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영화야말로 20세기의 홍콩 무협 영화를 마감 짓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서극이 연출, 제작한 < 도 : 서극의 칼 >이야말로 장철, 호금전부터 이어져 온 홍콩 무협 영화를 처절하게 마감시킨 영화인 것이다.
이 영화의 잔인함과 강렬한 액션씬들, 그리고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아버지 죽음에 대한 복수 등 인간의 가장 강렬한 원초적 본능에 맞추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서극 최고의 무협 영화가 분명하다.
이 영화가 개봉한 해가 1995년이다. 서극은 이미 헐리웃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고, 홍콩을 대표하는 배우인 주윤발은 이미 미국으로 건너간 후였다. 왜냐하면 1997년 1월 1일부터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되기 때문이다. 많은 홍콩 영화인들은 중국으로의 귀속을 두려워했고, 그런 어두운 미래를 피해 캐나다로 이민을 가거나, 영국, 미국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그래서, 홍콩에서 홍콩 자본만으로 만든 무협 영화가 이 작품이 끝이 아니었나 싶다. < 서극의 칼 >은 1990년대 중반에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홍콩의 마지막은 1997년이기에 이 작품을 20세기 마지막 홍콩 무협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마지막 무협 영화에서 서극은 홍콩 무협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잇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보였다. 그래서, 택한 것이 장철의 서사구조와 신체훼손이었다.
물론 1990년에 < 소오강호 >를 통해 호금전과의 협업을 했기에 이젠 장철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호금전은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홍콩 무협 영화의 예술적 스승이었지, 장철만큼 대중적이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홍콩의 마지막을 홍콩인들이 가장 사랑했던 장철의 영화들을 통해 마무리 짓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 전체의 서사는 장철 감독의 < 독비도 : 외팔이 검객 >에서 고스란히 따온다. 단지 배경이 대장간이라는 것과 시간대가 < 독비도 >보다 한참 후일 것이라는 추정 정도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체 배경을 나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함을 주로 삼았다. 장철의 < 독비도 >의 가장 큰 특징은 스튜디오 시스템 (실내에서 세트를 제작해 촬영)으로 인해 바닥을 감추기 위해 항상 인조잔디 등을 바닥에 깔았다는 것이다. 반면에 < 서극의 칼 >은 이런 < 독비도 >를 야외로 옮긴다. 황량하고 건조한 배경으로 말이다. 그래서 바닥에 풀풀 흩날리는 흙들은 액션씬마다 먼지를 일으키며 그 충격파를 실감하게 만든다.
재미있는 것은 < 독비도 >가 처음을 바로 주인공의 신체훼손으로 시작한 것과는 달리 < 서극의 칼 >에서는 꽤 지나야 주인공의 팔이 잘린다. 물론 그 뒤 비급을 찾는 것은 같지만 말이다.
거기서 < 독비도 > 와 확연히 달라진 점을 보여준다.
장철의 < 독비도 >는 사실 캐릭터의 사연에는 그리 집중하지 않는다. 캐릭터가 커가면서 복수심을 가지는 것보다는 전형적인 협사의 길을 보여준다. 반면에 < 서극의 칼 >은 분명 같은 플롯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사연에 집중한다. 왜 캐릭터가 대장간에 와서 일하게 되었는지, 대장간에 있던 부러진 칼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캐릭터가 가진 정의감이 어떻게 복수심으로 변하는 지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러면서 < 독비도 >가 자신의 사부 가문을 구하는 것까지는 똑같아도,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인 복수심을 해소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런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영화라 그 액션도 정교함보다는 야생적인 액션에 집중한다.
이 영화의 처절함은 1997년 홍콩 반환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1997년 홍콩 반환은 다가오는 세기말과 함께 홍콩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변화 중 하나였다. 확실한 미래지만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은 확실하지 않기에 모든 홍콩인들은 지구상의 그 누구보다 더 어두운 세기말을 보내던 때였다.
왕가위 감독이 아무리 홍콩에 대한 사랑을 멜로로 표현해도 역사는 변하지 않을 것이며, 두기봉 감독이 아무리 많은 홍콩 느와르를 통해 홍콩의 뒷골목을 애잔하게 표현해도 이제 더 이상 홍콩은 홍콩인들의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때에 서극은 갑자기 무협 영화를 들고 나온 것이다. 조문탁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대만의 체육교사를 주인공으로, 홍콩 무협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장철 감독의 최고 작품을 오마쥬 하며, 복수와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인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 이후 서극은 < 칠검 >이라는 무협 영화도 만들지만, 그 영화는 견자단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정교하게 짜인 무술을 보여준다.
반면에 이 영화는 마치 이제 홍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처절해져야 한다는 듯, 정교함보다는 한 팔을 잃은 육체의 강화를 통해 다른 강한 육체와 맞부딪히는 육박전을 더욱 강조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 소오강호 >나 < 촉산 >에서 보여주었던 인물들처럼 하늘을 날아다니지도 않고 검으로 땅바닥을 들어 올리지도 않는다. 오직 인간의 몸으로 만든 회전축과 그 강렬한 회전을 통해 만들어지는 원심력을 이용할 뿐이다. 내공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고, 육체의 강화가 어떤 식으로 검법에 영향을 끼치는 지만 생각한 영화였다. 그래서 더욱 강렬하고, 더욱 아름다우며, 더욱 놀라운 것이다.
단언하건대, 서극은 이 영화를 통해서 20세기 마지막 홍콩 무협 영화를 장식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요구는 맞아떨어졌고, 평단과 관객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은 영화가 바로 < 서극의 칼 >이었다.
이후로 이런 홍콩 영화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 물론 이후에도 많은 무협 영화들이 나오지만, 이렇듯 세기말과 홍콩 반환의 시기를 반영한 무협 영화는 더 이상 없었다. 그저 탐미적 경향의 무협이나 CG로 범벅이 된 무협만 남게 된다.
21세기에 들어 서극은 < 칠검 > 이나 < 촉산전 > 같은 무협 영화들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 영화들은 이미 힘을 잃은 영화들이었다. < 칠검 >의 액션은 정교했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불협화음이 많았고, < 촉산전 >은 CG로 범벅을 하지만 스토리와 아이디어는 퇴색하게 된다.
그래서 이 < 서극의 칼 >이 서극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소중하다.
세기말과 홍콩 반환을 앞두고 서극이 처절하게 만든 무협 영화인 이 < 서극의 칼 >을 감상하시길 바란다. 액션도 스토리도 처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