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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크 Jul 10. 2024

폴 버호벤 (3)

36. Basic Instinct

아마도 헐리웃 영화 수입 역사 중에서 이 영화만큼 타이틀을 잘 번역한 것은 없을 것이다. 영어 타이틀은 < Basic Instinct > 인데, 여기서 Basic 을 영화의 주제와 소재와 맞게끔 '원초적' 이라 번역을 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 타이틀은 < 원초적 본능 >이 되었고, 이 기가 막힌 타이틀을 기반으로 이 영화는 엄청난 히트와 한국인들의 성적 본능을 만족시켜 주는 영화가 돼버린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내러티브는 전혀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영화의 근본적인 내러티브는 두 가지에 관한 것이다. 하나는 성에 대한 인간의 본능이다. 이 성에 대한 본능은 화면상으로 주인공인 마이클 더글러스와 샤론 스톤의 환상적이고 에로틱한 베드신으로 점철된 듯하다. 하지만 이 성애 장면들만으로는 도저히 마지막에 클로즈업되는 얼음송곳을 설명할 수가 없다. 거기서 발생하는 것이 성관계를 가지는 인물들의 성정체성이다. 

화면에는 분명 동성애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마이클 더글러스의 전부인은 양성애자(Bisexuality)로 표현되고, 주인공인 샤론 스톤도 마찬가지로 표현된다. 게다가 샤론 스톤은 초반부에 이미 동성애 애인을 사귀고 있으면서도 복서와도 섹스파트너를 이룬다. 


이런 복잡한 성관계도로 인해 이 영화는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단지 불안한 정신의 남자 형사가 싸이코패스 여자한테 끊임없이 육체적으로 빠져드는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거기에 더해 자기의 전부인을 강간하듯, 아니 그건 분명 남자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강간(rape) 장면이었고 남자 주인공은 제목처럼 본능으로 강제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큰 문제였기도 하다. 그런 강간이 단지 서브 여주인공의 몇 마디로만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난 여기서 이 장면은 차라리 삭제하는 게 나았다고 생각한다. 강간을 본능이라는 타이틀로 덮어버린 것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 장면이 남자 주인공과 여자 서브 주인공의 관계를 진척시킨다던가 하는 내러티브적 요소가 강하게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물론 남자 주인공이 어떤 상태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는 하지만 그게 꼭 그런 장면만으로만 나타내어질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두 번째 패러다임은 살인에 대한 욕구와 본능이다. 샤론 스톤은 이미 관계를 가지면서 송곳으로 남자를 죽이는 싸이코패스로 나온다. 싸이코패스의 본능은 말할 것도 없이 살인이다. 이 작품이 개봉할 당시만 해도 첫 장면의 폭력성은 가히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사실 폴 버호벤은 이 것보다 더 끔찍하게 찍어놨었다. 송곳이 목과 안구를 뚫는 것은 물론 콧구멍을 찌르는 장면까지 넣었다고 한다. 게다가 자가 죽은 후에도 관계를 가지는 여자의 모습까지. 물론 그 잔인함으로 인해 다 편집됐지만 말이다. 그 뒤에 남자 주인공과 자신의 관계를 방해하는 남자 주인공의 절친까지 송곳으로 죽인다. 물론 그 살인은 남자 주인공의 전부인이 다 뒤집어 쓰지만 말이다. 


이 영화에서 일어나는 살인이나 아니면 살인에 대한 시도는 모두 이유가 있다. 주인공인 샤론 스톤도 싸이코패스지만 나름 이유를 가지고 남자들을 살해하거나 살인을 조정한다. 마이클 더글러스의 전부인은 정신과 자료를 남자 주인공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다른 형사에게 넘겼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살인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자 주인공의 동성애 애인은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과 점점 감정적으로도 사랑하는 사이가 되자 충동적으로 남자 주인공을 향해 차를 돌진시키기도 한다. 아마 감독은 이 영화의 타이틀에 충실하고자 했을 것이다. 'Basicn Instinct'라는 타이틀에 말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모든 살인은 인간의 근본적인 자기 세계 보호라는 본능아래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 영화가 관객의 성적인 본능을 가장 일깨우는 장면은 마이클 더글러스와 샤론 스톤의 베드씬이 절대 아니다. 초반부에 여자 주인공이 취조실로 들어가고 거울 너머에 남자들만 가득 차 있는 방 안에서 그 여자의 다리 사이를 볼 때이다. 여자는 계속해서 다리 꼬는 방향을 바꾸고, 그럴 때마다 취조실 너머의 남자들은 관객들을 대변하며 이를 관찰하게 된다. 

이는 영화에서 많이 사용되는 프레임 씌우기 장면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 이창 (Rear Window) >에서 남자 주인공의 시선을 빌려 관객의 관음증을 밝혔다면, 이 영화에서는 남자 형사들의 눈을 빌려 관객들의 관음증이 얼마나 여자 속옷에만 있는 지를 밝혀낸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 되고, 이후에 샤론 스톤이 이 장면에 대해 불편해하면서도 완성본을 본 후 인정할 정도였다. 

물론 여자 주인공이 나중에 남자 주인공에게 자신이 속옷을 안 입었다고 밝히지만 말이다. 


폴 버호벤은 그 특유의 잔인성과 침실에 잔뜩 설치해 놓은 푸른 조명을 통해 살인과 섹스에 대한 본능을 밀도 있게 조명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많은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불편해했다. 위에서도 이야기한 강간 장면이라든가 복잡한 성정체성, 그리고, 이 영화의 모든 살인자 중에 'heteroseuality'는 없고,  'bisexuality' 나 'homosexuality'만 있다는 것은 마치 살인 본능이 그런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감독이 의도했던 의도 하지 안 했던 말이다. 그래서, 미국의 많은 동성애자들이 이 영화의 조기종영을 위한 시위까지 했을 정도이다. 


이 영화는 성인영화이다. 절대 아이들과 함께 보면 안 되는 영화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샤론 스톤이 다리를 꼬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스릴러적 분위기, 그러니까 취조실의 형사들을 성적으로 압도하는 분위기는 이 영화가 아니고서는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꼭 추천한다. 20세기의 감독들은 여자의 다리 꼬임 하나만으로도 CG나 AI가 만들어내지 못한 숨 막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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