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연장근무를 해서 퇴근길은 더 노곤했다.
환승하는 정류장에 내렸는데 탈 버스가 3분 남았다고 떴다. 집과 더 가까운 곳에 내릴 수 있는 버스라 잘됐다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연배가 조금 있어 보이시는 아주머니 한분이 다른 버스에서 내려서 정류장으로 오셨다.
보통은 자신이 탈 버스가 언제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류장의 전광판을 보시는데 이분은 아니셨다.
정류장 앞뒤로 주변을 몇 번이나 둘러보셨다.
속으로 왜 저러시나 생각하고 있는데 말을 걸어오셨다.
"여기 44번 버스 오지요?"
"네. 곧 도착합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시면서 안절부절못하셨다.
"OO 가는 거 타는데 맞지요?"
"네. 맞습니다. 이쪽 방향입니다."
안심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다시 답해 드렸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이셨다.
"아, 내가 안 이러는데 갑자기 방향을 잘 모르겠네."
"밤이니 그러실 수 있지요."
진정하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말씀드렸다.
그러나 도움이 되지 않았던 듯 연신 주위를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여기 빵집이 있었는데, 편의점도 있었고 어디 갔지?"
빵집과 편의점은 길 건너편에 있었다.
"빵집, 편의점은 길 건너에 있고 OO가시는 거면 여기서 타시는 게 맞습니다."
불안해하셔서 한번 더 말씀드렸는데,
순간 생각들이 하나로 모여서 정리된 듯
갑자기 팔을 툭 치시면서 "아니, 내가 갈 곳이 OO 이, 아니, □□야. 저쪽이네 건너가야겠다."
하시고는 말릴 새도 없이 차들이 오고 있는 길을 달려서 건너가셨다.
갑작스러운 아주머님의 행동에 길을 건너시는 모습을 시선으로 좇다가 건너편 정류장에 무사히 도착하시는 걸 보고서 관심을 거뒀다.
다행히 가셔야 할 곳이 기억나시고 무사히 길도 건너시긴 했으나 불안해하시던 모습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5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그분의 지각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어느 순간 갑자기 내가 가야 할 곳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고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원래 알던 곳과 다른데 왜 다른지 이유를 알 수 없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분명 자주 다니던 거리고 자신이 잘 알던 곳인데 여기가 거긴지 확신이 들지 않고 머릿속의 기억과 그 순간 자신이 지각하는 공간이 비틀린 것처럼 느껴진다면 아마도 아무것도 믿지 못하게 될 것 같다.
늦은 저녁 어두워진 거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 어느 방향에서 타야 하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당황하시던 모습이 우리가 언젠가는 겪게 될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안타깝고 서글프고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순간 도움을 청하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체계나 준비가 우리에게 얼마나 되어있는 것인가?
인지에 문제가 생기는 그때가 어디에서 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길을 걷다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차를 타고 가다가, 운전을 하다가일 수도 있다.
그 순간 가까이 있는 누군가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일 수도 있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안전망이 되어줄 수 있다.
그럴 것이라는 것을 믿으며 살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