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 버스 안은 조용하다.
잠이 덜 깨어 조는 사람도 있고 멍 때리며 창밖을 보는 사람도 있다. 휴대폰을 보기도 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출근 전의 여유를 누린다.
그런데 갑자기 큰 목소리가 고요를 비집고 들어온다.
"어! 저기 내가 지금 간다. 어, 그래. 버스 탔다.
아이야 그냥 간다니까. 그래. 알았어."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그녀는 다섯 개나 되는 보따리를 가지고 있었다. 행여 보따리가 버스의 흔들림에 휩쓸릴까 단도리를 하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첫 번째 통화는 2분 남짓.
자제분께 농사지은 농산물을 가져다 드리려나 보다
혼자 생각하며 부족한 잠으로 뻑뻑해진 눈을 감았다.
잠시 휴식을 하던 순간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버스 안을 감아돌았다.
"어, 그래. 그쪽으로 온다고? 아이라니까.
거 참, 그쪽에 가면 돼. 에헤이, 간다. 그래, 알았어. "
그 후로도 다시 통화하고 끊고 가 되풀이되었다.
그녀는 운전자석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아무 말 않고 운행을 하던 기사가 세 번째 통화에서는 불쾌함을 드러냈다.
"아지매, 여서 그리 큰소리로 말하면 우얍니꺼"
(아주머니, 여기서 그렇게 큰소리로 말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미안해요. 내가 귀가 잘 안 들려 가 목소리가 컸나 보네. 알겠어요. 알겠어."
그녀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이내 다시 걸려온 전화를 예의 큰 목소리로 받았다.
대충 유추해 보자면 버스에서 내리는 위치를 논의하는 듯했다.
드디어 내릴 위치가 정해졌는지 그녀는 자신의 목적지를 밝히며 어디서 내려야 다른 버스로 갈아탈 수 있는지 기사에게 물었다.
기사는 퉁명스레 모른다고 답했고 그녀는 몸을 돌려 큰소리로 승객들에게 물었다.
중간쯤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가 어디서 내려서 몇 번 버스를 타면 되는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잘 들리지 않았는지 달리는 버스에서 벌떡 일어나서 가까이 다가갔다.
답을 해주시던 아주머니도 당황스러웠는지 앉으라고 손짓을 하셨고 그녀는 알겠다고 빈자리에 앉아서 내릴 위치와 탈 버스를 전해 들었다.
곧 정류장이었고 짐보따리를 챙겨서 하차문쪽으로 옮겼다. 한 번에 다 들고 내리지를 못하니 마침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는 남성분이 무거워 보이는 보따리를 들고 내려주셨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그녀는 정류장에 내려섰고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그 광경을 보는 동안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처음엔 큰 목소리로 통화가 이어지는 것에 대한 불편감이었고
다음으로는 다섯 개나 되는 보따리를 싸들고 이 아침부터 누구에게 가져다주려고 저리 애를 쓰시나 싶었다.
그리고는 귀가 안 좋아서 민폐 아닌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이 그녀에게는 어떻게 다가올까 싶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으면 말을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말을 이해하기 어려워지면 목소리는 커진다고 한다.
내 목소리가 작게 들리니 실제도 작은 것으로 착각하고 더 크게 이야기하게 되는 모양이다.
나는 아직 소리가 잘 들리지만 언제까지고 이러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보청기가 잘 나와있다고는 하지만 어른들께서 잘 착용하지 않으시는 것을 볼 때 안경만큼 유용하지는 않나 보다.
기술이 더 발전해서 깨끗하게 잘 들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가능한지 어떤지 모르겠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동의 자유가 있다.
내가 남에게 폐를 끼치는 존재가 된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는 이 이동의 자유를 어떻게 다루려고 할까?
아침버스의 그녀는 자기가 갈 곳을 가려고 했다.
만날 사람과 정확한 장소에서 만나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했다. 누군가를 불쾌하게 할 의도는 없었다.
그것이 진실이다.
공중도덕을 따르면서도 그녀가 혹은 미래 어느 시점의 나 또는 우리가 스스로 이동의 자유를 철회하지 않고 당당히 다닐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갇혀서 살아도 괜찮은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