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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Jun 13. 2024

나의 소울 푸드

감자탕

나는 스무살이 지나 먹기 시작한 음식 중에 감자탕을 참 좋아한다. 그것도 식당에서 파는 진하고

감칠맛나는 감자탕을 말이다.


뜨거운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는 국물과 시레기 나물과 뼈에 가득 붙은 살고기들은 왠일인지

일을 모두 마친 저녁, 나를 포근히 감싸주는 음식처럼 느껴졌다.


나는 굉장한 자책쟁이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나의 '잘못'과 '실수'에 대하여 굉장한 자책감을 가지고 살았다.


내가 한 작은 잘못이나 실수를 너무나 부끄러워하고 실망한 나머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꼭 닫고 지낼 때가 굉장히 많았다.


흔히들 '이불킥'이라고 부르는 그 순간들이 나에게 너무나 자주 경험되어졌기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하여 피로도와 긴장감이 늘 뒤따랐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즐기게 되는 것 같다.

혼자 있을 때에 내가 나에게 하는 자책과 실수는 적어도 나만 알고 있으면 되니까.

다른 이들에게 널리 알려질 나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늘 오픈하며 살아갈 자신이 없으니

나는 더욱 더 적극적으로 마음을 닫고 온 몸을 웅크린 채 살게 되었다.


그리고 부득이 맺게 되는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어느정도의 선을 긋고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닌 '표준형' 내가 되어서 모법적인 답안이 무엇인지 궁리하며 가장 적절한 말을 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참 피곤하다 피곤해.


이런 내가 언제부터인가 나의 이러한 모습에 대한 자각과 동시에 한없이 나 자신을 홀대함을 발견하게 된다.


다른 이들의 시선과 그들의 판단이 너무도 중요하기에 내가 나 자신을 품어주기 보다는 굉장히 엄격한 잣대로 성공과 실패를 나뉘어 오늘의 나에게는 '패스권'을 주고 내일의 나에게는 '패일(fail)권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나를 안아준 적이 없었다.

나의 실패에 대해서, 나의 실수에 대해서 나는 스스로에게 "괜찮아, 그럴수도 있어."라고 말해주는 대신에

"넌 실패자야."

"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너무 몰지지 않은가, 자신에 대해서.

이것은 겸손함이 아니다. 이것은 교만이다.

겸손한 이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이이지, 결코 그 잘못에 대하여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다.

내가 그리는 '완벽한 이상향'이 있는 사람만이 그렇게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사실 이불킥할 일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일 때문에 온종일 그 생각과 씨름하며 나 자신을 쪼아댔다. '너 왜그러냐? '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리 큰 실수도 아니다. 실수 때문에 어떤 사람이 피해를 입지도 않았다. 물론 하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이제 나, 나 자신을 안아주는 연습을 하고 싶다.

나의 실수에 대하여, 나의 부족함에 대하여, 나의 실패에 대하여

토닥 토닥 등을 두드리며 이야기해 주고 싶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라고.


그러면 다른 이에게도 그리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괜찮아, 그럴수도 있지~."


마치 뚝배기 가득 내어주는 감자탕 한그릇 처럼 그렇게

포근하게, 그렇게 따뜻하게

나와 타인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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