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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하 Jun 11. 2024

사랑 없이 사랑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나는 지금껏 사랑, 연애, 성, 결혼, 이혼, 이런 주제들에 대해 내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써오고 있었다. 나의 생각은 주로 과거 사랑에 관한 나의 경험과 내가 책을 읽고 배운 생각을 정리하는 형태였다. 나는 관념적인 글을 싫어한다.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글을 싫어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관념적인 글을 쓰고 있었음을 발견한다. 내가 아는 사랑이라는 것이 결혼 전 연애경험과 짝사랑 아니면 누군가의 소개를 통해 썸을 타는 정도의 경험이다. 그게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고 이혼 후 새로 만나게 된 사람들과 느꼈던 경험이 내 글쓰기 재료의 전부이다. 이 정도의 경험을 가지고 사랑에 관한 글을 쓴다는 건 부족한 재료를 가지고 잔치상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시작부터 건대기가 없는 멀건 국물과 같은 것이다. 진한 사골 같은 국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일단 좋은 고기가 많이 필요하다. 


나의 글은 마치 이미 다 우려낸 사골뼈에 물을 다시 붓고 2번째 고아내듯 국물을 짜아내고 있다. 나의 글에는 나의 경험이 부족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경험이 없이 과거의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관념적 사고를 통해 뭔가를 가공생산하는 느낌이다. 질 좋은 고기를 요리할 때는 양념이 필요 없다. 약간의 소금과 후추만 있어도 훌륭한 요리가 된다. 마치 나의 글은 싸구려재료를 가지고 진한 관념이라는 양념과 얄팍한 글 솜씨라는 presentation을 통해 그럴듯하게 보이는 Foodcourt 음식과 비슷하다. 우리가 시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름다운 언어자체보다는 그들의 생각과 특히 자신의 시를 삶으로 살아가는 시인다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는 자신이 쓰는 글을 살아내야 한다. 내가 사랑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면 난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사랑에 빠져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나의 글은 내 머릿속의 상상과 관념이 빚어낸 깨지기 쉬운 얇은 도자기에 불과하다. 


내가 이런 관념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인식하게 된 이유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직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다. 너무 외로워서 만나게 된 사람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너무 섹스가 하고 싶어 성적매력을 느끼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스펙이 너무 좋은 사람을 만나도 왠지 이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감정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섹스가 사랑일 수 있고 좋아하는 호감이 사랑이라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이런 착각의 요소를 제거하고도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았다.  


난 스펙을 보고 여자를 만나지 않는다. 일단 내가 스펙이 별로 좋지 않고 스펙을 따지기엔 이젠 너무  나이 많은 이혼남이기 때문이다. 좀 섹시한 여자를 두고 어떻게 해서든 Friend with benefit으로 발전시켜보려고 한 적도 있으나 결말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맘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나의 성욕을 뒤로 밀어둔 체 만나려고 한다. 성욕은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불쑥불쑥 뛰어오르는 욕망을 눌러 두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처음 별거를 시작할 때 큰 집에 혼자 있는 게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도 부스럭 부스럭 대는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고 지금 몇 시인지 알지 못할 것 같은 큰 공간이 더 날 외롭게 했다. 그래서 누군가래도 만나기 위해서 열심히 Dating App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외로움이 고독으로 바뀌는 과정을 경험했고 여전히 혼자 있는 게 싫지만 그렇다고 서둘러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외로움, 성욕, 스펙을 생각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래도 난 그녀가 좋았다. 어 이건 또 뭐지? 이게 사랑인가? 아니면 내가 모르는 어떤 무의식 속의 욕망이 나를 조정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아직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내가 외로워서 그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성욕에 목말라서 그녀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제 나는 적어도 사랑에 관한 글을 쓸 자격이 생긴듯하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장을 보듯 나는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하고 있다. 이 과정이 또 어떤 깨달음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난 내 감정에 충실하고 찾아온 이 기회에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설령 또 하나의 착각을 내가 경험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난 지금 내 삶을 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내 삶이 내 글이 될 수 있다면 난 어느 시인도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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