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로 살아가면 다양한 남을 만나고 또 그에 따라 다양한 나를 마주한다. 예를 들면 엄마의 아들 나, 친구들의 친구 나,
선생님의 제자 나, 누군가의 애인 나
이처럼 나는 살면서 만나는 남에 따라 정체성이 바뀐다.
누군가는 어차피 다 똑같은 '너'라고 말하겠지만 그 부분에 관해서는 단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저들은 다 같은 '나'가 아니라고..
그렇게 여러 명의 나로 살아가던 나는 언젠가 나에 관하여 생각해 보았다.. 아주 정신적으로 사람이 피폐했었고 어두웠던 시기에 말이다. 당신들은 혹시 '머털도사'라는 애니메이션을 아는가? 뜬금없긴 하지만 사실 그때 나는 내가 꼭 그 애니메이션 속 '머털도사' 같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작중 머털도사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가면을 사용해 적들과 싸우는데 적에 따라서 가면을 바꿔 쓰면서 싸운다, 그리고 나 역시 싸우지 않을 뿐이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다른 가면을 쓰고 그들과 마주 치니 말이다. 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그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내 진짜 얼굴은 내비치지도 못했었다. 웃음 짓게 하는 가면, 비위를 맞춰주는 가면, 울음을 내비치지 못하게 하는 가면, 감정을 숨기는 가면 속에 사는 것... 나는 그게 환멸이 났다. 가면 속은 어두워서 습했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난 정말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을 때 처음으로 가면을 벗고 거울 속 맨 얼굴의 나를 보았다. 아무 가면도 쓰지 않은.. '누군가의'라는 수식어 따위도 붙어있지 않은 온전한 '나'였다. 미안했다 그동안 가면 속에 숨어 살던 나에게. 이대로 가면을 버려버린다면 해피앤딩이겠지만 평생을 함께한 가면과 수식어를 버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요즘은 최대한 멀어지려고 노력 중이다. 가끔 눈에 보일 때도, 어쩌다 쓰게 될 때도 있지만 아직 서툴으니 나 자신을 용서 중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당신께도 이야기하고 싶다.
가면 속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묻고, 벗어도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Ps.
안녕하세요.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하게 된 아이라고 합니다!
제 닉네임인 아이 뒤에 작가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거 같아서 겨우 유혹을 이겨내고 마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며 작가가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전에 간단하게 제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았는데 좋게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앞으로 저희의 일상 속에서 흔히 보이는 것들, 우리가 소중함을 망각해 버린 것들에 관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써내보려고 합니다. 많이 부족하고 어설프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