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X. HOUSE WRAPPING
경량목구조이기 때문에 물이나 습기에 의해 구조체가 썩으면 정도에 따라 집이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으므로 비닐로 구조체 전체를 포장해줘야 한다. 이를 서양에서는 House Wrapping이라고 부르는데 일반 비닐로 포장을 하면 목구조체 내부 습기가 갇혀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통상 등산복이나 등산화에 사용되는 GORE-TEX와 같이 물은 막아주고 땀(습기)은 투과되는 '투습방수지'를 사용한다.
투습방수지로 감싼 목구조체 외측에 해당하는 내측. 즉, 외기와 직접 면하는 벽면은 내측에도 비닐로 감싸는 것까지 House Wrapping에 포함된다.
기밀 시공에 대한 생각 차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거나 거주자마다 샤워하며 뿜어내는 실내 습기량이 많은데 이들이 목구조체에 유입되어 배출되지 못하고 정체·누적된다면 단열재는 시간이 갈수록 그 기능을 못하고 특히 목구조는 곰팡이와 더불어 건전하지 못한 상태로 주택의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
최초 지붕 쪽 투습방수지 시공 시 지켜보던 나는 놀라서 비계로 뛰어올라가 멈추게 했다. 벽체의 투습방수지와 단절되게끔 서까래(rafter) 끝에서부터 시공하려 해서 '이어져야 한다!'며 급히 다른 현장의 시공사례 찾아 보여드렸다. 목수들은 보자마자 이해하시고 요구한 대로 지붕 투습방수지 시공을 이어갔다.
지붕에 이어서 벽체의 투습방수지 시공이 이어졌다. 펼치고 타카로 타타타탁! 혹시나 불량하게 박히지는 않을까 근심했더니 소리를 들을 때마다 괜히 내 피부에 박힌 듯 몸이 움츠러들었다. 나는 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홍콩 누아르 영화에서처럼 총 쏘듯 네일건을 쏘거나 타카를 짧은 시간에 연타하는 모습이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다.
덜 전문가같이 보여도 천천히 꼼꼼하게 쏴주면 안심되겠는데... 시간은 곧 돈으로 이어진다. 목수들도 워라밸이 있고 빨리 일을 마치고 쉬어야 한다.
일부는 cap이 달린 스테이플러를 전용 도구로 시공해 주셨는데 시공성이 썩 좋지는 않다고 한다. 작은 차이 일지라도 습기에 대한 경계는 과해도 지나침이 없으니 큰 비용 차이가 없다면 유리한 방향으로 시공을 요구해야 한다.
흐뭇하게 wrap cap을 보는 것도 잠시, 사장님은 시공된 투습방수지 전용 tape 한 롤을 가져오시더니 시공성이 별로라는 투로 말씀하신다. 그래서 투습방수지가 오버랩된 부분이나 타카 자리에는 일반 tape를 부착하겠다 해서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는데 아오... 이 역시 후회막급이다. 설마 전용 tape가 고가여서 그러진 않았겠지만 투습방수지 부착을 위한 tape 스펙도 사전 협의했어야 했나 싶다.
이 무렵부터 house wrapping에 대한 생각이 시공사와 많은 차이가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벽체와 지붕 쪽 투습방수지가 오버랩되는 부위(아래 사진)가 있는데 이쪽은 tape 마무리를 안 해주겠단다. 안 해줘도 그리로 물 안 들어가고 문제없다고 한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듯 투습방수지가 나부끼는데 문제가 없다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구멍 난 튜브를 밀봉하지 않고 물에 띄워도 문제없다는 이야기와 무엇이 다른가.
오버랩 부위에 tape 시공을 요구하니 사전에 그렇게 협의한 바 없어서 안된단다.
그럼 모든 시공 디테일을 사전에 협의했어야 하냐고 반문하니 그건 또 아니란다. 시공사는 원래 이렇게 마무리하는데 내가 유별나게 taping을 요구하는 거라 추가 비용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사장님은 또 저런 거 안 해도 문제없고 taping 하더라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충분히 따뜻하다 하길래 "원래 작은 차이로 기술이 진보하고 삶이 나아지는 법인데 보다 더 좋은 집 짓기의 일환으로 해주면 안 되겠나?" 설득을 한끝에 50만 원 추가 비용을 주면 rafter부와 벽체 투습방수지 오버랩 부분까지 taping 해주신다고 하여 예상치 못한 비용을 뜯... 아니 지급하게 되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시공사에서는 실내 가변형 방습지 시공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부득이 셀프 시공을 하게 됐다. 이런 실랑이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느라 나는 아침 작업시간 40여 분을 날렸다. 지붕 골조가 올라서면서 실내 가변형방습지 셀프 시공을 위한 준비 작업을 시작했는데 오전 시간을 손해 보니 예상했던 작업량에 미치지 못해 한숨만 나왔고 house wrapping에 대한 견해 차이를 확인하니 설사 가변형방습지 시공을 의뢰했더라도 공사기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 같다.
지붕 쪽부터 rafter마다 가변형 방습지 부착을 위한 전용 양면 tape(방습지와 골조간 접착 용도)을 붙이기 시작했다. 혼자 그것도 처음 해보는 작업이다 보니 매우 더뎠고 ceiling joist(천장 장선)에서 실내 바닥을 바라봤는데 고작 3m도 안 됐지만 떨어지면 뭐라도 잘못될 것만 같이 높게 느껴져 외줄 타기 하듯 매우 조심스럽고 느리게 이동했다.
오랜 시간 좁은 박공 밑에서 위를 바라본 채 작업을 하니 자세도 좋지 않고 쪼그려 앉았다가 일어났다를 반복하니 관절이 피로해져 이때 이후 김장할 때와 같이 쪼그려 앉는 자세를 취하면 잠시도 참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밀려왔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군대에서 장시간 '무릎 앉아!' 명령은 가혹행위다)
양면 tape 작업만 닷새 동안 이뤄졌다. 셀프 시공이라고 해서 생업을 뒤로한 채 일을 할 수는 노릇이어서 틈나는 대로 했고 주말은 8시간 이상 밤늦게까지 노력했으나 재촉해도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는 지각생의 발걸음처럼 너무 더디기만 하다. 이런 일을 혼자 하겠다고 하니 사장님은 그럼 나흘 드리면 마무리되겠냐 우린 이런 공정 이틀 본다며 답답해한다.
가변형 방습지 시공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데 건축주 놈이 타카로 속도감 있게 파바박 비닐을 쳐 나가는 것도 아니고 쭈그리고 앉아 rafter마다 stud마다 양면 tape만 붙이고 앉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taping 작업 덕에 많은 rafter와 stud를 만지며 느낀 것인데 투바이 구조 목재가 미세하게라도 휨이 있다 보니 경량목구조 그 자체만으로 기밀하기는 어렵겠구나 생각이 새삼 들었다. 아무리 잘 시공해도 사진과 같이 작은 틈이 생긴다. 기밀층이 없다면 틈은 곧 웃풍의 통로가 될 것이다.
모처럼 시공사가 쉬는 토요일이 있어 많이 작업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아침 일찍 현장에 갔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전열교환기와 에어컨 배관 설치를 위해 공조팀이 온 것이다. 그들은 이미 rafter에 전열교환기 덕트를 설치했고 에어컨 배관 작업에 열중했다.
인사를 드렸더니 본체만체다. 남루한 차림으로 현장에서 양면 tape만 붙이고 있으니 건축주일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한 눈치다. 아... 양면 tape을 못 붙인 곳도 많은데 벌써 duct들이 심해 대왕문어처럼 rafter를 가로질러 지나간다. taping 작업도 문제지만 나중에 가변형 방습지를 붙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난감하다.
아무리 공사가 타이트하게 진행되고 작은 일부 공정이 건축주 셀프로 진행된다지만 사전에 미리 임박한 공정에 대해 공유해 주고 의논해 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시공사도 달려가야 할 길이 먼데 이런 생각을 하는 건축주가 과욕을 부리는 것인가 taping 하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이다.
공조설비팀이 마무리되니 전기팀이 왔다. 나도 사다리로 오르내리며 지붕 쪽 taping을 해야 하는데 이분들도 수시로 오르내리며 ceiling joist 위로 전선관을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공조장치 만으로도 가변형 방습지 시공이 어려워졌는데 이젠 전선까지 복병으로 자리 잡았다.
실내에서 지붕에서 쭈그리고 작업만 하느라 뒤늦게 봤는데 외부에서 내부로 연결되어야 하는 전선들이 투습방수지까지 조악한 모양으로 뚫고 나와있는 것이다. 사장님께 저렇게 외벽을 뚫고 나오는 배관이나 배선과 투습방수지에 taping 해야 하는 것 아니냐 했더니 저 틈으로 물 들어갈 일 없다고 한다.
딥빡 얼굴로 그곳을 응시하고 있었더니 불쌍했는지 선심 쓰듯 특별히 tape 붙여드리겠다 그러나 진짜 원래 안 붙인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그 전선 부위를 tape로 감싸기는 해 줬다.
그냥 내가 할걸. 또 언급하지만 house wrapping에 대한 생각이 너무너무 다르다.
사장님이 어느새 사전 예고 없이 설치 돼버린 화장실 선반(현장에선 '젠다이'라고 부른다)에 합판이 붙을 부분에는 가변형 방습지나 tape 시공을 하지 말란다. 실랑이를 벌이기도 싫고 실내 기밀층이 끊기긴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안 한 것보다는 낫겠지 하며 요구대로 시공해 줬다.
덧붙여 내벽 시공할 땐 이런 거 이런 거 조심해 달라 말씀하셔서 내가 외기와 직접 맞닿는 벽면만 시공하는 것이라 말씀드렸더니 헤죽 웃으며 이왕 하는 거 다른 벽도 다 하지 그러냐 한다. 이때 확신했는데 이 분은 내부 가변형 방습지를 전혀 시공해 본 경험이 없다.
가변형 방습지 셀프 시공은 그 기간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져 25일 차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살면서 지은 죄가 많았는지 tape 지옥이 따로 없다. 방습지 선시공을 하지 않은 대가가 너무 크게 다가왔다. 모든 외벽과 만나는 ceiling joist, rafter마다 기밀 taping을 해야 했고 모든 배관 배선을 피하는 것은 물론 지붕의 collar tie(지붕 상단 조름보)가 지나는 부분은 방습지를 도려내고 그곳을 다시 tape로 밀봉해야 했다.
이렇게 셀프 시공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당연히 시공사의 다른 공정도 쉼 없이 진행되었다. 집이 완성돼 갈수록 기뻐야 하는데 나는 기 빨리고 피폐해져 간다. 앞서 말한 단열재가 많이 남아 ceiling joist에도 추가로 끼워져 벽체와 지붕 사이로 방습지를 잇는 작업을 할 때에는 홀로 단열재를 다 탈거하고 다시 끼워 넣느라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도 잦았다.
방습지를 오리고 접착력이 강한 tape를 자르고 부착할 때 박공 끝 쪽과 같이 몸은 물론 손이 들어가기도 어려운 공간도 있었다. strong back(위 사진의 'L' 형상 목구조물)이나 제작빔에 몸이 짓이겨져 갈비뼈 부분과 허벅지에 진한 보랏빛 멍이 들기도 했다.
작업을 마치고 집에서 안면 클렌징을 하면 피부에 붙은 미세한 글라스울 가루 때문에 피부과에서 레이저 시술을 받는 고통에 버금가는 통증을 느낄 수 있다. 근 한 달간 글라스울 가루를 뒤집어쓰니 그런 통증마저 익숙해졌다. 시공사에서는 내가 답답했겠지만 나도 최대한 일하는데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모든 잉여 시간을 이 작업에 쏟았고 이를 위해 여름휴가 5일까지 당겨서 사용했다.
가변형 방습지 지옥, tape 지옥을 탈출하니 나름 보람됐다. 5월 가정의 달 연휴 동안 공사를 쉬었다가 다시 복귀했을 때 사장님은 많이 놀랐다고 한다. 건축주가 중도에 포기할 줄만 알았는데 진짜 다 할 줄은 몰랐다며.
'자재비만 몇 백만 원 들였는데 그럼 안되기만을 바랐단 말인가...' 대단하다고 칭찬 조로 한 말일 수도 있는데 셀프시공 과정 중 한마디 협의 없이 진행된 시공사의 공정에 가혹함을 느껴온 뒤틀리고 속 좁은 건축주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투비콘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