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영화 역사(절대 중국 영화사가 아니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작자가 한 명 있다. 바로 서극이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홍콩 영화의 뉴웨이브를 이끌며 오우삼, 정소동 (동방불패 감독), 원화평 (매트릭스 무술감독) 등 다양한 감독들을 발굴해 내는 제작자로서 서극만큼 능력이 있던 영화인은 없었다. 범죄 느와르부터 무협, SF,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들을 제작하거나 감독하면서 그는 오우삼, 왕가위와 더불어 분명 홍콩 영화의 가장 화려한 시절을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1997년에 홍콩이 중국에 복속된 이후로 많은 영화자본이 중국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헐리웃에서 실패한 서극은 그런 중국 자본을 따라 중국에서 제작과 감독을 하게 된다. 그러나 CG가 잔뜩 들어간 그의 영화는 중국에서 흥행을 하기도 하지만, 20세기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20세기에 서극이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장르의 혼합에 있었다. 특히 무협과 SF 장르를 넘나들며 그 둘을 교묘하게 섞어 놓는 그의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CG 가 없던 20세기에 만든 < 촉산 >은 무협물의 < 스타워즈 >였다. 광선검처럼 빛나는 주인공들의 검도 그렇고, 하늘을 가볍게 날아다니고 악령에게 정신을 지배당하는 모습은 기존의 홍콩 무협물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각광을 받는다. 이때의 < 촉산 >은 21세기에 그가 CG로 리메이크한 < 촉산전 >을 월등히 뛰어넘는다.
단순한 크로마키 기법부터 로터스 코핑 기법(촬영 후 필름 한장 한장에 애니메이션을 입히는 기법)까지 당시에만 해도 최첨단이라는 기술들을 선보이며 제작, 감독한 < 촉산 >은 그야말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이 < 촉산 >을 이야기 한 이유는 서극이 제작자로서는 다양한 장르를 추구했을지 몰라도 그의 연출 작품들은 뿌리 깊게 무협물에 정착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그가 가진 홍콩 무협 장르에 대한 애정은 그 뒤로 홍콩 무협물의 저변을 확장하는데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첫 연출작품을 < 대행동 >이라는 범죄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그가 이 작품에서 한 일은 고어하고 잔인한 장면을 만들어 낸 일뿐이었다. 오히려 이 작품의 연출은 홍콩 느와르의 거장인 두기봉 감독의 연출작으로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 작품을 연출하면서 두기봉과 서극은 서로 불편했다고 한다.
내 생각으로 서극의 첫 연출작은 무협물인 < 촉산 > 이 맞다.
이런 서극의 꿈 중 하나가 모든 홍콩 무협 감독이 항상 꿈꿔왔던 김용 작가의 무협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고른 작품이 바로 < 소오강호 >이다. < 동방불패 >는 이 작품의 후반부를 연출한 것으로 < 소오강호 >에서 서극은 제작과 감독을, < 동방불패 >에서는 < 소오강호 >에서 무술감독이었던 정소동이 감독을 하고, 서극이 제작을 하게 된다.
김용 작품들은 그 방대한 서사로 인해 많은 감독들이 연출을 하는 것에 있어서 애를 먹는 작품이다. 그리고 서극도 그런 어려움을 겪고는 자신과 함께 연출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무협 명장을 부르는데, 그 사람이 바로 호금전이다. 호금전 감독은 그야말로 홍콩이 내놓은 세계적인 무협 명감독이었다. 장철 감독이 홍콩 무협 영화의 대부였다면 호금전 감독은 홍콩 무협 영화의 예술적 스승이었다. 그런 대감독을 모셔와 자신이 꿈꾸던 김용 작품의 공동연출을 시도한 것이다.
무엇보다 서극은 < 소오강호 >를 호금전의 그 유명한 < 용문객잔 >처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공을 들여서 호금전 감독을 모셔온 것이다.
하지만, 이 기간이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누구보다 무협에 있어서 철학을 위한 미학을 추구했던 노장과 재미를 위해 미학을 추구했던 신진감독과는 그 목적지가 다르기에 갈라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서극이 제작자이니 노장을 밀어내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 작품은 호금전과 서극의 공동연출이라고 광고를 하지만 후반에는 거의 서극 혼자서 연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첫 장면부터 시작한 구도와 멋있는 장면들은 절대 호금전 감독이 없었으면 못 만들어 내는 장면들이었고, 이 영화를 < 소오강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영화로 만든다.
이 작품의 방향이 명확했기에 이 작품의 백미는 객잔에서 머무르며 '규화보전'이라는 절세신공을 차지하기 위한 여러 세력들의 염탐, 협잡 그리고 위장이다. 화산파의 영호충만이 그런 세력 속에서 꿋꿋하게 양심을 지킨다. 재미있는 것은 '규화보전'의 정체이다. 자신의 남성을 제거해야만 익힐 수 있는 최고의 무공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협잡과 배신을 다 모아놓고는 이렇게 차지한 권력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버려야만 완성된다는 것이 김용 소설의 백미였는데, 이를 영화에서 명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이를 보여주기 위해 소설에는 없는 장학우가 맡은 구양전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규화보전'을 차지하도록 만들었다.
이 영화가 보여준 가장 독특한 장면들은 이후 홍콩 무협 영화의 대명사처럼 쓰이게 된다. 이 영화에서 서극은 < 영웅본색 >에서 보여주었던 그 푸르면서 어두운 조명들을 아낌없이 쓴다. 홍콩 느와르의 분위기를 무협물에서 오롯이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홍콩 무협물들은 이 < 소오강호 >의 표현들을 따르기 시작한다. 무협물들이 호금전의 철학이나 장철의 고어적인 부분을 따르기보다는 탐미적인 영상과 와이어나 기를 뿜어내 폭파시키는 SF적인 요소들을 넣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 동방불패 >가 아시아적인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이제 칼로 땅이나 물을 폭파시켜 가르거나 와이어로 공중회전을 하는 장면들은 홍콩 무협물의 일상이 된다. 스타워즈의 포스가 동양 무술의 기를 모방한 것이라면, 홍콩 무협물에서는 그 스타워즈의 기술을 차용해 기를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전작들도 많았지만 이 < 소오강호 >를 능가하는 작품은 없었다.
이 영화 이후 < 천년유혼 >, < 신용문객잔 >, < 백발 마녀전 >, < 전신 > 등 무협이라기보다는 미장센과 폭파액션에 집중하는 홍콩 무협물들이 많이 나오게 된다.
서극은 분명 엄청난 제작자였지만 대단한 연출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애정을 가지고 내놓은 무협 연출작들은 홍콩 무협 영화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작품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영화 중 하나였다. 무협물과 쿵푸 영화만 봤을 때 1980년대가 가화삼보의 시대였다면 1990년대는 분명 서극을 위주로 한 무협 영화물이 주를 이루었으며 이 < 소오강호 >가 그 흥행의 첫 디딤돌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와 같은 해에 개봉한 서극 연출의 쿵푸 영화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이연걸 주연의 < 황비홍 >이다. 그리고, 이 < 황비홍 > 역시 홍콩 무술 영화들의 판도를 바꾸는 영화 중 하나였으며, 서극으로 인해 홍콩 무술 영화들은 < 소오강호 > 류의 SF 무협물, 그리고, < 황비홍 > 류의 와이어 무협물로 나뉘게 된다.
이런 장르의 혼합과 창조에 있어서 서극은 탁월했었고, 그래서 헐리웃도 그를 불러들인 것이다. 하지만 연출은 장르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게 서극의 약점이자 장점이다.
서극은 사실 연출자로서는 분명 부족한 감독이었다. 제작자로서는 누구보다 훌륭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가 연출한 몇몇 작품들은 분명 홍콩 영화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 놓은 것들이었고,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 < 소오강호 >도 추천한다. 1990년대 한국 영화 시장을 휩쓸었던 홍콩 무협 영화의 시작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