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Back to the Future
이 영화가 놀라운 것은 블럭버스터급 영화도 아닌데 그해 가장 돈을 많이 번 영화라는 것이다. 제작비도 폴 버호벤의 < 토탈 리콜 >의 4분의 1 수준인 1,900만 달러에 불과했다. 물론 당시에 한국 영화와 비교하자면 엄청난 돈이지만, 그 적은 돈으로 전 세계적으로 벌어들인 돈이 무려 4억 2천만 달러였다. 이 영화로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거의 돈방석에 앉았다고 봐도 된다.
저메키스 감독의 이름을 크게 알린 작품은 1984년에 상영했던 마이클 더글러스와 캐슬린 터너 주연의 < 로맨싱 스톤 (Romancing the Stone) > 이었다. 이 작품부터 그는 일련의 드라마를 엮는 솜씨를 출중하게 보여주는데, < 로맨싱 스톤 >은 < 인디애나 존스 > 히트 후 당시 유행했던 모험물 중의 하나였다. 여기서 저메키스는 장르에서 가지는 액션과 멜로를 무시하고 코미디적 요소와 드라마를 엮어 보여준다. 분명 < 로맨싱 스톤 >은 모험 멜로물 장르이고, 제목에도 로맨싱이 나오는데, 그는 이런 요소를 무시하고 오직 코미디와 드라마에만 집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 자체의 액션이나 멜로는 허접하기 그지없다. 한데 오히려 이런 요소들로 인해 차별화된 모험물이 되어 흥행을 하게 되고, 이후에 이런 재능을 눈여겨본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된다.
저메키스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를 섞어 유머와 드라마를 창출하는데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 감독의 작품들은 뭐라고 할까? 정말 진지한 주제를 다루는데, 그렇게 진지하지는 않다. 평범한 인류애나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면서도 절대 상황은 평범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드라마를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 있어서 헐리웃 감독 중에 최고의 장인이었다.
< Back to the Future > 를 1,900만 불에 불과한 제작비로 찍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감독의 힘이 컸다. 그는 시간 여행물에서 보통 감독들이 가장 크게 생각하는 부분인 특수효과 (FX : CG가 없던 시대에는 이렇게 불렀다)나 액션의 강화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가 가장 관심 있었던 것은 적재적소의 캐릭터 배치와 당시 유행했던 시트콤 같은 대사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 간의 충돌과 반목, 화합이 빚어내는 드라마 구조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집중은 영화 곳곳에서 빵빵 터지며, 관객들을 웃음과 시간 패러독스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 영화의 제목을 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제목에서 미래로 돌아가야 하는데 왜 영화는 과거 이야기만 하는지를 묻곤 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3편 모두 중요한 모티브가 있는데, 그건 타임머신이 항상 고장 난 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걸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즉, 과거의 시점에서 보면 미래로 돌아가기 위한 고난의 행군인 것이고, 그래서 제목이 < Back to the Future > 이다.
로버트 저메키스는 마치 토니 스콧 감독처럼 상업적인 감독으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토니 스콧 감독 편에서도 말했지만 상업영화만 찍었다고 해서, 그 감독이 낮게 평가될 필요는 없다. 분명 저메키스 감독의 작품들은 헐리웃에 기술적으로 드라마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가 만들어낸 화면들은 이후에도 여러 번 재시도되고, 여러 장르에서 그의 캐릭터들을 따올 정도였다.
한국에서 이 영화는 다른 해도 아닌 1987년에 개봉되었다. 그것도 7월에 말이다. 거대한 6월 민주항쟁이 6월 10일에 시작되어 7월 9일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으로 막을 내린 바로 일주일 뒤에 이 영화가 개봉한다. 미국에서는 1985년에 개봉한 영화가 한국에서는 대한극장에서 2년 뒤에 그것도 대대적인 홍보와 기사를 달고 개봉했다. 내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이 영화는 5 공화국 정권이 강력하게 펼쳤던 3S (Screen, Sports, Sex) 정책의 종언을 단편적으로나마 상징했던 작품이 아닌가 싶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강력하게 추진했던 3S 정책은 프로구단들을 만들어냈고, 거기에 맞추어 스포츠신문들이 대거 등장해 성인만화물들을 여기저기 실어서 나르던 때였다. 한국 영화들도 여기에 질세라 에로물이 대거 등장했는데, 이런 에로물도 정권의 안배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한국의 유교적 정서마저 거부할 수 없었던 정권은 매춘과 포르노를 불법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반대급부로 섹스산업이 음지에서 번창하던 시기였고, 많은 모텔과 룸살롱이 만들어진 때였다. 매춘이 불법이었지만 집창촌은 존재해서 군대에서 휴가나온 청년들이 성병을 얻는 것도 흔하던 때였다. 그래서, 정권 차원에서 성욕구에 대한 해소를 모색하게 되었고, 그 일환으로 에로물에 대해서는 영상등급위원회에서 보지도 않고 개봉합격을 주었다. 이는 한국 영화산업에서 가장 많은 에로물을 생산하게끔 만든다. 이렇듯 3S 정책은 검열과 삭제라는 수단을 동반해 강력하게 민중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외국영화는 철저하게 정치적인 함의가 조금이라도 있거나 민주화라는 말이 한 마디라도 나오면 수입이 안 되던 시절이었다. 성룡의 < 폴리스 스토리 >가 항명하는 경찰을 그렸다는 이유로 개봉이 안 되던 때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6월 항쟁의 승리로 대통령 직선제가 쟁취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 Back to the Future >는 수입한 지 1년이나 지나서 개봉이 되었는데, 이유는 당시에 존재해 있던 영상등급위원회가 미래에서 온 아들을 사랑하게 되는 엄마가 나온다는 것 하나만으로 근친상간이라는 딱지를 붙였기 때문이었다. 6월 항쟁이 승리로 끝나면서 그 딱지가 떼어진 것은 우연일지 필연일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 이 영화가 생각이 난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이제껏 나온 시간여행 작품 중 최고였다.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라 방송국에서 여러 번 재방송을 해주기도 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에 나오는 청바지 상표인 'Calvin Klein'이었다. 이 상표는 영화의 주무대인 주인공의 부모가 살던 시대에는 없던 것이었다. 그래서 주인공의 엄마가 주인공의 청바지에 박혀 있는 브랜드를 보고 주인공의 이름을 '캘빈 클라인'으로 착각한다는 설정이었다.
당시에 한국에는 이 브랜드에 대한 공식수입허가는 없었다. 고등학생들은 교복자율화 세대였고, 많은 고등학생들이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죠다쉬'니 '리바이스'니 다 이때 나온 청바지들 브랜드였고, 교복자율화에 맞추어 이 청바지들이 불티나게 팔리던 때였다. 하지만 학생들의 선망은 1981년부터 나온 비싼 나이키 운동화였고, 미국 친지들이 보내준 '캘빈 클라인' 청바지였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인기가 좋았다. 미국의 과거가 우리의 현재와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마이클 J 폭스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타임트래블을 가능하게 만든 '드루이안'이라는 그 고물 스포츠카였을 것이다. 그 스포츠카의 디자인은 놀라웠다. 당시에 한국에 흔했던 현대의 포니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에 문만 윙도어를 달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레트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해외에서는 이 영화 이후로 그런 윙도어 스포츠카가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이 영화는 이후에 시간여행 장르에 있어서 바이블과 같은 존재가 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시간여행은 어려운 SF 장르였는데, < Back to the Future >이후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가족 영화가 된다. 거기에는 로버트 저메키스의 훌륭한 연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연출이 뛰어난 것은 연출의 가장 기본인 '드라마투루기 (Dramaturgy)'에 있어서 당시에 그를 따라갈 수 있는 감독이 없었기 때문이다.
코미디 장르가 아니면서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포인트들을 배치하고, 캐릭터들의 사소한 반목 속에서 헤어짐과 만남을 표현했던 저메키스 감독은 어쩌면 지금 한국 드라마에 가장 잘 맞는 감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영화를 안 보신 분이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다.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