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
오랜만에 북악스카이웨이를 걷는다. 한때는 매일 새벽마다 걷던 길이다. 5년간 이어온 습관이 다리를 다치면서 멈췄다. 거의 3년 만에 다시 나선 길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난다. 예전 이 길에서 자주 만나던 젊은 분이다.
그녀는 늘 가녀린 몸으로 딸의 손을 잡고 학교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무언가 힘겨워 보이는 모습에 궁금증이 생겨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병원에서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앞으로 파킨슨병이 올 수도 있으니, 수술 후에는 무조건 운동해야 한다고 하더란다. 딸과의 추억을 쌓으며 운동도 겸하려고 매일 학교까지 함께 걸어간다고 했다.
오늘, 다시 마주한 그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산을 날아다니는 다람쥐처럼 경쾌하고 씩씩한 모습이다. 몇 년 전 병마와 싸우던 그 모습이 전혀 떠오르지 않을 만큼 건강해 보였다. 그때 걸음이 그녀를 이렇게 변화시켰구나. 놀라움과 함께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
그녀의 변화는 기적 같았다. 『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라는 책을 읽은 적 있다. 그저 위로에 불과하다고 여겼지만, 그녀를 보며 그 말이 진리임을 깨달았다. 딸과의 소중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오늘날 그녀를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걷기 운동은 단순히 육체적인 건강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안정감도 준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지혜를 쌓아도 마음이 무너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 아침 자연 속을 걸으며 다시 한번 이 진리를 깨닫는다. 매미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여름과 가을의 교차점을 알리며 계절의 정직함을 보여준다. 그녀의 회복도 그러하다. 계절이 변하듯, 노력하는 사람에게 희망이 찾아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북악스카이웨이 어귀에 나태주 시인의 '풀꽃'의 푯말을 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오늘 걷는 길은 이 구절처럼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다. 걷는다는 것, 잘 걸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오래 꾸준히 걷고 평생 운동하며 살아야 함을 새긴다. 운동은 나에게도 너무 많은 것을 준 걸 기억한다.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 주었고, 기운이 빠졌을 때 컨디션을 올려주는 비타민이 되어 주기도 한다. 이처럼 삶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이 운동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돌아보니 후회되는 일이 있다. 같은 직종을 가진 지인이 몸이 안 좋아 직장을 그만두었다. 마음이 몹시 아팠다. 그래서 같이 걷자고 제안했지만 그냥 웃음으로 넘겨 버리는 지인을 보고 자꾸만 하자고 조를 수가 없었다. 몸이 갑자기 아픈 사람은 자존심 때문인지 아픈 것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남이 알까 두려움을 많이 가지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걷기는 꼭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김성자,수채화 "오로라"
요즘 들리는 말이 그 지인의 상태가 몹시 나빠져 밖에도 못 나온단다. 병명이 파킨슨병이란다. 가끔 중요한 일이나 병원에 갈 때는 휠체어를 타고 간다는 말에 앞이 캄캄했다. 부모가 어마어마하게 부자이고 운동 아니라도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돈으로 고칠 수 없고 걷기나 운동으로 낫는 병이 얼마나 많은가.
조기 발현 파킨슨 증후군을 앓던 61세 일본 여성의 경우는 몸을 많이 떨면서 상체도 구부정하게 숙이고 지팡이를 짚고 비틀비틀 걸었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빠짐없이 걷고 센터에서 열심히 수련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완치된 것을 보았다. 운동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이 들수록 깊게 와닿는다. 내가 그때 더 적극적으로 운동하자고, 걷자고 말하지 못한 것이 이렇게 후회될 줄이야, 계속 마음에 걸린다.
건강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건강의 소중함을 더욱 깊게 느낀다. 자신을 바꾸는 힘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그 젊은 엄마는 내게 중요한 가르침을 주었다. 기적은 결코 우연히 찾아오지 않는다. 꾸준한 노력과 의지가 만들어내는 결과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결심했다.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걷기 운동을 멈추지 않기로. 건강 회복의 모습을 보여준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성북구와 종로구가 만나는 북악스카이웨이. 이 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다. 삶의 희망과 의지를 담고 있는 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인가. 오늘도 나는 이 길을 걸으며, 작은 발걸음 하나하나가 내 삶을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