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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딩 Mar 13. 2024

토모다치들의 제주살이

토모다치는 일본어로 친구란 뜻

...코..데스까?

.......데스까?!

.......까??!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되묻고 또 되묻는다.

데스까라... 필히 일본어일텐데, 히라가나 한자도 모르는 나로서는 뭐라 답할 방도가 없다.

그저 똥그란 눈을 바라보며 눈썹 올라간 머쓱한 웃음을 보일 뿐이었다. 옆에 서 있는 친구를 슥 쳐다봐도, 친구 역시 같은 눈썹모양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제주도에 도착한 지 딱 1시간 정도 지났을 때다. 사내 정치질로 소심한 성격이었던 친구는 자신이 희망하지도 않는 희망 퇴사를 자진해서 나온 사람이 됐고, 은둔생활을 하던 차였다. 그런 그녀가 마치 취업이 되질 않아 홀로 멸시의 암흑 굴에 살고 있는 나를 보는 것 같아, 두 은둔자가 손을 맞잡고 탈피겸 생존 목적으로 내려온 제주였다.

공항에서 내려 600번 공항 버스를 타고 내린 작은 동네 마을 버스 정류장.

묵기로 한 숙소에 가기 위해 짐짝 만한 캐리어를 싸들고 기다리고 있는데... 똥그란 눈의 할배가 말을 걸어온거다.


할아버지께 이런 말씀 드리기엔 죄송하지만, 요즘 그 유행한다는 맑눈광, 그 눈빛이었다. 안광이 장열하는 태양 빛에 촉촉하게 반사되는 그런 눈빛. 여튼 그런 눈으로 물어오신다. 시골 동네라 버스가 오기까지 20분 가량 남았다는데, 그 할아버지는 목적지도 따로 없는지 계속 앉아서 말을 붙여온다.


"...데스까...?"

"...코리안. 일본어 몰라요" 내가 말했다.

"아아! ......스까? 아아, 서울?" 할배가 묻는다.

"아, 네네 서울! 서울에서 왔어요, 서울사람이에요" 서울을 강조하며 답했다.

"아, 서울 사람! 제주 사람.. 안같아서! 서울, 여..행! 여행?" 더듬더듬 물어오는 할배에 이거이거, 이 할배 뭐지? 한국어 하시잖아? 잠시만.. 이러다가 어딘가 끌려가는거아냐? 이렇게 어눌해보이시는데 또 어딘가로 끌고 가려는 수작인가? 별별 생각이 다들었다. 굴러가는 눈알이 서로 맞은 친구도 같은 생각이었던 듯하다.


한 십분간 그렇게 시달리다보니, 손짓발짓해서 더 이상 전할 수 있는 피상적인 대화는 고갈된 듯 보였다. 도망치듯 다음 정류장에서 타기로 하며 캐리어를 끌고 할배로부터 도망쳤다. 이제 가겠다며 바이바이,를 외치는데 괜시리 서운한 듯 바이바이를 함께 외쳐주지만 우리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할배의 시선이 뜨거우면서도 조금은 저릿했다.


"서울에서 도망쳐 왔는데, 안광 할배로부터 도망치고 있네 또. 우리 인생 코미디다"

달달달, 돌길 위로 캐리어를 끌며 친구가 어이없는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달달, 캐리어를 끌고 간 끝에 겨우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를 잡아 탔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적지라함은, 친구네 할머니 댁이다. 어쩌겠는가, 짤린 퇴사자와 취준생에게는 돈이 없는 걸. 고모와 함께 계시다는 할머니 댁은 구옥이지만 방이 많이 남는댔다. 하기사 그럴거다. 제주 살던 삼촌들도 다 뭍으로 가겠다며 육지서 자리 잡은 사람들이니, 휑한 집에 되려 할매는 온다는 친구를 반겼단다.


"우리 할매, 치매 있다. 얼마 안되긴 했다고 해서 나도 치매 걸린 할매는 한번 밖에 못 봤어. 이상한 소리 하셔도 이해해달라구. 한 10살 정도 같으신데 이야기하는거 들어보면 귀여워 우리 할매. 물론 가끔 보니까 이런 말도 하는거겠지만서도" 말하는 친구의 입가에 귀여운 조카를 떠올리는 듯한 미소가 걸린다. 그럼, 당연하지. 할매랑 놀아야겠다 나는. 말하며 마당으로 들어서는 나와 친구다.


"할매~ 우리 왔다! 고모 우리 왔어요~!" 외치는 친구에, 버선발로 나오며 반가워하는 할매에게 그간 잘 지냈냐부터 공항에서 파는 '제주 감귤 초콜릿' 한무데기를 할머니에게 안기는 친구다. 제주 사는 사람한테 제주 초콜릿이 뭐냐 핀잔 줬던 나에게, 할매가 젤 좋아하는 초콜릿이라는 친구 말에 조용해지는 나다. 고모는 우리가 와서 한시름 놓겠다며, 자기는 오랜만에 바람 쐬고 오겠다 하신다.


"아, 제주서는 다 문열어두고 사니까. 할매 같은 치매 친구들 있는데, 이따가 놀러오실거야. 놀라지 마. 치매 걸리시구 동네 치매 친구들 사귀고 좋다고 노신다. 나 밤에나 온다~ 할매 잘 부탁하고" 말하는 친구 고모는 호다닥, 꽃신 갖춰 신고 밖으로 나간다.


할매는 뭐가 그리 신난지 친구가 쥐어준 초콜릿 껍질을 까 나랑 친구 손에 두개씩 쥐어준다. 할매 방에는 한가득 뜨개질로 만든 옷부터 인형, 목도리, 스웨터, 벙어리 장갑 등이 가득차 있다. 할매 정신이 멀쩡할 때는 가뜩이나 안좋은 눈 배린다며, 가뜩이나 굽은 허리 더 굽어 디스크 온다며 온가족이 뜨개질을 뜯어말렸단다. 그런데 할매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면서는, 손끝에 전해지는 바늘의 촉감으로 할매의 정신 시간이 되돌아 올 수 있다는 의사 말에 가족들은 형형색색의 실부터 반짝이까지 들어가있는 고급실까지 잔뜩 사다주며 옷만들어달라 성화였단다. 그렇게 차곡차곡 할매 방에는 뜨개거리가 쌓여갔다고 한다.


"코레미테, 내가 쿠츠시다 만들지 친구 줄거다!" 할매가 초록 반짝이 실로 만들고 있는 양말을 들어보이며 말한다.


"..뭐라고 하시는거야?" 문장의 반을 못알아들은 내가 친구에게 묻는다.

"나도 몰라 일본어일껄. 양말 만들었다고 자랑하시는 것 같아. 할매가 제주도 사람이라 어렸을 때 일본어 빡세게 배워야했대. 그때 기억으로 일본어로 막 이야기하시는거같어. 이참에 우리 생활 일본어나 배워보자" 피식 웃으며 속삭이며 친구가 할매에게 아유 이쁘다, 할매는 손재주가 참 좋아~ 연신 감탄을 남발한다. 그리곤 할매, 나 바다 보고 싶다 말하며 할매랑 바깥에 나가자고 이끈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 끝에 잘은 모르지만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는게, 그리고 그걸 입밖으로 매번 내신다는게 씁쓸했다. 거북목을 피하려했던 뜨개질은 시간을 원래대로 흐르게 하려는 자극제가 됐고, 싫어도 꾸역꾸역 배워야했던 일어는 10살 행복한 소녀가 된 할매의 입에 붙은 언어가 됐다. 할매 양 팔을 끼고 바당 보러 가는 길에 여러 생각이 할매의 초록 반짝이 실 마냥 얽히고설켰다.


"어어! 토모다치! 토모다치!!" 갑자기 걷던 할매가 소리친다.

토모다치가 뭐야? 하며 후다닥 검색해보는 친구 대신 내가 할매의 팔을 꼭 붙잡았다.

할매가 신나 흔드는 팔과 시선 끝에는 익숙한 실루엣의 한 노인이 서있었다. 그 노인 역시 할매랑 같은 포즈로 팔을 흔들며 있었다. 아마 그의 시선 끝에도 할매가 있었을테다.


다가오는 할배는, 아까 정류장에서 만난 데스까 남발 할배였다.

할매와 할배의 만남 끝에 알아들을 수 있는 한글 단어 조합을 열심히 들어보자니, 할배는 친한 친구인 할매네 집으로 가는 중이었고 할매는 자기가 너 주려고 양말 뜨는 중이었다며 신나게 대화했다.


"코노히토와 다레?"

할배는 우리도 빤히 쳐다보며 할매에게 물었다. 열심히 번역기를 돌린 친구가 나에게 속삭인다. 누구냐는 뜻이래.

만난지 2시간도 안된 할배는 그새 우리를 잊은 듯 했다. 가는 뒷모습을 그리 바라보며 이야기 하고 싶어했던 그 할배는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내에 우리를 잊어버렸다. 신나서 바당이고 뭐고 할배와 다시 집으로 가겠다는 할매의 뒤를 따르는 나랑 친구다. 거꾸로 흐르는 할매의 귀여운 시간, 거꾸로 흐르지만 미친사람 취급했던 할배의 머쓱한 시간, 그리고 그 둘이 만나서 다시금 거꾸로 시간을 보내는 그 역시간이 참 묘했다. 세상 살이 거꾸로 살겠다며 내려온 제주, 타의도 자의도 아닌 신의 의지로 시간을 거꾸로 사는 할배와 할매의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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