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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고양이 Apr 10. 2024

다시 살아보라고 했다

갱년기 우울증

애기 때 제리


한의원에 갔더니 이런 내용의 글이 써 붙여져 있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왔던 당신, 이제 당신을 위해  살아갈 시기가 온 겁니다. 갱년기 이제 자신만을 위해 사세요.



이제야 이 얘기를 하게 된다. 제리가 가족 된 일이자  다시 살기의 계기가 된 일.

처음에는 눈물이었다. 이건 뭐 갑자기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뭔가 울적한 기분이 된 것도 아닌데 눈물이 헤퍼졌다고 해야 할까. 슬픈 드라마는 아예 볼 수가 없었다.  두 번째는 무기력증이었다. 정신없는 아침, 아이들이 학교 가고 나면 끝도 없는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한 손에 리모컨이나 휴대폰을 드는 일 외에는 손끝도 까닥하기 힘들었다. 논문은 개요만 몇 번 고쳤고 책은 늘 같은 페이지 커피만 축낼 뿐이었다. 세 번째는 기억력 문제였다. 하루종일 무언가를 찾다가 끝나는 느낌이었다. 리모컨이 세탁기 위에 폰이 현관에 커피 잔이 화장대에

 있어야 할 곳을 찾지 못한 물건들. 찾지 않으면 기이하게도 그 물건이 나타났다. 시간 개념도 날짜 개념도 희미해졌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같았다.



세상에 마음이 아픈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한 달 내 예약을 잡을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았다. 한 달을 기다려 간 집 근처 병원에서 문진표를 작성하였다. 요즘은 태블릿을 주어서 설문을 하는 형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불면증으로 방문했던 때는 서류에 썼던 기억이 있었는데... 세상은 참 빨리도 변하고 있었다. 나만 외딴섬이 된 듯하다.


" 갱년기 우울증이에요. "

뭔가 번쩍인 느낌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는 느낌이 이거구나 했다.


그 진단을 어떻게 듣고 왔는지 지금은 거의 기억에 없다. 너무 놀라서 입을 조금 벌린 채 멍하게 듣기만 했는데 예상했던 병명(성인 adhd)이 아닌 것이 더 충격이었고  다음 충격은 의사를 믿지 않는 내가 있었다는 거였다. 결국 한 군데 더 병원에 가서 그 병명을 듣고야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멘털을 치료하러 간 곳에서 멘털이 털려 나오는 상황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주변에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다. 수치가 90을 넘는다고 문진표에 적은 내용이 막대그래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울렁증이라는 부작용이 있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나는 이석증을 앓고 있었기에 약을 먹으면 어지러움이 심해져 하루종일 잠만 자게 되었다. 거의 먹지도 않고 잠만 많이 잤다. 사실 약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우울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치 마법에 주문을 들은 듯 맥이 탁하고 풀렸다. 그래서 더 무기력해졌는지도 모른다. 약은 한 번 바뀌었고, 그럼에도 울렁거림은 줄지 않아서 자는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대로 소파에 뿌리가 박힌 식물이 된 느낌이었다.


여동생이 갱년기 우울증에 운동과 애완동물을 기르는 일이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읽었다며.  고양이를 한 마리 길러보면 어떠냐고 권했다.   당시 임보를 하며 새끼 고양이를 돌보던 여동생은 산책하지 않는 고양이가 내 성향이 잘 맞을 거라 말했다. 사실 외출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위기 대처 능력이 심히 부족해 산책 시 민폐 견주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강아지를 기르자고 조르고는 했는데 아이 둘에 강아지까지 케어할 생각을 하니 부담스러워서 단칼에 거절을 했더랬다. 그래서 겨우 아이들과 한 타협이 햄스터였는데 햄스터 녀석들은 너무 빨리 햄스터 별로 떠났다. 두 마리가 그렇게 햄스터 별로 떠나자 아들과 나는 더 이상 키우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 양볼 가득 씨앗을 물고 양말 서랍으로 이사 가던 녀석을 잡았던 웃긴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 한켠이 욱신하다. 어떤 생명이든 기를 때 떠나보낼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점에서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거리에서도 고양이를 보면 어릴 적 본 고양이가 나오는 귀신 영화 포스터를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포스터가 붙은 전신주가 무서워 멀리 돌아서 학교에 가고는 했었다.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와 검은 고양이가 피범벅을 한 포스터인데 제목은 떠오르지 않는다.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어도 앙칼진 괴성함께 발톱을 세우고 여배우를 할퀴고 달아나면 피가 나던 장면만 떠오른다. 그런 나에게 고양이라는 존재는 함께 하기 어려운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무엇에 씐 것인지.


온 가족이 알레르기 검사를 받았다. 딸 애가 강아지털 알레르기가 있었다. 다행히 고양이 털 알레르기는 없었다. 그렇게 남편과 시험 삼아 고양이를 구경하러 간 날 제리를 만났다. 제리는 박스에서 뛰어내리며 우리에게 왔고, 운명처럼 만난 새끼고양이를 두고 오지 못했다. 그렇게 어째 어째 나의 육묘이야기는 준비도 없이 그렇게 시작됐다.


지금 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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