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 단열공사
11.1mm OSB(Oriented Strand Board) 합판이 지붕까지 부착되고 방수시트까지 붙여야 골조 공사는 마무리된 것으로 본다. 다만 한국식 warm roof 공정상 OSB 합판 부착 전에 서까래(rafter) 사이에 단열재 시공이 먼저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골조 공사가 완벽히 마무리 되기 전에 단열재가 입고 되었다.
널찍했던 현장은 구조목과 OSB 합판, 자투리 목자재는 물론 5톤 윙바디 트럭에 가득 싣고 온 단열재까지 쌓여 복잡하고 좁게 느껴졌다.
앞뒤 좌우로 이미 지어진 이웃집을 경계에 두고 주택 신축을 앞둔 건축주는 자재 적재 공간도 고려하여 계획해야 한다.
건축주가 원했던 단열재
건축도면이 완성된 이후 첫 견적을 송부했는데 중단열재로 K 社나 J 社 글라스울로 되어 있어 이를 다른 제품으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주택 신축을 결정하게 된 때부터 외형적으로 예쁘고 세련됨을 추구하기보다는 단열 잘되고 (목조이다 보니) 습기에 강하고 물 안 새는 성능 좋은 집을 원했기 때문에 습기나 결로에 노출되면 단열성능이 저하되는 글라스울보다는 미네랄울 제품을 염두에 두었다. 특히 ROCKWOOL을 원했고 검색 포털에도 판매하는 곳이 뜨길래 돈 주고 사면 될 일로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국내 판매 중인 ROCKWOOL 제품은 추가적인 외단열 시공 용도이고 목조 중단열용은 북미지역 등 해외에서만 구매 가능했다.
해외직구 루트도 알아보는데 외벽용, 내벽용, 지붕용 제품을 들여오려면 콘테이너 단위로 운송을 해야 해서 그 물류비가 만만치가 않아 포기했고 중국 상해지사 쪽으로도 메일을 보내봤지만 무응답... 어렵게 수소문하여 국내에서 ROCKWOOL을 취급했던 사업자와 연락이 닿아 공급 가능 여부를 문의했지만 목조 16인치 중단열용도로 적합한 제품은 보유하고 있지도 않고 해당 제품은 부피 산업인 데다가 수요가 많지 않아 선뜻 해외에서 들여오려는 사업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 한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조선소에서 선박 단열 용도로 ROCKWOOL을 소비하고 있었다.
차선책으로 국산 미네랄울 제품으로 단열시공을 원한다고 하니 시공사 사장님은 거래처에 알아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국산 미네랄울은 현재 생산 중단되었고 COVID-19 팬데믹 당시 수입 글라스울 공급난이 있을 적에 대체품으로 잠시 나왔던 제품이라고 전한다. 사장님은 시공했던 집들 모두 습기로부터 문제없고 글라스울로 단열시공한 집들도 다 난방비 적게 나오고 따뜻하다며 그냥 원안대로 가자고 하신다.
자기를 못 믿냐, 믿으니까 주택 시공 맡긴 거 아니냐
라는 말도 전체 공사 기간 동안 건축주와 의견이 다를 때 두어 번 등장한 것 같다. 과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한 반론이 아니면 그 누구도 설득되기 어려울 텐데 저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썩 유쾌하지가 않았다.
결국 중단열재는 Saint-Gobain社에서 제조한 Isover 에너지 세이버(고밀도 글라스울)로 결정을 했다. 이 회사는 자동차용 유리회사로 알고 있었는데 단열재 사업부도 있다. 타사 제품과 가격대도 비슷하고 글라스울이지만 발수 성능도 있고 밀도가 높아 처짐이 적다고 하여 선택하게 되었다. 크라프트紙가 붙어있지 않아 stud에 타카 고정 방식이 아닌 그냥 끼워 넣어 고정하는 방식이어서 손이 많이 가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큰 불만은 듣지 못했다.
목수들은 타사 제품 대비 분진이 조금 더 따갑다고 했다. TMI지만 이 단열재에서는 특유의 비릿한 암모니아 향이 있다. 강 이는 단열재 제조과정에서 유리섬유를 binding 하는데 이 binder에 암모니아 성분이 있어서 그렇다는 Saint-Gobain 한국지사의 답변도 있었다.
새삼 드는 생각인데, 미국, 캐나다 곳곳에 다이소처럼 위치한 Home Depot에서 각종 단열재와 건축 자재는 물론 규격화된 창호화 문까지 직접 구매하여 DIY 할 수 있는 환경은 단독주택 건축주 입장에서 참 부러운 일이다.
단열재 발주 수량 문제
비용이 얼마나 할까 알아볼 목적으로 직접 SketchUp으로 그린 모델로 각 벽면, 지붕면 면적을 계산하여 주로 쓰이는 단열재 회사별로 수량을 추산한 테이블을 작성해 봤다. 당시 목골조 면적도 계산해서 제외하려면 손이 많이 가서 어렵지 않나 사장님께 이야기했더니 로스율 감안하여 그냥 전체 벽면과 지붕면의 면적대로 단열재 수량 계산하면 얼추 맞을 것이라 했다.
설마 생애 최초로 단열재 수량을 계산해 보는 건축주의 자료 그대로 발주를 넣을 줄은 몰랐다. 사장님께서 검산을 하고 최종 발주를 넣겠지... 했는데 2월 초에 내가 계산한 그대로 정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발주를 했고 그 결과 단열 시공이 끝난 후에는 1톤 트럭으로도 두 대 분량은 족히 되도록 단열재가 과하게 남았다.
시공사 원안대로 K 社나 J 社 글라스울을 택하지 않겠다고 하여 건축비 견적에서 그 비용을 뺐고 건축주가 단열재를 구입 후 공급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Isover 글라스울은 사장님의 거래선(?)에서 취급하는 품목이고 시중가격보다는 저렴하게 공급받을 수 있다며 발주 및 비용 대납은 시공사 측에서 하되 추후 건축주가 별도로 정산하기로 했다.
그러나 단열재 발주량에 대해서는 사과나 변명 그 어떤 것도 듣지 못했다. '나는 네가 원하는 단열재를 구입하는데 도움을 줬을 뿐 그 외의 문제는 everything else 건축주 놈에게 있는 거야'라는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남은 단열재는 시공사에서 예정에 없던 ceiling joist(지붕 아래 천장 장선) 사이에 넣어 처리하려 했으나 그래도 다 소비하지 못했다. 특히 지붕용 R37 220mm 두꺼운 녀석이 많이 남았다. 나는 중고거래라도 할까 생각했다가 거래도 쉽지 않고 용차도 써야 해서 그냥 지붕 남는 공간에 보관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옥상가옥과 같은 무의미한 단열처리를 하게된 꼴이 되었다. 다행히 사장님이 현장 바닥에 있던 단열재를 지붕으로 올려주셨고 나는 지붕에서 받아 가능한 깔끔하게 테트리스하듯 쌓아두었다. 조만간 이들이 무사히 잘 있나 지붕 속으로 가봐야겠다.
사후약방문이라 했던가. 매의 눈으로 단열시공하기 어려운 부위인 배관배선 지나는 곳, 콘센트 박스 등이 위치한 곳을 더 살피고 보강할껄. 건축주의 부질없는 후회는 집이 완공된 시점이 한참 지난 지금도 샤워를 하다가 청소를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문득 떠올라 괴롭게 할 때가 있다.
단열시공 단계 만이라도 건축주가 반드시 현장에 와서 목숨 걸고 직접 시공에 참여하거나 점검 점검 또 점검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단열시공이 제대로 되지 않은 곳은 바로 열교가 되며 심한 경우 결로가 발생하여 집의 성능과 수명을 저하시키기도 하고 단열시공의 성패는 기술이나 경력보다는 정성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구조나 철골구조는 중단열 시공이 용이하나 나무나 철이 곧 단열재는 아니므로 골조 자체가 열교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꼭 외단열시공도 추가할 것을 권한다. 단열 효율은 물론 구조체의 결로 현상을 막는 데에도 훨씬 유리하다.
어찌 됐든 이렇게 단열시공은 끝이 났다. 열화상 카메라를 대여하여 지붕과 외기와 맞닿은 벽면 곳곳을 촬영해 보고 단열재가 더 필요한 곳은 하자 보수 요청을 하려고 했으나 바쁘단 핑계로 아직까지 생각에 머물러 있다.
새로 지은 집에서 겨울을 났다. 동절기 급탕비를 포함한 난방비(도시가스)를 확인해 보니 약 20만 원/월 초반대의 금액이 발생했다. 내 주변에는 아랫집 윗집 그리고 옆집에서 발생하는 열로 공동주택의 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는데 단독주택은 그렇지 못해 월 100만 원 이상의 난방비가 발생한다며 근심하는 이들이 있다.
각종 건축 자재는 물론 단열재도 연구개발을 거듭하여 발전하고 그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구옥을 구입하여 구조와 단열 점검 없이 겉만 리모델링 한 집이나 제대로 되지 않은 단열 시공을 한 집이 아니라면 최근 건축물은 더욱 기밀해지고 저 에너지 고효율을 지향하여 지어지고 있으므로 저런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투비콘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