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병오년

1 막을 마치며

by 김동의

“우리 가족은 보이지 않는 거야?”

“요즘 한가해서 할 짓이 없어?”


내가 이 글을 쓸 때 그리고 내가 요즘 글을 쓰며 산다는 말에 배우자와, SNS로 오랜만에 소통하는 친구가 실제로 한 말이다. 아직도 난 사과 껍질을 벗겨내려면 과도를 연필 깎듯 쥐어 어설픈데 글 쓰는 것 역시 마찬가지인 관계로 숱하게 백스페이스 키를 눌렀다. 이런 실력에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이 가능할까? 스스로도 반신반의하며 아주 천천히 첫 장을 써 내려갔다.


기억이 더 윤색되기 전에 사초를 남긴다는 각오로 왜곡은 없는지 LLM이나 Google의 검증 과정을 거쳐가며 외가댁에서의 어렴풋한 추억이 떠오르던 1982년부터 더듬어 봤다. 생모와의 관계가 좋았다면 더욱 이야기를 풍성하게 펼쳐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오랜 기간 응어리진 마음이 순식간에 풀릴 리 없고 글쓰기만 바라보고 갑자기 살갑게 다가가는 것 역시 매우 어색한 일이었다.


훗날 내 아들이 성장해 내 생각의 자취가 이러했음을 알릴 정도는 기록해 두었는데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관찰하고 고백하며 결국에는 품어내는 다른 작가들과 같이 해피엔딩을 맞지 못했다. 이른 나이에 김 씨 집안에 시집와 두 살 터울의 아들을 독박 육아하며 고생만 하다가 조금은 편히 살 고민을 할 시기에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그 뒷모습이 측은하고 이렇다 할 보험 없이 내일이 불확실한 시니어 일자리로 생계를 꾸리는 모습에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값비싼 시니어 모델 학원에서 촬영한 듯한 작위적인 사진이 뜻하지 않게 SNS로 목격될 때면 불쑥 울화가 치미는 복잡 미묘한 상태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생모가 정말 신체 프로포오숀이 좋고 남다른 끼가 있다면 응원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서 참 유감스럽다.


글의 끝이 왜 2019년이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다. 태생적으로 고독함에 갓 건져진 힘찬 우럭처럼 파닥이며 고통을 호소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 때문인지, 어수선했던 집 때문인지, 20대부터 제1의 인생 목표는 좋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었다. 주변에 있는 동갑내기들을 보며 속으론 ‘쟤보단 내가 먼저 장가가겠지' 했지만 오히려 가장 늦게 결혼식을 올린 원숭이띠가 됐다. 아빠가 뇌졸중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부터 거의 내려놨던 내 꿈은 기적적으로 나타난 인연에 의해 인생 1 막을 가까스로 완성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짧은 2019년의 신혼 생활을 거쳐 본격적으로 인생 2 막이 펼쳐지기 시작된 2020년은 COVID-19 팬데믹 위기 속에서 꽃 피운 소중한 생명체와 그간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에 버무려져 매일을 살고 있다. 2 막의 삶은 일상이 분주하고 반복되는 만큼 내 주변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느낄 새 없이 빠르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만큼 글로 다룰만한 뭔가가 떠오르지 않아 글로 담아본들 그렇고 그런 육아일기가 되기 십상일 듯하다. 그저 무탈하고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고 글감이 될만한 사건·사고가 없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에 나의 회고는 1 막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때가 좋았지.

학창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 같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지금이 좋다.


결혼 후에도 인천 집의 기형적 구조의 발코니에 묘기 수준으로 놓인 책장은 아빠가 쓰러지기 전에 정리된 상태 그대로 수년째 방치 중이다. 사람 한 명이 채 들어가기도 벅찬 그 공간에서 곰팡이에 잠식돼가는 낡은 앨범들을 발견했고 그냥 버리긴 찜찜하여 사진 한 장 한 장 아내와 스캐너로 디지틀화 작업을 해두었다.


돌아보니 삶의 여유가 있을수록 사진도 많이 남겨졌다. 아빠의 직급이 낮고 피사체인 내가 고분고분할 당시의 개체는 풍부했지만 사진기를 든 아빠의 직급이 올라가고 야근이 생활화될수록, 피사체인 내가 친구를 더 찾게 되는 10대 초반부터 사진 기록이 확연히 줄었다. 디지틀 카메라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나의 20대 이후론 아빠는 더 이상 촬영기사를 자처하지 않았고 아들들 역시 집에서는 렌즈 뚜껑을 굳게 닫았다. 사진을 담으며 회고를 기록했던 입장에서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스마트 기기가 보급된 요즘은 사진 촬영에 공들인 것에 비해 그 추억을 되돌아보는 시간은 희박한 듯하다. 무구했던 옛 모습이나 즐거운 시절이 담긴 사진을 종종 볼 때면 단순히 피식 웃는 데 그치지 않고 작은 위로와 내일을 버텨낼 힘을 얻는다. 꽤 괜찮은 일 같아 잠들기 전 배우자와 잠깐씩이라도 사진첩을 봐야겠다.


2026년 현재 나의 삶을 키워드로 표현하면 단연 ‘아슬아슬’이 되겠다. 아내가 얻은 희귀한 질환으로 팽팽하게 그리고 간신히 굴러가던 내 일상이 위협받아 아슬아슬하다. 대감에게 반기를 든 대감댁의 모난 노비는 회사에서 늘 주시하며 호시탐탐 쳐낼 거리를 찾으니 생업 역시 아슬아슬하다. 내가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온갖 금융기관의 대출을 일으켜 아슬아슬하게 집을 짓고 그에 상응하는 높은 이자를 치르느라 매달 아슬아슬하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근심 걱정이 덜했던 어린 시절보다 항상 따뜻하게 나를 기다리고 맞이해 줄 가족이 있는 아슬아슬한 지금이 비할 바 없이 좋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하루를 또 어찌어찌 버텨내며 살고 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평생 해보지도 않던 글쓰기 연재를 마치기까지 많은 글벗들의 응원과 잘 읽었다는 반응이 아슬아슬한 남자의 새로운 취미활동을 이어가는데 매우 큰 힘이 되어줬다. 그리 인기가 많지 않은 내 글을 발굴하여 출판의 길로 인도하신 편집자님의 등장도 지치지 않고 완주토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다.


글을 쓰는 동안 묵묵히 밖에서 버텨준 여섯 살배기 아들과 그 넘쳐나는 에너지를 오롯이 감당해 준 배우자에게 참 고맙다.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이들이 더욱 없어서는 안 될 귀인들로 여겨졌다. 지나온 삶이 더디고 엇나가고 부족한 듯해도 누구보다도 평온하게 살고 있다며 자부한다. 나의 화양연화임이 분명하니 지금 이곳에서 반드시 행복해야겠다.


세 가족 불멍 사진


이전 09화2019, 기해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