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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재 Apr 12. 2024

인터스텔라 - 항성과 항성, 마음과 마음 사이 (2)

철 지난 영화 분석





  지구는 곧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 나사(NASA)에겐 두 가지 플랜이 있다. 몇 십 년 전에 토성 근처에 웜홀이 열렸고 웜홀과 관계가 있을 이상 중력 현상이 지구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나사는 이 현상을 인류가 닿지 못한 기술을 지닌 ‘그들’이라는 존재의 손길로 생각하며, 그들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웜홀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쿠퍼가 비밀리에 재조직된 나사의 좌표를 알게 된 계기도 이상 중력 현상이었다. 딸 머피의 방에 규칙을 가지고 내려앉은 먼지를 관찰한 끝에 알아낸 것이다. 마치 쿠퍼가 그들에 의해 선택받은 것처럼.


  두 플랜은, 앞서 나사로 미션의 대원들이 보내온 행성의 데이터를 수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인류에게 적합한 행성 후보로 (밀러 행성을 포함해) 세 행성이 추려졌다. 플랜 A는 현 인류 전체를 구원하기 위한 작전이다. 나사는 웜홀과 이상 중력 현상을 보고 중력의 직접적인 조작이 가능함을 확신했다. 만약 중력을 조작하여 적은 힘으로 무거운 물체를 우주로 쏘아보낼 수 있게 된다면? 나사 건물은 현 인류를 전부 수용하여 우주로 나아갈 수 있는 우주선 겸 주거시설, ‘스페이스 콜로니’로 지어졌다. 스페이스 콜로니를 하늘로 띄우기 위해 풀어야 하는 중력 조작의 열쇠는 ‘중력 방정식’이다. 중력 방정식은 아직 미완이기에 나사의 총책임자 브랜드 박사는 지구에 남아 방정식을 풀고 있다. 과거 나사로 대원들이 확인한 행성들을 인듀어런스 대원들이 검토하여 최종 정착지를 정하고, 완성된 중력방정식으로 띄운 스페이스 콜로니가 그곳으로 향하는 것. 이것이 플랜 A이다.

  플랜 B의 전제는 중력 방정식 풀이의 실패이다. 스페이스 콜로니를 띄울 수 없으면 현 인류를 구원할 방도가 사라진다. 플랜 B를 대비하기 위해 인듀어런스 호는 수백 개의 수정란을 보관하고 있다. 인류의 이주가 불가능해지면, 새로운 터전에서 쿠퍼 일행은 수정란들을 배양해 새로운 사람들을 태어나게 해 새 문명을 일구도록 해야 한다. 지구의 사람들을 버리더라도 인류라는 종은 나아가야 한다. 즉 플랜 B는 지구에 남겨둔 모든 인류의 절멸을 뜻한다.


  영화의 중후반에 드러나는 사실은, 브랜드 박사는 이미 중력방정식이 완성할 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방정식은 풀었지만 풀어낸 방정식은 반쪽짜리 해답에 불과했다. 나머지 반쪽은 블랙홀에서 관측할 수 있는 데이터를 풀어내야 하지만, 블랙홀의 내부를 들여다본 이는 빛을 포함해서 누구도 살아나올 수가 없으니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아낸 과거의 브랜드 박사와 나사로 대원 만 박사는 이를 숨기기로 결정한다. 잔인하지만, 나사로와 인듀어런스 호 대원들이 지구에 남겨둔 소중한 이들을 구할 수 있다고 믿어야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랜드 박사는 그대들이 귀환하면 중력방정식이 완성되어있을 것이라며 대원들을 우주로 보냈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존 브랜드


  우주로 떠나는 대원들에게 브랜드 박사가 읊어준 시가 있다. 딜런 토마스의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밤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제목처럼, 삶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노인들에게 죽음 앞에 포기하지 말고 무언가 남기기 위해 저항할 것을 외치는 내용이다.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브랜드 박사가 읊어준 시대로 행동하고 있다. 나사로 대원들 모두 꺼져가는 인류라는 불씨를 다시 지피기 위해 죽음까지 각오하고 외계 행성으로의 여정에 나섰다. 시의 내용을 정확히 말하자면 죽음을 모르고 용감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인지하고도 계속해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브랜드 박사의 딸이자 인듀어런스 대원인 아멜리아 브랜드는 밀러 행성에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데이터를 회수하기 위해 전진하며, 만 박사의 배신으로 임무 실패에 가까워진 때에도 쿠퍼의 희생을 등에 지고 마지막 후보지 행성인 에드먼드 행성으로 나아간다. 쿠퍼는 브랜드가 플랜 B를 완수하도록 블랙홀인 가르강튀아 속으로 몸을 던진다. 이는 브랜드 박사를 가르강튀아로부터 벗어나게 함과 동시에 플랜 A 완수를 위한 일말의 희망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회전하는 블랙홀로서 가르강튀아가 가진 특이점으로 인해 혹시라도 블랙홀 외부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것에 성공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완인 중력방정식을 완성해 플랜 A를 다시 재개할 수 있다. 나사로 대원이었던 만 박사도, (비록 그 방향은 심히 잘못되었으나) 자신이 고른 행성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지만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데이터를 조작하여 그의 행성이 생존에 적합하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지구에 남아 브랜드 박사를 도와 중력방정식을 풀던 쿠퍼의 딸 머피도 풀이가 지구에서 불가능함을 알았지만 이에 포기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 자신의 방에서 벌어지던 이상 현상들에서 느낀 ‘사람이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기억해내고 미약한 희망이나마 쫓아 옛 집으로 향한다.

  정작 죽음 앞에 오롯이 수긍한 자는 인터스텔라 작중 시를 읊는 주체인 브랜드 박사이다. 그는 일찍이 플랜 A의 불가능을 깨닫고는 포기해버리고 대안을 찾았다. 오히려 자신이 그렇기에 다른 대원들과 중력방정식 연구를 돕는 머피에겐 죽음과 고난 앞에 체념하지 말아달라고 시를 읊조렸는지도 모른다.




"감정적인 존재와의 100 솔직한 대화가 항상 현명하거나 안전하지는 않죠."
-AI 타스, 자신의 신뢰도 레벨 90%임을 밝히며
"우리도 90%로 합시다, 브랜드 박사."
-조셉 쿠퍼

  자신을 그리워하는 딸을 지구에 두고 우주로 향하는 쿠퍼의 기분은 어떠할까. 여차하면 그들을 버리고 새 인류를 꾸릴 준비까지 마친 상태로. 아멜리아 브랜드는 노쇠한 아버지를 두고 왔다. 아픔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도 다르다. 브랜드 박사의 딸 아멜리의 눈에는 쿠퍼가 인류를 구하기 위한 임무를 앞에 두고 한없이 감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임무 초반에 쿠퍼는 아멜리아에게 상실의 아픔에 대해서 대화를 걸어보지만 원치 않는 아멜리아는 가시를 세운다. 쿠퍼는 임무를 돕기 위해 동승한 로봇 타스의 신뢰도 레벨 (인간과의 대화에서 진실을 말하는 정도)이 90%라는 말에 아멜리아에게도 자신들의 신뢰도 역시 그 정도로 출발하자고 말한다.


사랑은 우리 인간이 발명한 게 아니지만 관찰이 가능하고 강력하죠.
우리 인간은 이해 못하는 그 무언가를 의미할지도 몰라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높은 차원의 존재에 대한 증거일지 모른다구요.
(…)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에요
-아멜리아 브랜드

  밀러 행성의 탐사가 실패로 끝나고 20년이라는 시간을 손해 본 시점에서, 살아남은 일행은 연료가 만 행성과 에드먼드 행성 중 한 곳에 갈 만큼만 남았다는 쿠퍼의 말에 행선지를 정하고자 한다. 만 행성은 가깝고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온다. 에드먼드 행성은 멀고 얼마 전 신호가 끊겼지만 데이터가 만 행성보다 좋다. 밀러 행성에서 복귀한 후, 쿠퍼는 지구로부터 온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머피는 자신을 떠난 아버지를 향한 원망으로 긴 시간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었다. 쿠퍼의 시간이 멈춘 사이 머피의 시간은 20년이 흘렀다. 머피는 자신이 그녀를 떠나던 아버지의 나이가 되자, 메시지를 보내 아버지가 혹시라도 돌아온다면 지금이 적절한 때라며 눈물을 흘린다. 쿠퍼는 돌아가 딸을 보고 싶은 생각이, 딸에게 했던 반드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지켜주고 싶은 생각이 절실하다. 그럴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선 연료를 아끼기 위해 보다 가까운 만 행성으로 가야한다. 반면 에드먼드 행성에서 냉동수면 중인 에드먼드는 아멜리아의 연인이다. 그녀 역시 그를 다시 보고 싶다. 아멜리아는 에드먼드 행성으로 가자고 일행을 설득하고, 쿠퍼는 에드먼드가 아멜리아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궁지에 몰린 그녀는 위에 인용한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식견, 가능성을 얘기해보지만 미친 사람처럼 보일 뿐이다. 후에 쿠퍼는 아멜리아를 찾아가 이성적으로 생각한 것이라며 사과하지만, 아멜리아는 쿠퍼가 남은 연료량에 대해 브리핑할 때 애초부터 지구로 돌아갈 몫의 연료를 빼놓고 계산했음을 알고 있다. 그녀는 만 행성도 적합하지 않을 경우 임무의 성공을 위해 지구 복귀를 포기하고 에드먼드 행성으로 가야하며 그때도 지금처럼 이성적이길 빈다고 쏘아붙인다.

  아멜리아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우리 인류는 시간과 공간을 활용하며 느낄 뿐, 직접 보고 느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시간이 흘러감을 느낄 수 있는가? 결과로서 알 뿐이다. 어쩌면 인류가 몸담은 3차원보다 높은 4차원, 혹은 그 이상의 차원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2차원에서는 '부피'라는 개념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이 그런 것처럼 사랑 역시 더 높은 차원에선 직접 인식할 수 있는 물리적인 차원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랑 역시 느끼고 누릴 뿐,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다. 흥미롭게도 중력은 시간과 공간을 뚫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블랙홀은 중력이 강력한 나머지 시공간에 구멍을 뚫는다. 사랑 역시 중력처럼 시간과 공간을 뚫고 영향을 미치는 무언가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이유로 내리는 선택은 그 자체로 근거일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사랑을 이유로 내리는 선택’에 쿠퍼의 행위들도 포함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는 빨리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가 사랑하는 머피의 곁을 지키기 위해 만 행성에 가고자 한다.


  실패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만 행성은 불모지였으며, 만 박사는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행성의 데이터를 조작해 인듀어런스 호 대원들이 이곳까지 오게 만든 겁쟁이이자 배신자였다. 한나사로 대원이 박사가 일으킨 폭발에 목숨을 잃어 이제 쿠퍼와 아멜리아 뿐이다. 만 박사가 인듀어런스 호에 억지로 도킹을 시도한 끝에 인듀어런스 호의 일부가 파손된 채 고속으로 회전하며 만 행성의 대기권으로 끌려내려가고 만다. 이대로 두면 인듀어런스 호는 대기권에 연소되어 일행은 만 행성을 벗어날 수 없고, 인류는 절멸할 것이다. 쿠퍼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 그와 아멜리아가 탑승한 소형 비행정을 인듀어런스 호의 회전속도와 동일하게 회전시켜 각도를 맞추며 인듀어런스 호와 도킹에 성공하고 다시 만 행성 궤도 바깥으로 밀어낸다.

  앞서 쿠퍼는 모든 것을 잃었다. 머피가 보낸 메시지로 플랜 A가 사기극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당신들이 우리를 죽도록 버렸다는 딸의 메시지까지 수신했다(아멜리아에게 보낸 것이긴 했지만). 하지만 희망이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블랙홀 속에 중력 방정식의 실마리가 남아있다. 플랜 A의 희망, 지구에 남겨진 딸을 구할 희망이 남아있기에 쿠퍼는 초월적인 능력과 집중력을 발휘한다. 쿠퍼에게 필요한 것은 플랜 B가 아닌 A이다. 그래야만 지구에 남은 딸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는 지금 인듀어런스 호를 잃을 수 없다. 그는 언젠가 블랙홀 속으로 몸을 던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멜리아가 말했듯, 사랑은 시간과 공간, 모든 불가능을 뚫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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