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과 편함 그 사이

by 한가람

9월 중순이다. 가을이 시작되는 시기인데도 새벽부터 후덥지근하다. 태풍이 올라온다더니 덥고 습한 공기가 대기에 가득하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햇빛이 제법 따갑다.

아침 8시. 한여름도 아니건만 동향인 버스정류장에 앉아있으니 땀이 흐른다.


이제 곧 추석이다. 분명 계절은 가을인데

기온은 왜 이런 건지.

늦게까지 위력을 떨치는 더위를 향해 작게 투덜거려 본다.

일어서서 그늘에 있을까 하다가 도착시간 3분이라는 전광판 알림을 보고 그냥 앉아있었다.


여러 대의 버스가 그사이 멈췄다. 승객을 내려주고 다시 태우고 갔다. 잠깐 사이 그 버스들이 만들어 주는 그늘에 '살 것 같네 '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늘은 이렇게 고마운 것이었구나. 새삼 느껴졌다.

뜨겁고 땀나는데 순간 시원해진다.

다시 뜨겁고 땀나는데 순간 시원해진다.

뜨거움과 시원함 사이를 오가며 불편함과 편안함을 짧은 순간 번갈아 느꼈다.


편안함이 더 좋은 것은 분명 하나

불편함이 같이 있어야 편안함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편안함을 느끼려면 불편함을 느껴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불편함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다고까지 하기는 적절하지 않을지 몰라도 분명한 역할이 있어 보인다.


불편함을 느껴보면 상대적으로 무엇이 편안함인지 더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불편함을 꺼리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불편함에서 벗어나고자 궁리를 하게 된다.

머리를 쓰고 몸을 써서 불편함에서 벗어날 방안을 찾아낸다.

효과적인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본성(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먹을 것을 찾기 어려웠던 고대인류의 생존기술)을 거스르고 무언가를 하려 하게 된다.

잘 다루면 불편함은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많은 것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추구하고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 줄 수도 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편안함도 불편함도 동시에 수용하는 관점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어 진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서로 떼어놓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게 한다.

상대적 비교를 통해 느끼게 되니 어쩌면 편함도 불편함도 우리가 만든 관념에 불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행과 불행에 대한 생각도 같아 보인다.

무엇이 행이고 무엇이 불행이냐 질문을 해본다면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행복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릴 수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떤 일을 겪고 힘이 들 수 있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아플 수도 있고 좌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편하냐 편하지 않느냐,

행이냐 불행이냐를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편함이고 어디까지가 불편함인가? 어디까지가 행복이고 어디까지가 불행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기준을 어디다 둘 것인가?

같은 일이 벌어져도 누군가는 희망을 보고 누군가는 절망을 본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아마도 가장 근접한 답은 각자의 '기준이 있다'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 그 기준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편함도 행복도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일상에서, 우리의 일상에서 평화를 선택해 보자.

많은 연습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수 있는 지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