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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Apr 18. 2024

삼겹살 그리고 수치심

수치심에 대해서

오늘은 삼겹살 먹는 날이다. 원래 어제 먹으려다 어제는 치킨으로 급 선회하여 오늘 모두 함께 저녁으로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남편과 아이들이 오기 전 채소를 모두 씻고 김치와 쌈장을 준비했다. 삼겹살에는 냉면이 좋지 싶어 사다 놓은 냉면도 준비했다.


저녁 시간 맞춰서 남편이 돌아오고 아이들도 모두 왔다. 그런데 우리 둘째 온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발레학원을 다녀온 이후로 뭔가 얼굴에 근심이 쌓인 것 같다.


일단 저녁 준비에 바쁜 나는 온이의 속상한 표정을 모르는 척 준비를 서둘렀다. 그리고 근사하게 차려진 삼겹살과 냉면 한 상. 모두들 둘러앉아 맛있게 식사할 일만 남았는데 온이가 다시 내게로 와 눈물을 글썽인다. 무슨 일일까. 온이를 안아주며 말한다.


"온아, 오늘 발레 학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온이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더 서럽게 울어대기 시작한다. 서럽게 우는 온이를 보니 내 마음이 더 아프다.

다른 식구들 먼저 밥을 먹으라고 하고 온이와 함께 안방에 가서 온이를 더 안아주었다.


"온아, 오늘 무슨 일 있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어?"


눈물을 흘리며 온이가 말했다.


"선생님이 오늘 나보고 왼손 오른손 모른다고 집에 가서 배워오라고 하셨어. 그런데 나 왼손 오른손 모르는 거 너무 창피했어. 으앙앙." 그러고는 또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아, 그랬구나. 온이가 오늘 마음을 다쳤구나. 아직 오른손 왼손이 헷갈리는 온이는 혼자서 모르는 것 같아서 창피했나 보다.


"온아, 엄마도 일곱 살 때 왼손 오른손 잘 구분 못했어. 엄마 사실 지금도 가끔 헷갈려. 엄마랑 같이 연습하자. 온이가 밥 먹는 손이 오른손이고, 반대 손은 왼손이야. 오른손으로 온이가 밥도 먹고 글씨도 쓰지? 그 손이 오른손이야."


온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아는데 헷갈렸어. 흑흑."

울어서 힘이 빠졌는지 온이는 그대로 내 품에서 잠들어 버렸다. 많이 피곤했구나. 이불을 덮어주고 안방을 나왔다.


택이(첫째)와 별이(셋째)와 남편은 식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는 남편에게 짧게 이야기를 전해주고는 젓가락을 들고 삼겹살 한 점을 집으려는데...... 고기가 없다.


아니, 아까 그 수북이 있었던 삼겹살을 벌써 다 먹었다고? 나는 아직 밥 한 숟가락도 안 먹었는데. 너무 한 거 아니야? 나는 화난 마음을 정리하고 쿨한척하려 했지만 내 얼굴 표정은 숨길 수가 없었나 보다.


남편이 물었다.


"왜 그래? 화났어?"


"어! 나 화났어. 뭐야 이게. 열심히 저녁 준비 다 해놓고 잠깐 안방 갔다 왔더니 다 먹었어? 내 생각은 안 해?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맞네... 하하... 없네...."


입가에 삼겹살 기름이 촉촉한  채로 머쓱해하는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니 할 말이 없다. 다음에는 고기를 더 많이 사서 구워야겠다.


"앞으로 삼겹살 먹을 때마다 지켜볼 거야. 다 먹지 말라고!"


협박 같은 당부를 하고 다른 반찬들과 냉면으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온이는 오늘 밖에서 부끄러움을 배워왔다. 다 아는데 나만 모를 때 느끼는 그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이 온이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감정이었던 것 같다.


사실 그런 걸로 치면 온이 보다 내가 더 하다.

국문학과를 졸업했지만 남편에게는 늘 내가 국문학과를 졸업한 걸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에게 맞춤법이나 어려운 단어의 뜻을 물어볼까 봐 두려워서이다. 나도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그게 들통날까 봐 두렵다. 그 두려움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수치심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났다. 수치심이란 무엇인가, 네이버 지식 백과에서 찾은 정의이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 더 깊게 들어가면 자신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가 없다는 것이 바깥에 드러날 것 같은 그러한 감정을 말한다.]


사람들은 수치심을 느낄 때에 수치심을 느끼게   상황이 아니  자신의 '존재' 수치스럽다고 느낀다.


내가 고1이 되었을 때 나는 친구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배스킨라빈스를 가게 되었다. 나는 그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너무 긴장이 되었다. 내가 처음 이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것을 내 친구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알게 될 까봐였다.

그곳에 적인 파인트, 쿼터, 패밀리, 하프 갤런, 레귤러, 싱글, 더블 주니어..... 그곳에 적힌 것들이 내게는 외계어처럼 보였다. 또 아이스크림 종류는 얼마나 많은지....


"주문하시겠어요?"


내게 물어보는 점원의 말에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친구를 바라보며 나는 도움을 요청했다.


"나 이거 잘 몰라. 도와줘."


그때 나는 친구에게서 당혹스러움과 '너 이거 몰라?'라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때의 상황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부끄러웠나 보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것도 아닌데


'수치심 권하는 사회' 책에서 작가는 '회복 탄력성' 대해서 이야기했다. 수치심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수치심을 느끼는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그에 대하여 다른 이에게 공감과 이해를 받을  있을 때에 우리는 회복될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 방법이 이상적인 방법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사실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믿음직한 이들을 만나기가 힘들고 또 그들에게 나의 감정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감과 이해를 받는 것 또한 어렵다.

하나의 방법이 있다.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스스로 나의 수치심에  기울여 주고,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는 것은  수가 있다.


"너 아이스크림 주문 못하는 게 많이 부끄러웠지? 그래, 이해해. 그런데 그게 네가 잘못됐다는 건 아니야. 누구나 처음은 어색하잖아. 네 친구가 조금 더 따뜻하게 반응해 줬다면 좋았을 텐데. 너무했네. 그래도 잊지 마. 너 그거 네가 못났다는 뜻 아니야. 그냥 잘 몰랐던 것뿐이야. "


온이의 마음이 더 튼튼해졌으면 좋겠다. 오른손 왼손을 구분 못해도 나는 소중하고 귀한 존재임으로, 흔들리는 비람 앞에 무너지지 않고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내가 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아이가  일의 성과에 대한 칭찬도 좋겠지만 그보다   아의 존재에 대한 칭찬과 격려를  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세상을 살아가며 숱하게 경험하게 될 사회가 매기는 점수에 허덕이며 휘청거리지 않고 온이의 '존재'가 너무나 귀하고 가치 있음을 알고 다른 이들의 '존재' 또한 귀하게 여겨주는 그런 아이가 되었으면.


오늘 밤은 우리 온이를 더 힘껏 안아주어야겠다.

그리고 내일은 삼겹살을 사서  혼자 점심에 구워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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