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 대한민국은 격변의 시기였다. 12.12 군부쿠데타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최소한 30년 퇴보시키던 시기였고, 미국의 지미 카터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맞서 시민들을 학살했던 신군부를 묵인했다. 왜냐하면 70년대 내내 스테그플레이션에 시달렸던 미국 경제가 너무나 처참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10%대까지 치솟은 상태였고, 기준금리는 20%대까지 치솟았음에도 물가는 좀처럼 내려갈 줄을 모르던 시기였다. 이때 터진 석유파동은 한국은 물론 미국의 목을 죄었고, 베트남전쟁의 패배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국은 세대 간의 갈등도 심각했었다.
이럴 때 등장한 대통령이 레이건이었다. 보수의 깃발이자 신자유주의의 제창자였던 그는 영국의 철의 수상 마거릿 대처와 함께 세계 경제를 이끌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트럼프는 이 말의 흉내쟁이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미국 경제를 최고의 호황으로 올려놓는다.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의 엔화 침공을 제어해 버블을 제거하고, 레이거 노믹스로 미국 경제를 그야말로 전후 최고의 호황으로 몰아넣는다. 이 호황은 빌 클린턴 시대까지 이어지고 미국은 세계 시장에서 화려한 부활을 이룬다.
재미있게도 레이건 대통령이 헐리웃 출신이라서 그런지 80년대 중반부터 치고 올라가기 시작한 미국 경제에 의해 헐리웃에는 많은 자본이 몰렸고, 이런 자본들은 수많은 영화들을 양산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기존의 강자들인 워너, 20세기 폭스, 콜롬비아, 디즈니, 파라마운트, 유니버설 (미국 시장의 약 80%를 차지했던) 스튜디오들은 아이디어와 작은 제작비로 여러 액션, SF 영화들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이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지며 빅6 체제를 공고하게 만든다. 물론 나중에 콜롬비아는 소니에, 20세기폭스는 디즈니에 인수합병되지만 말이다.
이런 시대에 헐리웃은 뉴아메리카 시네마 시대가 저물면서 새로운 헐리웃 시스템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은 디즈니도 마블도 아니었다. 주로 뉴아메리카 시네마 마지막 세대라 일컬어지던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같은 감독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런 경제적인 호황을 바탕으로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중반까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감독들은 이후 21세기에 시작된 많은 액션, SF, 판타지 장르들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그런 감독들이 레니 할린, 얀 드봉, 존 맥티어넌, 로버트 저메키스, 폴 버호벤 같은 감독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 존 맥티어넌은 액션에 있어서만큼 화려한 주목을 받았던 감독이었다.
맥티어넌 감독이 이름을 날린 첫 작품은 < 프레데터 (Predator) > 였다. 이 영화는 당시에 < 코만도 (Commando) > 로 완전히 자신의 인기를 정착시킨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따온 뒤 거기에 에일리언의 그로테스크한 디자인과 첨단 장비와 센서로 무장한 미래 무기, 그리고 남미를 무대로 당시의 가장 큰 정치 스캔들이었던 이란-콘트라 스캔들을 연상시키는 CIA의 개입이라는 스토리를 덧씌워 제작되었다. 누가 봐도 소위 말하는 짬뽕 장르의 영화였다. 이 영화에 들어간 장르만 해도 액션, SF, 호러, 스릴러, 크리처로 다섯 가지가 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존 맥티어넌이 손을 대자 이제까지 나온 액션 영화의 클리세를 비트는 훌륭한 액션 영화로 탄생하게 된다.
이 영화부터 맥티어넌은 그 특유의 연출 성향을 나타내는데, 바로 한정된 공간에서의 효율적인 액션씬이다. 예를 들면 토니 스콧이 < 크림슨 타이드 >에서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심리대결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면, 맥티어넌은 정글이라는 탈출 경로가 막힌 공간에서 심리보다는 시각적인 총격씬이나 액션, 혹은 특수효과에 공을 들여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이런 액션씬들이 훌륭하게 직조되어 액션이 단순한 쾌감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갇힌 공간에서 사냥당하는 인물들의 묘사를 통해 쫄깃한 스릴감을 배가시킨다. 이 영화의 액션은 그래서 다른 영화들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당시에 액션 영화는 단 두 종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나오는 영화와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나오는 영화들이었다. 70년대 중반에 < 록키 > 시리즈로 치고 올라온 스탤론이 < 람보 > 시리즈와 < 코브라 >, < 오버 더 톱 >, < 클리프 행어 >, < 데몰리션 맨 > 등으로 인기를 구가했고, 이때 질세라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 코난 >과 < 터미네이터 > 시리즈로 올라가 < 고릴라 >, < 레드 히트 >, < 토탈 리콜 >, < 트루 라이즈 > 등으로 전성기를 보낸다. 이 둘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근육질 이미지에 비슷한 배역을 소화하며 많은 평론가들에게 거침없이 욕을 먹던 배우들이었다. 하지만 인기만큼은 당시 최고의 배우들이었다.
그 둘은 비슷한 이미지였지만 약간 결을 달리하는 게 스탤론은 각본 (< 록키 > 각본도 직접 쓴 이가 스탤론이다), 감독 등에 재능을 보였다면, 슈왈제네거는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훗날 둘의 미래를 확연히 바꿔 놓는다. 한 명은 < 익스펜더블 >시리즈로 화려하게 부활을 하고 다른 한 명은 주지사라는 정치인의 삶을 걷다가 영화계로 다시 오지만 영 빛을 못 본다.
그리고, 스탤론의 액션이 거칠게 죽을 둥 살 둥 고생하는 액션이라면 슈월제네거의 액션은 거침없이 때려 부수는 액션이었다. 그래서 이 둘의 액션을 보는 것도 영화의 좋고 나쁨을 떠나 재미있는 부분을 선사하곤 했다.
그런 근육질의 배우에게 M60을 무장시키지만 속절없이 동료들이 죽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는 영화가 바로 이 < 프레데터 >였다. 그리고, 이 영화는 확실하게 아놀드 슈월제네거의 액션 배우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각인시킨다. 단지, 수백 발의 총탄을 날리는 무뚝뚝한 통나무 같은 근육질의 배우가 아니라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며 생존하기 위한 필사의 전사 이미지를 선보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바로 존 맥티어넌이라는 스릴러 액션의 장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존 맥티어넌은 영화 초반부에 강렬한 총기 액션을 보여준다. 한 평론가의 말처럼 '람보처럼 시작해서 에일리언처럼 끝난다'가 딱 이 영화에 맞는 평일 것이다. 이런 총기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당시에 헬기에만 달려있던 미니건을 떼다가 후일에 미네소타 주지사까지 하게 되는 제시 벤츄라에게 들려주고는 마구 갈겨대게 만든다. 이런 장면만으로도 정글 총격씬은 압도적이다.
중요한 지점은 이후에 이 영화를 전혀 모르고 관람했던 사람들은 곧 뒤통수를 맞게 된다. 그 이후로는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허공에 총을 갈겨댈 뿐이다. 맥티어넌 감독은 첫 장면 이후에 철저하게 외계 생명체에 의해 사냥당하는 특수부대원들의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다. 게다가 어떻게 죽는지 처음에는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으며 관객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영화 전체적으로 프레데터의 맨 얼굴이 나오는 장면은 마지막 한 장면뿐이다. 그리고, 이런 연출은 고전적이면서도 관객들의 스릴을 배가시킨다.
맥티어넌 감독은 이 영화 이후부터 헐리웃에서 잘 나가는 액션영화 감독 자리를 꿰차게 된다. < 라스트 액션 히어로 >라는 망작을 만들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이후에 그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흥행하는 영화를 만들게 되는데 바로 < 다이 하드 > 다. 이 영화는 이후에 거의 모든 액션 영화들을 테러와 한정된 공간이라는 룰로 제한해 버리는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가장 뛰어난 연출을 보여준 이가 바로 맥티어넌이었다.
그래서, 맥티어넌의 < 프레데터 >를 꼭 추천한다. 당시에 아카데미 특수효과상을 받을 정도로 그 아이디어와 액션의 짜임이 훌륭한 영화였다. 물론 이 영화는 이란 콘트라 스캔들을 다룬 듯이 보여도 그런 정치적 함의는 전혀 없으며, 외계 생명체가 나온다고 해서 SF 의 심오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또한 액션 영화라고 하기에는 왠지 중간중간에 부대원들이 의외로 허무하게 죽는다. 그래도 이 영화가 흥행을 하고 아직도 여러 스핀오프나 프리퀄로도 제작되고 있는 이유는 1편이 워낙 뛰어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직접 보고 찾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