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저메키스 (3)
39. Forrest Gump
1991년에 나온 < 터미네이터 2 >는 그야말로 영화계에 기술적인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지금이야 초보적인 CG 기법이었고, 그런 기법들보다는 화면 위에 자연스럽게 펼친 제임스 카메룬의 연출이 더 뛰어났지만 말이다. 하지만 거대한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T1000의 새로운 액션들은 관객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런 흥행은 영화 산업에 있어서 CG 의 엄청난 발전과 기대를 불러오게 된다.
그리고, 1994년에 이 영화 < Forrest Gump (포레스트 검프) >가 나왔다.
이 영화는 개봉된 해에 전 세계적으로 약 6억 8천만 달러라는 엄청난 흥행 몰이를 했다. 제작비는 당시 블럭버스터의 절반인 5천5백만 달러 밖에 안 들었는데 말이다. 특히 6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 편집상, 시각효과상을 휩쓸며 작품성도 인정받는다.
이 영화 역시 < Who Framed Roger Rabbit >과 마찬가지로 영화사에 있어서 엄청난 기술적 진보를 가져온 작품이었다. 이미 캐릭터들의 시선이 어디에 있어야 자연스러운 지 아는 저메키스 감독은 이번에는 애니메이션 기법이 아니라 CG (컴퓨터 그래픽)를 통해 자신의 장기인 과거와 드라마, 그리고 휴머를 엮는 장인의 솜씨를 보여주게 된다.
이때만 해도 Marvel 급의 CG는 여전히 힘들던 시기였다. 디지털카메라는 필름 카메라의 해상도를 쫓아오지 못하던 시절이었고, 영화에 CG를 입히기 위해서는 모든 장면을 필름으로 찍은 후 이를 다시 디지털 파일화 (이건 Telecine 나 Kineco 와는 다른 것이다. Telecine가 필름 작품들을 테이프로 옮긴 작업이고, kineco 가 테이프를 필름으로 옮긴 작업이었다면, Digitizing은 아날로그 필름을 컴퓨터 파일화 시키는 작업이었다) 시켜야만 했다. 그래서, 당시에 이런 디지털 작업만 해도 엄청난 용량의 컴퓨터가 필요했고, 이 컴퓨터 가격만 해도 수억 원대를 자랑했다.
게다가 CG라고 해봤자 지금의 After Effects 같은 기술이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한 장 한 장 포토샵으로 그리던 때였으니, 영화 1초의 CG를 하기 위해서는 24장의 포토샵이 필요했고, 이는 엄청난 제작비 증가를 가져왔다. 정확히는 컴퓨터 전문 인력의 인건비지만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CG가 끝난 작업본들은 다시 필름으로 환원해서 가져와야만 하는 복잡한 공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극장에서 디지털 영화는 상영할 수 없었던 시대였으니까 말이다. 아까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디지털 영상은 필름의 해상도를 따라오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러니 극장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할 때 프로젝터 상영은 꿈도 못 꾸던 시기였다.
그래서 당시만 해도 < Forrest Gump >가 가져온 기술적 진보는 사람들에게 신선함과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주인공인 톰 행크스가 존 F 케네디나 닉슨과 악수를 하고,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와 메모리얼 탑 앞에 많은 관중 속에서 물을 헤치며 제니를 만나는 장면은 지금도 명장면이자 기억 속에 남는 장면이 되었다.
과거의 흑백 화면을 가져다가 한 장면 한 장면 톰 행크스의 시선을 생각해 포토샵으로 연결한 장면도 그 자연스러움(당시엔 굉장히 자연스러웠지만 지금은 살짝 티가 난다.)에 정말 주인공이 역사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관객들이 믿을 수 있었다.
게다가 메모리얼 탑에서 제니와 만나는 장면은 며칠 동안이나 찍은 장면인데, 워낙 유명한 장소라 엑스트라를 1,500명 이상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엑스트라들을 유명한 Ctrl+C,V 로 재생산하기 위해 몇 번이나 찍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몇 만 명이 모인 듯한 자연스러운 장면이 연출될 수 있었고, 이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 되기도 한다.
이 영화만큼 정치적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킨 영화도 드물었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헐리웃에서 유명한 공화당 지지자 중 한 명이었다. 그럼 이 영화가 보수적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반전을 내포하고 있고, 공권력과 정부에 대한 풍자가 들어 있기에 이 영화를 보수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전형적인 'American Dream'을 따르면서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숱한 고난에도 자본주의적인 성공을 위해 달려 나가는 사람들 말이다. 가장 보수적인 미국적 가치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인 Forrest 를 만나는 사람들은 정치인들과 사랑하는 제니만 빼고 모두 성공한다는 것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제대로 걷지 못해 보조기를 달고 춤을 추는 Forrest를 보고 그 춤을 그대로 흉내 내어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나온다. 제니를 잊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기 시작한 Forrest 의 추종자들은 하나 같이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지만, 그와 접촉한 사람들은 훌라후프를 개발하거나 스마일리 심볼을 디자인해 대성공을 거둔다. 베트남에 참전해 두 다리가 잘렸던 (이 것도 CG 다. 이때 저메키스는 크로마키 기법(화면에서 색을 지정해 빼는 기법)과 CG를 이용해 실제로 잘린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군대 상사를 부자로 만드는 것도 Forrest 다. 그의 옆에 있으면 American Dream 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보수적인 가치보다 정치나 공권력을 풍자하는데 더 앞장서기도 한다. Forrest 가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를 할 때 너무 소변이 마려워 참지 못하는 것처럼 나온다. 그러면서 화장실을 가는데 거기서 묘한 사진들이 배치되어 있다.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F 케네디 형제가 마를린 몬로의 사진과 함께 배치되며 당시 최고의 스캔들을 풍자한다. 게다가 그 두 형제는 다 암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닉슨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를 위해 핑퐁 외교를 훌륭하게 마친 Forrest 지만 대통령은 그를 워터게이트 호텔에 투숙시키고 Forrest 의 신고로 인해 야당을 도청하던 닉슨의 부하들이 잡혀 들어가게 된다. 이 일로 닉슨은 하야하게 된다.
이렇듯 영화는 철저히 정치인들에 대한 풍자를 이어가며, 미국의 역사를 바꾼 큼직 막한 사건들을 유머로 버무려 버린다. 게다가 베트남에서 돌아온 Forrest 가 연설 요청을 받고 연단에 올라갔을 때 그 스피커 라인을 빼버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경찰서장이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던 거센 문화와 진보를 두려워하던 공권력을 풍자한 것이다.
이렇듯 두 개의 상반된 역사적인 모습을 함께 보여준 이 영화는 그래서 정치적으로 가장 논란이 된 작품이었다. 이 영화가 보수냐 진보냐 하는 문제는 아직도 회자가 될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정치적인 해석이나 비평은 전혀 대중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 그냥 대중들은 이 영화가 보여준 역사의 humor에 빠져들 뿐이지, 그 누구도 그 역사의 정치적인 해석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저메키스 감독의 마법이 있었다.
가장 정치적이지만 감동과 유머, 그리고 드라마로 영화를 연출했던 저메키스였기에 가장 정치적이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그리고 가장 대중적인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저메키스 감독이 헐리웃 감독 중 가장 뛰어난 장인이라 불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도 베스트셀러였지만, 영화보다 더욱 어두운 내용이었다. 그래서, 저메키스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부터 이 작품의 방향을 소설과는 다르게 밝고 유쾌하게 만들자고 제안했고, 그 제안은 이 영화를 20세기 영화들 중 가장 멋들어진 영화 중 하나로 만든다.
이 영화를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중에 방송에서도 여러 번 상영을 해주었고, 지금도 가끔 영화 채널에서 보여줄 때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화면이 그야말로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성격을 가진 Forrest 캐릭터 자체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화면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캐릭터에 깊게 빠져 들게 만든다. 거기에 기술적인 발전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감독의 역할은 덤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기술을 화면 위에 자연스럽게 만드는 연출은 당시에 정말 힘든 연출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그만큼 새로운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감독들은 이제 녹색이나 파란색의 배경 위에 캐릭터들을 연기시키며 연출을 해야 하는 것에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20세기말에는 감독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과 고민을 가져오게 만드는 연출이었고, 그 연출을 멋들어지게 한 저메키스 감독은 분명 다시 평가받아야 할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영화 꼭 다시 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