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그렇게 인사를 받고 싶으면...'
20대 초반부터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그중 편의점에서 일하던 때의 기억이 유독 강렬하게 남아 있다. 육체노동의 강도로 따지자면 한여름, 한겨울에 뛰었던 건설현장 아르바이트가 가장 힘든 일이었을 텐데, 내게 그보다 더 고된 건 술집이나 편의점과 같이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서비스직이었다. 상대적으로 몸은 편하지만 수시로 정신적 괴롭힘에 시달리는 업무. 나는 편의점에서 일했던 4개월의 시간 동안 인류에 대한 모든 기대와 희망을 잃었다.
편의점 업무는 일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었고, 면접 때 ‘우리 지점은 주휴수당 같은 건 없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셨던 걸 제외하면 점장님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주중엔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수업이 없는 금, 토 야간 근무를 맡게 되었고, 으슥한 시간대였기에 편의점을 드나드는 손님도 많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 배송되는 상품을 진열대에 채워 넣고, 전자레인지와 야외 테이블을 닦고, 그밖에 자잘한 업무를 마치고 나면 가끔씩 들어오는 손님들을 상대하는 게 다였다.
근무 초반에는 이 일이 꽤 재밌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처음이기도 했고, 몇 평 안 되는 공간을 온전히 나 홀로 관리한다는 데에도 나름의 만족감이 있었다. 손님이 없는 새벽이면 계산대 뒤에 앉아 느긋하게 책도 읽을 수 있었다. 마감할 때 정산금이 딱 맞아떨어지면 소박한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밤낮이 바뀌는 것만 빼면 이거 정말 꿀이잖아?’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이 작은 평화를 위협하는 손님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대인들은 대체로 교육 수준이 높고 동료 시민에게 적절한 예를 갖출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게 순전히 착각이었음을 그즈음 깨달았다. 다짜고짜 반말을 하거나 돈을 계산대 위에 던지고, 초코 과자를 으깨어 그 부스러기를 뿌리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위협하고, 면전에서 막말로 모욕을 주는 등, 내가 그 행동을 그대로 돌려준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몹시 궁금해지는 온갖 추태들을 겪었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모욕과 이따금씩 출현하는 광인의 존재가 근무 시간에 짜릿한 긴장감을 더해줬지만, 정작 그보다 기억에 남은 건 ‘인사’에 관한 에피소드다. 편의점 업무를 처음 인수받을 때면 손님들에게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런데 그 인사말에 “안녕하세요”라는 대답을 들을 확률은 대략 남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손을 씻고 나가는 이들의 비율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번번이 무시당하는 인사말을 게임 속 NPC처럼 몇 달째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레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각종 진상과 예의를 밥 말아먹은 손님들에게 염증이 생기다 보니, 편의점을 드나드는 불특정 다수에게 나도 모르는 새 적대감을 갖게 되었다. ‘인사 따위는 이 인간들에게 사치다.’
누군가는 내게 ‘손님에게 인사를 하는 건 서비스직 종사자로서 당연한 업무의 일부분이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급한 손님들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린 내게, 고작 6천 원 남짓한 시급으로 편의점 관리뿐만 아니라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인사까지 요구하는 건 당시 내게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손님이 들어와도 먼저 인사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단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이유로 내게 예를 갖추지 않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점장님을 통해 클레임이 들어왔다. “수빈 씨, 손님이 와도 인사를 안 하더라는 얘기가 있던데요.” 우리 지점을 찾는 손님들 중 누군가가 내가 인사를 안 한다고 일러바친 거였다. 점장님께는 한껏 죄송한 얼굴로 앞으로 주의하겠노라고 말씀 드렸지만, 속으로는 그 사실을 꼰질렀을 얼굴 모를 누군가를 크게 비웃었다. ‘고작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인사 못 받은 게 그렇게 분하고 억울했더냐. 누군지 몰라도 참 한심한 인생이구나.’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아들과 함께 한 중년 남성이 편의점을 찾았다. 전에도 여러 차례 이곳에 들러 담배와 과자 등을 사 갔던지라 얼굴이 눈에 익은 손님이었다. 뭔가 불만이 있는 듯 계산대에 물건을 툭툭 올려놓던 그가 계산을 하다 말고 내게 쏘아붙였다. “전에도 그렇고, 사람이 와도 인사도 안 하고... 학생이 참 싸가지가 없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전혀 놀랍거나 당황스럽지 않았다. 스스로도 의아할 만큼 마음이 평온했다. 그리고 사과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항의 표시였다. 그저 굳은 얼굴로 아무 말 없이 물건을 계산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새끼가 꼰질렀구나...’
받지 않기에 건네지 않았을 뿐인데, 그깟 인사가 뭐라고 그렇게 손님의 심기를 건드렸던 걸까.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인사를 받지 못해 분통이 터지는 그 마음의 근원은 무엇인지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학교 선생들에 대한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중학생 시절, 한 영어 선생이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치는 나를 불러 세워 놓고 물어본 적이 있다. “너는 선생님을 봤는데 왜 인사를 안 하니?” 그때 뭐라고 변명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속으로는 분명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정 그렇게 인사를 받고 싶으면 먼저 인사를 하세요.’
이들에게 인사를 받는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 상대에게 자신이 감히 무시할 수 없는, 먼저 아는 체할 수밖에 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픈 심리인가. 그러니 인사를 못 받았을 때 그토록 자격지심 버튼을 눌린 듯 반응하는 게 아닐까. 이는 결국 내가 어리다는, 학생이라는,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약자라는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경험상 약자를 상대로 ‘인사’와 같이 큰 의미 없는 행위에서 스스로의 권위를 확인하려는 버릇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 어떤 분야에 있어 실력이나 업적, 인품, 지혜 등으로부터 비롯된 ‘진짜 권위’ 따위는 요만큼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는 ‘인사를 안 한다’는 이유로 인상 구기는 이들을 멀쩡한 사람으로 대하기가 어렵다.
가끔 편의점에 들를 때면 시들한 표정으로 나를 힐끗거리기만 하거나,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라고 중얼거리는 아르바이트생들을 보게 된다. 나는 그들의 그런 태도가 불쾌하기보다 먼저 측은하게 느껴진다. ‘저분도 온갖 진상들에게 시달리셨겠구나...’ 내가 편의점을 떠난 후에도 그들은 수많은 저질 손님들을 몇 시간씩 상대해야 할 것이다. 인사를 하지 않아서, 어쩌면 그보다 더 사소한 이유로, 때로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들을 괴롭히는 이들이 줄을 서 있을 것 같다.
논쟁의 여지는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이 최저임금으로 내키지 않는 인사까지 강요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사람을 봤으면 인사를 좀 하자’는 말로 유치하게 자신의 권위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의 시도를 끈질기게 좌절시키기를 바란다. 오늘도 여전히 으슥한 편의점에서 밤을 지새우며 ‘인사를 하자’는 압력과 싸우고 있을 이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