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환승정류장에서 집까지 가는 노선은 3개가 있다. 그중 한 노선은 외곽의 공장지대를 경유하여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기에 자주 이용하지는 않는다. 며칠 전 버스 시간이 애매해서 먼저 온 그 버스를 탔다.
어둑해진 무렵이라 공장지대로 들어가니 더 어두웠다. 버스 안만이 환하게 밝혀진 채였다. 정류장마다 타는 사람은 외국인 근로자였다. 퇴근 시간 그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서 버스에 올라탔고 우리가 하루 일과를 나누듯 동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피곤한 몸을 의자 깊숙이 누이고 창에 기대어 잠을 청하기도 했다.
정류장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 올랐고 곧 버스는 외국인 근로자들로 가득해졌다. 대충 봐도 40명 가까운 승객 속에 내국인은 나 포함 서너 명 정도였다. 분명 집으로 가는 버스인데 잠시 내가 이방인이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사는 이 지역만 해도 외국인 근로자가 만 명이 넘어간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싶다.
자국에서 먼 길을 와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 모두 각자의 사연을 안고 왔을 터이다. 돈을 벌기 위해 왔다는 사실은 동일할지 모르나 그 뒤의 배경은 다 다르겠지. 누군가는 나이든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누군가는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누군가는 답없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독일로 사우디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떠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전에는 속아서 미국으로 멕시코로 목화와 사탕수수 농장의 일꾼으로 떠나기도 했고 말이다.
현실을 더 낫게 만들고자 하는 열망으로 떠나갔고 떠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삶이 원했던 대로 흘러가기만 할까. 임금은 밀리고 떼이기도 하고 부상을 입기도 하고 목숨을 잃기도 한다. 그런 일에 대해 대비는 충분했으면 싶다. 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이이니 말이다.
물류가 오가고 사람도 오가고 편리한 교통과 각 나라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외국인도 외국으로 나가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아졌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들이 낯선 이방인이 되듯
외국으로 나간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방인으로 낯설고 어색한 위치에 있을 터이다.
떠나온 사람이든 떠나간 사람이든 각자의 사연들이 있을 것이고 이루고자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모든 것이 새롭고 어색한 환경에 적응하며 하루를 살아 내어야 한다는 것에는 다름이 없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방인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싶은 걸까? 자국민과의 형평성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들이 정착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합의는 어떤 모습인가?
당나라의 수도 장안은 국제적인 도시로 유명했었다고 한다. 여러 사상들을 받아들였고 종교 건축도 다양했으며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타국 출신자들에게도 기회가 있었다. 여러 인종이 어울려 살아가던 실크로드의 출발점이며 국제 무역의 중심지이자 교역의 중심지였다. 무려 1400년 전에 말이다.
우리가 과거 시대보다 더 지적으로 성장하고 제도와 문물이 더 발전한 게 맞는걸까?
저들도 결국엔 잘 살아보기 위해 가족과 친지와 정든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라는 것, 우리와 생각이 다르고 관습이 다르고 일처리 방식이 달라 어긋남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저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추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그런 문제를 해소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주무부처에서 할 일이고 시민들은 그에 대해 지속적인 의견을 내어야 한다는 것, 우리는 사람을 들여온 것이지 물건을 들여온 것이 아니므로 그들도 같은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럴만한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말이다.
우리는 우리끼리 살아온 세월이 길다. 이방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걸까?
우리가 적절한 답을 찾아낼수 있으리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