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 after 5 years
현장 디자이너라는 말은 조금 생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디자인오다에는 현장소장, 현장관리자 대신 '현장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설계 디자이너만큼이나 디자인을 책임지는 역할인데요. 5년차 현장 디자이너의 인터뷰를 통해 어떤 직무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세요.
INTERVIEWER 마케터 유
INTERVIEWEE 현장 디자이너 진
현장 디자이너로 첫 인터뷰네요. 혹시 처음 맡은 현장이 기억 나세요?
진 오산 한의원이었어요. 제가 실내디자인을 전공하긴 했지만, 막상 현장에 부딪혀 보니까 1도 모른다는 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아쉬우면서도 생각나는 현장입니다.
현장 디자이너가 특히 그런 것 같아요. 전공을 하더라도, 전혀 모르고 시작하게 되는.
진 디테일하게 자재에 어떤 게 있고, 어떻게 마감을 쳐야 하는지 자체를 몰랐으니까. 그런데 제 친구들, 동기들 보면 다 모르는 건 똑같은 것 같더라고요. 나중에 졸업하는 후배들도 똑같은 걸 물어보고요. 처음엔 제가 너무 모르는 게 아닌지 부끄럽기도 했는데, 그때 과장님 말대로 처음엔 모르는 게 당연한 거였어요. 첫 현장, 값진 경험이었죠.
현장 디자이너가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주세요. 흔히 다른 곳에서 말하는 현장소장과는 조금 다르잖아요.
진 그렇죠. 저희가 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설계 회사에서 감리를 하는 것과 더 가까워요. 디자인을 현장에 맞게 풀어주고, 마감과 디자인을 살리는 역할을 합니다. 보통 다른 현장소장들은 디자인보다는 현장 관리의 업무에 가까운 것 같아요. 자재 발주나 견적 관리를 하면서 마진을 남기는 게 보통의 현장소장의 일이라면, 물론 그것도 저희 업무에 일부 포함되어 있긴 한데요. 그보다는 공사를 진행하며 생기는 디자인의 변경사항을 빠르게 현장에 적용시키고, 설계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지 전반적인 감리를 봅니다.
현장에서 필요하면 도면도 직접 그리나요?
진 지금도 필요하면 조금씩은 도면을 직접 바꾸기도 하는데요. 처음에 제가 입사할 때만 해도 현장에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미팅 끝나면 바로 도면을 수정하곤 했어요. 아무래도 설계 인원이 보충되다 보니 요즘은 설계 파트에 도면을 맡기고 있어요. 그래도 만약 현장에 새로운 디자이너가 들어온다면, 기본적으로는 도면을 그리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겠죠. 이를테면 작업자에게 지시할 때도 말로는 전부 전달이 안 될 때도 있거든요.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도 다르게 이해하실 수 있으니까.
바로 연결되는 질문인데요. 현장 디자이너에게 어떤 역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진 첫째는 눈썰미. 사실 현장에서 저희가 직접 목공일을 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떻게 해야 완벽한 작업이 되는지에 대한 눈썰미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꼭 내가 직접 하지 않더라도 작업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을 것 같고요.
평소에도 눈썰미가 좀 좋은 편이시죠?
진 눈썰미∙∙∙. 좀 눈치가 있는 편이죠. 눈치를 많이 보기도 하고. 현장에서 작업하다가도 느낌이 오거든요. 뭔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싶은 공기가 느껴져요. 그럼 바로 작업자에게 가서 캐치할 수 있으니까. 잘못 작업한 것도 5분의 1을 잘못하고 다시 하는 거랑, 5분의 4를 잘못하고 다시 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잖아요.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그 분위기를 살피는 게 가능하면 좋겠죠.
눈썰미와 눈치. 또 어떤 역량이 있으면 좋을까요?
진 계획성이요. 공사를 시작할 때 공정표를 짜고 들어오긴 하지만, 그 안에서 변수가 항상 생기는데, 그걸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문 손잡이를 발주할 타이밍에 다 와서 갑자기 재고가 없어서 못 구한다고 하면, 일이 복잡해지잖아요. 발주 타이밍 이전에 미리 한 번 더 체크하고,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계획성이 필요한 것 같아요. 변수를 미리 대비할 수 있는 꼼꼼함과 계획성.
어떻게 보면 스케줄링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공사 기간을 맞추는 게 중요한 거니까.
진 스케줄링 능력이 엄청 필요해요. 미리 생각하고, 발주할 수 있는 시간을 비워 놓는 것도 능력인 것 같고요. 예를 들어 목공 기간에는 정신이 없고 바빠요. 그런 기간에는 생각하기도 어렵고, 정신 없이 발주 넣으면 제대로 하기도 어려운데. 미리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비워 놓는 거죠.
MBTI가 어떻게 되셨죠?
진 ENTJ요. 저는 이게 현장에 가장 적합한 MBTI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저는 늘 너무 계획하면 계획했지, 계획하는 데 있어서 피곤함을 느끼진 않거든요.
근데 제가 (현장 디자이너로서)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못 가진 역량이 하나 있거든요.
어떤 건가요?
진 차분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장 문제가 생겨도, 잠깐 쉬면서 생각하면 잘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저는 급하게 부딪히는 타입이거든요. 작업자에게 가서 바로 안 된다, 다시 작업하자, 이러는 편인데. (웃음) 나중에 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될 작업이었던 걸 느끼기도 하거든요. 그럴 때마다 당황하지 않고, 한 발 뒤에서 침착하게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여유를 가져야겠다.
조금 더 이해를 돕기 위해서, 현장 디자이너의 하루를 말씀해주시겠어요? 아마 공정에 따라 다를 것 같긴 한데.
진 보통은 아침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출근을 해요. 착공 첫 날이라면 조금 빨리 가는 걸 추천하고요. 출근하면 거기서 만난 반장님들과 30분에서 1시간 정도 그날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해요. 그 다음에 현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미리 다음 공정에 대해 생각합니다. 작업자들이 충분히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면, 발주거리를 정리합니다. 발주해야 할 자재와 일정에 대해 정리를 하고, 어떻게 마감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고요.
현장을 둘러보는 건 출근 직후, 점심 먹기 전, 퇴근하기 전, 세 번 정도예요. 점심을 먹고 나면 반장님과 한 번 더 얘기를 나누고요. 중간에 설계 파트나 클라이언트에서 들어온 요청은 주로 오후 반장님 미팅 이후에 모아서 처리해요. 급한 요청은 물론 바로 해결하고요. 하루의 작업이 다 끝나면, 현장을 둘러보고 마무리하고, 4시 반에서 5시에 퇴근을 합니다.
전체 공정 중에 가장 바쁜 시기가 언제인가요?
진 제일 중요한 건 목공인데, 제일 바쁜 건 마감 주예요. 공정이 겹치기도 하고. 한 작업팀이 하루 종일 작업하는 게 아니라, 2~3시간씩 작업하고 빠지니까. 공정도 많고, 전화도 많이 오고, 택배나 퀵도 많이 오고. (여러 공정이) 한순간 몰리니까 제일 정신 없는 시기예요.
제일 정신 없을 때, 전화가 하루에 몇 통 왔는지 기억나세요?
진 진짜 많이 왔을 때가 대전 하프클리닉 때였는데, 한번 세어 봤거든요. 68통이 왔어요.
하루에 68통.
진 아무래도 지방 현장이기도 했고, 10초짜리, 5분짜리 간단한 전화를 합쳐서 전화가 그 정도로 많이 오니까, 힘들긴 힘들더라고요.
반대로 일하면서 재미있는 점은 뭐가 있을까요?
진 일단 다양한 공정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잖아요. 한 공사만 해도 15개 이상의 공정을 만나니까. 그걸 제가 직접 체험하지 않아도 어깨 너머로 작업하는 걸 보는 게 재미있어요. 뭔가 질리지가 않죠. 또, 현장마다 지역이 다르니까, 다양한 지역에 가게 되는 것도 좋더라고요.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용산 갔다가, 홍대 갔다가, 강남 갔다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좋아요). 공사의 흐름 자체는 비슷하지만, 조금씩 변화를 느끼는 부분이 재미있어요.
원래 목공도 직접 배워보려고 하셨잖아요. 만드는 과정 자체에 흥미가 있으신 거죠?
진 일을 해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무언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에 관심이 많고. 또, 제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좀 다르게 보고, 더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왜 이건 이렇게 해야 할까?’ 늘 의문을 갖고 살거든요. 가끔 사장님들이 오해할 정도로 작업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거든요. ‘왜 이렇게 하셨어요?’ 물어보면 사장님이 ‘왜’ 이러고 경계하세요. (웃음)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요. 저는 그냥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정확히 알고, 그걸 더 좋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이 좋은 거거든요. 혹은 일을 더 잘 알고, 제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면 좋으니까요.
어쨌든 일을 더 잘하려고 하는 거네요.
진 뭔가 좀 더 간단하게 하기 위해.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이 있다면, 어디인가요?
진 저는 천호 연세비전안과가 생각나요.
좋은 쪽으로요?
진 아뇨, 저는 아쉬운 걸 더 많이 담아두는 쪽이라. 물론 현장 자체는 결과적으로 정말 잘 나왔는데, 그때 제가 조금 미숙했던 거 같아요. 클라이언트가 워낙 꼼꼼하고, 잘 챙겨주셔서 잘 나온 현장인 것 같고요. 저는 그때 설명도 잘 못 해서 지금만큼 클라이언트를 안심시키기도 어려웠던 것 같고, 지금이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도 있던 것 같아서 기억에 남아요.
그렇다면 ‘내가 봐도 정말 잘했다’고 느낀 현장은 어디인가요?
진 수원 윤슬피부과가 잘 나왔던 것 같아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 디자인도 잘 나왔고, 공사도 문제 없이 착착 진행된 것 같고요. 그래서 공사 후에 클라이언트의 요청 사항도 많이 없었어요. 최대한 AS 없이 잘하려고 했고, 꼼꼼하게 마감을 처리했고요. 현장에서 좀 더 자율권을 갖고 디자인을 보완할 수 있던 케이스라. 이를테면 천장도 최대한 올리고, 필요한 부분은 넓히고, 간접조명이 잘 나올 수 있게 폭을 조절한다든지. 그렇게 책임 지고 현장 일을 제대로 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생각 나네요.
조금 다른 질문인데요. 디자인오다만의 차별화된 문화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
진 일단 많죠. 대화지원금도 있고, 호텔도 자주 가고, 맛있는 밥 먹으러 가고. 다른 직종의 회사는 물론이고, 다른 인테리어 회사보다도 저희 사장님이 스스로 영감을 얻게끔 어시스트해주는 부분이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종종 리프레시할 수 있는 경험이 있어서 좋아요. 그런 점에서 닫혀 있지 않은 문화.
그렇게 갔던 공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있나요?
진 저는 아모레퍼시픽 사옥이 기억에 남아요. 실용적으로 쓸 수 있는 걸 본다기 보다,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영감을 얻을 수 있던 게 좋았어요. 자연스럽게 공간을 보고 다니면서, 여유롭기도 하고, 리프레시가 되었거든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현장 디자이너로 새로 입사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은가요?
진 사실 일을 빨리 배우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느 정도의 책임감과 솔직함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특히 솔직함이 의사소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뭔가 잘못 됐다는 걸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잘못된 걸 빨리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요. 무서운 건 누구든 다 무섭지만, 그때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있으니까. 그리고 실수에 너무 예민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모든 일이 그렇지만, 뭔가 잘 되면 원래 그런 것 같고, 안 되면 망한 것 같잖아요. 큰일난 것 같고. 근데 누구에게나 실수는 일어나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는 덤덤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