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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정 Jul 08. 2024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사 산책로

구 러시아공사관 / 중명전 / 이화박물관 (24. 6. 22.)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절대 반복되지 않아야 할 역사도 있다. 우리가 아픈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가 역사를 만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책과 미디어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배우는 방법이 있고, 현장을 방문하여 역사적 사고력을 기르는 적극적인 방법도 있다. ‘역사적 사고력’이란 역사적 사건의 원인과 결과, 영향 등을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우리의 국권과 문화를 빼앗기고 조선의 과거와 현재를 부정당한 시기이다. 서울시 중구 정동길을 걷다 보면 나라를 잃은 슬픈 역사와 민족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비 오는 주말, 역사 여행객들은 우산을 들고 캐나다 대사관 앞에 있는 커다란 회화나무 부근에 모였다.    


 

“여러분, 만나서 반가워요. 슬픈 역사 여행길을 가려던 참인데 마침 비가 오네요. 뒤에 보이는 나무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좋아했다는 회화나무예요. 이 나무가 몇 살이나 됐을 것 같나요?”

“200살이요.”

“300살이요.”     


아이들은 저마다 제법 많은 나이를 짐작했으나 모두 땡.

정동길을 덮고 있는 회화나무는 약 570년이 된 그야말로 노거수(老巨樹)였다.    


“이 나무는 1976년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되었어요. 조선 초부터 대한제국을 지나 일제강점기,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동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는 친구죠. 그러면 우리 오래된 나무가 전해주는 역사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아관파천 (1896. 2. ~ 1897. 2.)

빗길 속을 걸어 도착한 첫 번째 역사 현장은 정동공원 안에 있었다.     



저 하얀색 건물 보이나요?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러시아 공사관은 한국전쟁 때 불타고 탑 부분과 지하 2층만 남아 있었어요. 그것을 1973년에 복원한 거지요. 이 건물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는데 혹시 아는 사람 있나요?”     

“아관파천?”     


아이들은 아리송한지 대답에 물음표를 달았다.     


“맞아요. 당시 러시아는 한자로 아라사(俄羅斯)라고 표기했어요. 아관파천은 말 그대로 임금이 도성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란한 걸 말해요.”    

 

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는 약 1년간 조선의 왕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다. 국왕이 러시아 공사관에 체류하고 있는 1년간 나라는 온전할 리 없었다. 러시아는 정치 깊숙이 관여하며 여러 이권을 거머쥐었다.    

 

아관파천의 목적은 일본의 세력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외세를 등에 업고 나라를 지키려 했던 것은 자주성이 결여된 소극적 대책은 아니었을까.     


을사늑약 (1905)

일본의 국권 침탈은 점차 구체화되었다. 이번에는 치욕스러운 역사의 현장을 방문했다.    


 


“여러분, 중명전 곳곳에서 오얏꽃(자두꽃) 무늬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오얏꽃은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실제로 보면 하얀 눈꽃송이처럼 깨끗하고 예뻐요. 하지만 우리가 이번에 가 볼 곳은 꽃처럼 향기로운 곳은 아니랍니다.”     


건물 입구를 지나 왼편으로 들어가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밀랍 인형들이 마주하고 있다. 1905년 11월 17일 저녁 8시경부터 18일 새벽까지 이어진 을사늑약 강제 체결 현장을 재현한 것이다.

해설사 선생님은 인형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여러분 저기 조선의 식민지화를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 보이죠? 그의 오른편에 앉은 대신들의 을사조약 동의를 시작으로 대한제국은 망국으로 향하게 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설명할 때마다 화가 나네요. 을사오적(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중 한 명인 박제순이 조약에 서명하며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일제의 보호국, 사실상 일제의 식민지가 됩니다.”     


아이들은 왜 그들이 친일을 택했는지, 친일파의 후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었다. 개인의 욕심으로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얼마나 비열한 일인지, 그로 인해 후손들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유관순 (1902. 12. ~ 1920. 9.)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면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그에 맞서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신 독립 열사를 만나러 이화박물관을 찾았다.   


  

“교실 뒤쪽을 한번 볼래요? 우리가 아는 분이 있죠?”

“유관순 열사요.”  

   

모두 가슴 뜨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이화학당은 1886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이에요. 이곳에서 민족애와 독립 정신을 배운 유관순 열사는 우리가 존경하는 독립운동가가 되지요.”    

 

앳된 얼굴을 한 유관순 열사의 사진 앞에 앉아 그날의 함성을 가만히 떠올려 본다.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그리고 역사적 사고(思考)


우리가 일제강점기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마,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를 빼앗을 수 없게 강국이 됐으면 좋겠어요.”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국력을 키우는 것이 지금과 미래의 우리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동 도보 탐방은 서울시 중구청 홈페이지(https://www.junggu.seoul.kr)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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