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이 전하는 이야기
자유농장에는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깃들어 산다.
딱따구리가 커다란 동백나무의 가지를 부리로 쪼기도 하고, 장끼가 인기척에 놀라 밭고랑에서 푸드덕 날아오르기도 하며,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커다란 수리부엉이가 느티나무 꼭대기에 앉아서 부어내리는 달빛을 받으며 부엉부엉 울기도 한다. 농장 앞산에선 꾀꼬리와 소쩍새가 무시로 울어대고, 제비들이 열쌔게 날아다니는 허공을 재두루미가 유유자적 가로지르면 그보다 까마득히 높은 하늘 위에서 송골매가 농장을 내려다보며 빙빙 맴을 돌기도 한다.
그러던 작년 초여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딱새 한 쌍이 느티나무 밑 야외테이블 주변을 포르릉포르릉 날아다니더니 느티나무 뒤에 지어놓은 창고 안 으슥한 공간에 둥지를 틀고 다섯 개의 알을 낳았다. 이를 어쩐다, 창고 안에는 온갖 농사 장비들이 잔뜩 놓였는데 함부로 창고 문을 벌컥벌컥 열 수도 없고 고심 끝에 나는 창고 밖에다 농사 장비들을 비치해놓은 뒤 농장 단톡방에 이만저만하니 딱새들이 이소할 때까지 창고 출입을 삼가라는 공지를 올렸다.
그런데 무슨 영문에선지 딱새는 알 품기를 포기하고 둥지를 떠나버렸다. 싸늘하게 온기를 잃은 다섯 개의 알을 땅에 묻으며 나는 오랫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고민을 해보았지만 그 이유는 끝내 알지 못했고, 그 이후로 오랫동안 창고에 드나들 때마다 무언가 텅 비어버린 상실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게 해가 바뀌었고 봄이 무르익은 어느 날, 농장 회원 한 분이 농장간판 옆 우체통 안에 딱새가 둥지를 틀었고 그 안에 여섯 개의 알이 들어있다는 희소식을 전해주었다. 세상에 이렇게 반가운 일이 있나, 살금살금 다가가서 가만히 우체통 안을 들여다보니 정말로 그 안에 힐끗 둥지가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우체통 주변에 금줄이라도 쳐주고 싶었지만 그 사소한 변화가 괜한 사달을 불러오지나 않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에 나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우체통 앞을 성큼성큼 지나쳐 다녔다.
우체통 안에 딱새가 알을 낳은 지 이삼 주쯤 지났을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나는 우체통 문을 살그머니 열어보았다. 그때였다, 병아리보다 훨씬 작은 아기 딱새 한 마리가 순식간에 우체통을 벗어나 서너 걸음 떨어진 바닥에 착지를 했다. 둥지를 벗어난 녀석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종종거렸다. 너무 놀란 나는 녀석을 다시 둥지에 넣어주기 위해 조심조심 다가가서 두 손으로 살포시 아기새를 감싸 쥐었는데 아뿔싸, 그 사이에 다섯 마리의 딱새 새끼들이 동시에 우체통 밖으로 튀어나와 여기서 짹 저기서 짹 신바람을 냈다. 때마침 주변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지 어미 딱새가 부리나케 새끼들 앞에 내려앉았고, 졸지에 죄인이 되어버린 나는 손안에 쥐고 있던 아기새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녀석은 어미새 앞에 모여서 종종거리고 있는 형제들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고 녀석이 무리에 합류하자마자 딱새 가족들은 포르릉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순간 놀랐을 딱새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동시에 무사히 이소해간 녀석들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웠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폭우가 내리는 오후에 우체통 문을 열고 텅 빈 딱새 둥지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녀석은 어떤 마음으로 농장 주차장 입구에 있는 우체통 안에 둥지를 튼 것일까. 아마도 농장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알았기 때문은 아닐는지. 녀석과 대화할 기회는 없겠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