 남은 흔적에서 포착된 증거를 토대로 사건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그러한 점에서, 증발은 다소 애상적이다. 마치 떠나간 연인이 있던 빈자리에서 그의 기억을 떠올리듯, 빈 공허 속에서 우리는 존재를 기억하고 아련함을 느낀다.
흔히 감정을 표현함에 있어 '끓음'의 개념을 활용하곤 한다. '지금 사랑이 끓어올라.' '화가 부글부글 끓고 있어.'
끓음은 현상이 발생하는 순간의 지속을 나타내므로, 감정의 끓음은 곧 현재 몸부림치는 감정의 극렬한 상태를 강조한다. 추상적인 관념에 '생(生)'의 이미지를 부여하는 끓음은 그렇기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청춘의 끓는 피.' 끓음은 삶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 어떤 감정이나 기분,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고 점점 옅어진다. 죽을 것만 같던 실연의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씁쓸한 추억이 되며, 어느새 삶의 의지는 자연스럽게 복구된다.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가고 우리는 바쁜 삶에 치여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감정, 기분은 어느새 증발된 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체가 우리 주변에 언제나 존재하듯 그날들의 추억과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바쁜 일상 속에서 미처 인식하지 못하다, 가끔 그들의 부재가 남긴 흔적을 통해 아련히 떠올릴 뿐이다.
끓음은 영원할 수 없다. 물은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이고, 냄비의 바닥이 드러날 때, 마지막 기포는 하늘로 유유히 날아간다. 하지만 격렬하게 흔들리던 기포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잔존하여 흐르고 있다. 삶 역시 그러한 끓음과 증발의 과정이 아닐까. 미친 듯이 끓어오르다가도, 언젠가는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하지만 여전히 곁에 존재하여 가끔씩 빈자리를 통해 떠오르게끔 하는 기억들. 그러한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켜켜이 채워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