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멈췄다

by 한가람

시내버스 파업이 길어지고 있다. 오늘로써 4일째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답답함과 짜증, 체념 비슷한 감정이 읽힌다. 노사 간 입장이 팽팽해서 협상이 쉽지 않아 보이는데 조정위원회에 조정신청이 접수돼있다고 하니 기대를 걸어본다.


파업예고를 출근길 버스에서 들었다. 난감함이 스쳤다. 일터에 도착하자마자 대체 노선을 찾았다.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버스노선은 5개인데 가장 자주 다니고 운행거리도 짧은 노선이 파업하는 지자체 소속이다.

4개의 노선은 거주지 소속의 버스들이라 고맙게도 운행은 된다. 좌석버스라서 자리가 없으면 중간에 내려야 하니 좌석확보는 필수다.


그중에서 탑승이 편리한 노선을 골라서 계획을 세웠다. 집에서 가까운 정류장이 걸어서 25분 거리이다. 거기서 타면 앉아서 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출발점 근처 정류장을 검색했다. 다행히 경전철을 타고 갈 수 있었다. 좋아 이렇게 해보자 하고 마음먹고 소요 시간을 계산했다. 평소보다 30분 일찍 나가야 했다. 아침에 30분 일찍이라니. 벌써부터 피곤하다. 그날 저녁 알람을 더 앞으로 돌려서 맞춰놓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파업 첫날 새벽에 일어나서 준비를 끝내고 경전철을 탔다. 시간은 충분했고 무사히 버스에 탑승했다. 졸음이 몰려왔지만 집 가까운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 승객들이 타고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다행히 집 가까운 정류장에서도 탑승이 가능해 보였다. '내일은 여기서 타야겠다.' 생각해 본다. 도착 시간도 확인해 두고 출발지에서 이 정류장까지 소요시간도 계산해 두었다.

시내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밀려들어왔다. 전세버스를 임대하고 임차택시를 운영하고 있지만 평소 운행량의 1/3도 안되니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금세 버스 안은 내리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찼다.


출근 시간 1분을 남겨놓고 정류장에 도착했다. 이런, 어제 늦을 수도 있겠다고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지각이다!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냅다 달렸다. 3분 지각. 그래도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라고 서로 격려했다. 안심이 된다. 그래 무사히 도착했어.


정신없이 일과를 끝내고 퇴근시간이 되었다. 타야 할 버스가 곧 도착한단다. 서둘러서 나와서 버스를 기다렸다. 근데 버스에 올라타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차있다. 버스 기사님도 난색을 표하시며 손을 흔든다. 탑승불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출발지로 가서 탈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치기는 했는데 1시간 간격으로 운행이 되는 버스라 너무 늦을 것 같았다.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퇴근해서 쉬고 있던 남편은 졸린 목소리로 알겠다며 데리러 온다고 했다. 그날 저녁 퇴근길을 다시 계획했다. 노선 4개의 기점 출발시간을 확인하고 역방향으로 가서 몇 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될지 확인해 두었다. 피곤하다.


파업 둘째 날이다. 전날 탔던 버스보다 앞시간의 버스를 타기로 했다. 집 가까운 정류장에서 타면 집에서 나가는 시간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계산이 잘 맞아서 수월하게 탑승을 했다. 시 권역을 넘어가는 경계가 가까워오자 기사님은 중간에 내릴 분이 있는지 확인하고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분들께 좌석이 없어 태우지 못한다고 일일이 사과를 건네셨다. 한 정류장에서는 어르신이 한 시간을 기다렸다며 꼭 타야 되는데 태워주면 안 되냐고 사정하셨다. 법이 그렇게 정해져 있어서 어기면 벌금 삼백만 원을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어르신은 물러나셨다. 법이 왜 그러냐고 불만을 표하시면서 말이다. 그러게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다고 만든 법이 이렇게나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다음 버스에 탑승이 가능하셨기를 빌어보았다.


퇴근길에 바로 역방향 정류장으로 갔다. 23분 후 도착이란다. 그래도 내가 탈 버스는 안내판에 뜨기라도 한다. 임대관광버스는 버스정보시스템에 연결이 되지 않으니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퇴근 시간이라 그래도 자주 버스가 오기는 하는데 각자 타야 할 노선이 있으니 한 시간째 기다리는 분들도 있어 보였다. 도착한 버스들 중엔 더 이상 탈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들어차 있기도 했다. 탑승할 버스가 왔다. 고맙게도 자리가 있다.

원래는 기점까지 가서 돌아 나오는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시중심지를 벗어나자 눈에 띄게 이용객이 줄었다. 그래서 기점 바로 직전 정류장에서 내려 환승했다. 마침 기점에서 출발했던 버스가 바로 와서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었다. 시중심부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좌석에 여유가 보였다. 다음날 어디서 탈지 눈여겨봐 두었다. 퇴근하고 걸어서 올 수 있는 거리다. 이렇게 한 시간 늦었지만 무사히 귀가했다.


파업 셋째 날이다. 이제 시간과 노선이 다 파악이 되어서 이용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출근시간 퇴근시간이 더 늘어나서 피로가 쌓이고 있다. 늘 이용하는 노선이 아니라 다른 노선을 이용하려니 소요시간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 핵심 문제였다. 이건 이용해 봐야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대략적인 시간은 유추할 수 있지만 환승을 하는 경우는 갈아탈 버스와 시간을 또 맞춰야 하니까 쉽지 않았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상의 시스템중 하나가 멈췄다. 시민들은 시간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평상시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자유롭게 다닐 수 없다는 사실에 불편감을 느껴야 했다.

이런 일은 언제든 어느 분야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농업분야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고 가정해 보자 그건 바로 생존과 직결된다. 에너지 분야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산업이 멈출 것이다. 가정 내에서도 아마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전기가 없으면 모든 가전은 무용지물이니까.


우리가 나의 입장만 고수하며 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장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결국 양보와 이해가 내게 득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말이다.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양보하면 더 잘 지낼 수 있을 텐데 그 길이 참 어려운가 보다. 상대도 나만큼이나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믿음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무인도에 가서 자급자족하면서 살게 아닌 이상 인간은 혼자서 못 산다.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같이 살아가는 사람을 믿지 못하니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촘촘히 연결되어서 작동되는 네트워크가 무너지면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생존할 수 있겠는가?


시류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다. 하지만 그 시류를 만들어 내는 것 역시 개인이다. 각 개인이 더 나은 선택을 한다면 시류도 더 나은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세상이 그러니 나도 그런다는 것은 그냥 자기 변명이다. 자신의 선택을 남탓으로 돌리는 것이니까.


매 순간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그래서 자신과 공동체를 위한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하나만 보지 말고 전체를 보는 눈을 기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너'를 살리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다. 나만 잘 살수있는 공동체는 없다. 나머지 구성원은 들러리가 아니다. '나'와 똑같이 잘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지성체이다.

맞잡은 손이, 베푸는 마음이 많이 그립다.

이전 23화정류장의 식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