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에서 이따금 보게 되는 사람이 있는데 볼 때마다 서서 빵을 먹고 있었다. 바로 뒤가 편의점이고 빵집인데 말이다. 편안한 실내를 마다하고 길에서 먹는 이유가 뭘까? 버스를 놓치게 될까 신경이 쓰여서 그럴 수도, 혹은 습관이 되어서 그럴 수도 있을 터이다.
버스 안에서 음식물 섭취가 금지된 이후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이 생겼다. 시행초기 먹지만 않으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테이크아웃 음료를 들고 타려다가 거부당하는 승객들도 있었다. 승객의 얼굴에는 억울함이 기사분들의 얼굴에는 답답함이 묻어났었다. 이제 어느 정도 정착이 되었는지 테이크아웃 음료를 들고 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신 정류장에 문제가 생겼다. 마시던 음료를 들고 탈 수가 없으니 두고 간다. 정류장에는 쓰레기통이 없고 버스에는 들고 탈 수 없고 그러니 두고 간다. 아마도 처음에는 두고 가는 것에 불편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되었을 터이다.
테이크아웃 하는 것이 일상처럼 자리 잡았는데 거리에 쓰레기통은 없다. 골목길에도 구석진 곳에 얌전히 놓여있는 빈통들을 보게 된다. 정류장이야 뭐 말할 것도 없다. 날이 더 더워지면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빈통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나마 빈통은 나은데 내용물이 남아있는 경우는 벌레도 꼬이고 냄새도 난다.
정류장에서는 버스도착 안내와 함께 정류장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공중도덕에 기대어하는 이야기가 공허하게 들린다. 차내 음식물 섭취를 제한하는 버스회사의 입장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운행 중에 음식이 차내에 쏟기 기라도 하면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모두가 쾌적하게 이용하게 만들기 위한 조치임은 맞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이라면 정류장으로 문제가 이동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얼마 전 한 분이 빈 음료 통을 들고 탑승을 요청하셨다. 정류장에 두고 가기가 꺼려지셨는지 속이 비어 있음을 보여주시며 탑승해도 되겠느냐 물으셨고 기사님은 살짝 난감해하시기는 했지만 조심해 주실 것을 당부하고 탑승하도록 해주셨다.
규칙으로만 모든 일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간의 상호성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더운 여름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시원한 음료생각이 날 수 있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마셔야지 하고 샀는데 생각보다 버스가 빨리 도착하면 두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음료를 다 마시고 타려고 버스를 그냥 보낼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 말이다.
버스도착 시간을 가늠해서 다 마시지 못할 것 같으면 테이크 아웃음료가 아닌 뚜껑이 있는 음료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문제가 안된다. 탑승하고 목적지까지 가서 버리면 될 테니까. 또한 내용물이 없는 빈통이라면 가방에 넣어뒀다가 목적지에 가서 버리면 될 테니 버스의 쾌적함도 정류장의 깔끔함도 지킬 수 있다.
사소한 일이고 습관으로 행하게 되는 일이다.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하고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다른 중요한 일도 많은데 뭐 이것까지 신경 써야 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어디 이 일만 그럴까? 우리가 행하는 많은 일들에서 타인의 수고로움에 대해 무지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고의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생각해 볼 마음을 내어본 적이 없을 뿐이다.
'그건 그들의 일이야'라고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나 또한 언제든 '그들'로 분류되어 이해받지 못할 수 있다. 힘든 삶의 여정에서 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돕는 것이 나를 위한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일 텐데 펄벅 여사가 우리나라에 방문했을 때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본인도 지게에 짐을 싣고 가고 있는 농부를 보고 소 달구지에 짐을 다 싣고 가면 될 것을 왜 본인도 짐을 지고 가는지 물으셨다. 농부는 이 소도 오늘 하루 종일 농사일을 도와 힘들 텐데 혼자만 짐을 지게 할 수는 없다고 그래서 나눠지고 간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펄벅여사는 자국의 농부라면 소에게 짐을 다 싣고 그 소에게 올라타서 집으로 갈 것이라고 하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따스한 이야기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야 물질이 아무리 많아진들 행복의 끄트머리라도 잡을 수 있을까 싶다. 내 것만 챙기면 그 순간은 이득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으나 긴 시간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상호작용 속에서도 그럴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터널시야'라는 개념이 있다. 압박을 받게 되면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게 되어서 전체적인 상황을 보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과연 무엇이 조화로운 삶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잠시 멈추어 살펴보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 여유를 데려올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