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산의 황비홍은 홍콩 무협 초창기부터 시작한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이다. 영화로 드라마로 몇 번이나 재탕을 한 캐릭터이기에 서극이 이 영화를 연출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주위에서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로 서극은 홍콩 무협 영화 판도를 다시 한번 바꾸게 된다.
홍콩 영화는 무기를 사용하는 장철의 무협 영화로 알려지게 되지만, 이후에 장철의 후반 작품도 그렇고, 이소룡, 가화삼보의 시대를 거치면서 타격을 중시하는 권격 영화도 다른 한축을 이루게 된다.
이런 권격 영화에 있어서 가장 흥행을 크게 한 것이 이 서극의 < 황비홍 > 이었고, 이후 이 < 황비홍 >은 시리즈로 제작되어 외전까지 11편이나 만들어지게 된다. 이 중에 이연걸이 주연한 영화는 < 황비홍 > 1,2,3,6 편이었고, 4,5편 주연으로 유명해진 조문탁이 < 황비홍 >을 맡은 영화도 여러 편이다. 나중에는 계속 신인으로 주연이 바뀌어 리부트를 시도하지만, 권선징악이라는 단순한 플롯과 정의로운 주인공 캐릭터로 인해 그렇게 흥행을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연걸 주연의 1편이 나올 때만 해도 이 영화는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데 이제까지의 황비홍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창조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성룡이 '남아당자강'이라는 주제가를 부르면서 이 영화에 힘을 실어주었고, 가화삼보의 일인인 원표가 황비홍의 제자로 출연하기도 했다. 더구나 원표는 이연걸의 무술 솜씨에 반해 그를 진정한 사부로 모시고자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물론 이연걸이 거절했지만 말이다.
이 영화 이전의 황비홍들은 주로 불산의 대사부라는 캐릭터에 맞춰져 있었다. 물론 성룡의 < 취권 >에 나오는 황비홍도 이 황비홍이지만, < 취권 >에 나오는 황비홍은 외전 성격이 강했다. 그런 황비홍 캐릭터를 서양 문물을 배워서 불산에 돌아온 이모 캐릭터를 통해 조금은 순진하면서도 조금은 바보 같은 캐릭터로 만든 것이 바로 이 서극의 < 황비홍 >이었다. 제자들에게 엄격하고 불산 주민들에게는 자상하지만, 이모에게는 꼼짝 못 하는 황비홍 캐릭터는 현대적인 감각이 잘 녹은 캐릭터였고, 이런 모습들로 1990년대에 최고의 쿵푸 캐릭터를 창조한 것이다.
이 영화를 이야기하자면 이연걸을 빼놓고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중국의 쿵푸는 청나라 때부터 많이 소실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청나라는 무술을 하는 인간들이 하나로 뭉쳐 반란 세력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편전쟁으로 인해 청의 힘이 약해지면서 다시 무술붐이 일어나는데 그때 나온 사람들이 황비홍, 엽문이다. 그리고 국공내전이 공산당의 승리로 끝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이 무술들을 다시 하나의 제도로 흡수해 버린다. 그곳이 베이징 스차하이 체육운동학교였다. 물론 이렇게 된 것에는 문화대혁명이 가장 영향이 컸다. 그리고, 이 학교의 우슈에서 발군의 실력을 드러낸 사람이 바로 이연걸이었다. 그의 나이 단 12세였을 때 말이다.
그는 1979년에 전국운동회에서 무려 금메달 5개를 따면서 은퇴를 한다. 그 중국 전체 인구에서 16세의 나이로 따낸 엄청난 결과였고, 그만큼 이연걸은 쿵푸에 있어서 진짜 실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1980년대에 중국은 등소평이 집권하면서 문화대혁명에서 벗어나 서서히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명언을 남기며 중국의 개방에 박차를 가했는데, 이건 영화계에서도 일어난다. 그러면서 제작된 영화가 홍콩과 중국의 합작영화인 이연걸 주연의 < 소림사 > 였다. 3편까지 제작된 이 영화는 실제 소림사와 만리장성에서 찍으며 당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볼 수 수 없었던 배경으로 인해 엄청난 흥행을 한다. 하지만 이연걸은 거기까지였다. 이후에 그는 홍콩 자본과 연합해 주연이자 감독으로 영화를 찍지만 흥행참패를 맛보게 되고, 이후에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마저 바닥을 치며 중국을 무단 이탈해 홍콩으로 가버린다. 그러면서 만난 사람이 바로 서극이었고, 찍은 영화가 바로 이 < 황비홍 >이었다. 그래서 이 단순한 쿵푸 영화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이연걸을 만난 서극은 이연걸이 당시 쿵푸의 아이콘이었던 이소룡과 성룡과는 또 다른 배우라는 것을 정확히 캐치한다. 이소룡이 실전무술로 타격감을 앞세우고, 성룡이 버스터키튼의 아크로바틱 액션을 선보였다면, 이연걸은 정말 정통 쿵푸를 화면에 구사한다. 황비홍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배역이나 배우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흔하지 않은 영화였다.
서극은 정통 쿵푸의 초식을 순수하게 선보이는 이연걸을 화면에 펼쳐놓으며 불산의 황비홍이 전설이 아니라 실제로 있는 인물로서 부각했고, 이는 그대로 대박 흥행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면서 홍콩 영화의 쿵푸 영화 판도도 확 바뀐다. < 소오강호 >류의 검객 영화들이 판을 치는 무협 영화와 이제 와이어에 정통 쿵푸를 접목한 < 황비홍 > 같은 영화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런 종류의 영화들로는 < 방세옥 >, < 소림오조 >, < 철마류 >, < 엽문 > 등 다양한 형태로 나오게 된다.
서극이 1990년에 연출한 단 두 편의 무협 영화인 < 소오강호 > 와 < 황비홍 >이 이후의 무협 영화를 완전히 장악하게 된 것이다.
사실 < 황비홍 >이란 영화가 그렇게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중국 영화의 클리세인 외세 몰아내기와 선한 주인공의 강력한 무공이 맞물린 권선징악의 스토리가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연걸이라는 중국의 대배우를 탄생시키는 영화였으며, 서극으로 인해 바뀌는 홍콩 영화의 판도를 보여준 홍콩 뉴웨이브 영화 중 가장 중요한 영화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추천하는 것이다.
1990년대 초에 중국으로 복속을 단 몇 년만 남겨둔 홍콩에서 나온 최고의 흥행작을 관람하시길 바란다.
참고적으로 왕가위 감독은 < 소오강호 > 형식의 영화로 < 동사서독 >을 택해 멜로로 만들었고, < 황비홍 > 형식의 영화로 < 일대종사 >를 만들어 멜로물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 두 영화도 잊지 말고 챙겨보면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