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된다는 것이 뭐길래
To be yourself is all that you can do
Audioslave - 'Be Yourself' 중
나는 아직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고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처음 만난 사람들을 대할 때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그런 걸 많이 느낀다. 업무상 미팅을 하거나 불쑥 낯선 이들과 마주해야 할 때, 평소의 내 행동과 목소리에 한 겹의 필터를 씌우게 된다. 말을 더 크고 명료하게 하려고 하고, 약간은 무성의한 듯한 표정과 몸짓으로 은근히 ‘당신은 내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식이다.
특히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거나 나를 대하는 데 있어 전혀 조심스러움이 없을 때, 이를 테면 무성의하게 말을 툭툭 던지거나 은연중에 갑의 태도가 배어 있을 때 나 또한 재빨리 태세를 전환해 본래의 나와는 어딘가 다른 모습을 연출하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이게 다 ‘만만해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저자세를 보이면 언제든 저 사람이 나를 밟고 서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동물적인 불안감 때문에.
이런 것도 다 부질없다 싶을 때면 ‘누가 날 어떻게 보던 나를 바꾸진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다가도, 상대의 무례함과 부주의함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금세 태도를 바꾸곤 한다. 단점을 노출하거나 바보처럼 보여도 상관없을 만큼 마음이 편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과 상대해야 할 때의 나는 온전히 나여야 할까, 아니면 적당히 가면을 써야 할까.
Be yourself. 나 자신이 된다는 게 뭘까. 그게 뭔지는 몰라도, 누구를 만나든 나 자신으로서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를 이렇게 볼까, 저렇게 볼까 안절부절못하는 건 정말 싫다. 호감 있는 사람, 다가가고 싶은 상대를 대할 때 나는 유독 나 자신으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린다. ‘이런 건 좋아하시겠지? 아, 이런 건 싫어하실 거야...’ 이 같은 계산 아래 움직이다 보니 신발 신은 강아지마냥 걷는 법도 까먹고 고장난 꼴이 된다. 계산 없이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말과 행동이 어색해지고, 그런 내 부끄러운 모습을 상대와 나 스스로에게 들켜버리는 것이다.
영상 콘텐츠 촬영 준비로 분주한 어느 저녁이었다. 조명 세팅이 이뤄지는 동안 휴식의 여유를 즐기고 있던 나는, 마침 세트 한 편에 앉아 쉬고 있던 한 스태프를 발견하고 고민에 빠졌다. 기회가 된다면 더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이었기에 다가가서 말을 걸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다. 평소 같았으면 굳이 그의 휴식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자연스레 이야기 나눌 기회가 생기길 기다렸겠지만, 왜인지 그 순간만큼은 당장 말을 걸지 않으면 바보처럼 후회를 남길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망설임에 종지부를 찍은 나는 대뜸 그의 옆자리에 앉아 말을 걸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말을 걸고 친해지겠다’는 의도로 시작된 스몰 토크가 매끄럽게 작동할 리 없었다. 억지로 이어 가던 몇 마디 말을 끝으로 대화 소재는 금방 바닥이 났고, 나는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나 일하러 가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거였나.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마치 처음 본 이성에게 추파를 던지다 거절당한 사람처럼 비참한 심정이었다. 그날 새벽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힘겹게 잠을 청했다.
선생이나 강사는 ‘내가 절대로 갖고 싶지 않은 직업 TOP 5’에 거뜬히 들어갈 수 있는 일이다. 나의 빈약한 지식과 역량으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영 내키지 않을 뿐더러, 많은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는 자리에서 떨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 GV나 강연 자리에서 관객으로서 공개적으로 질문을 던질 각오만 해도 심장이 쿵쿵거리는 새가슴의 소유자다. 그런 내게 한번은 수영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 제작 강의를 맡아 보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평소의 나라면 당연히 내 깜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겠지만, 이때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한 번쯤은 도전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강사직을 덜컥 수락해버린 나는, 이왕 하는 거 어떡하면 내가 바보인 걸 들키지 않고 수업을 잘 진행할 수 있을까 하는 궁리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수강생들의 자기소개로 시작된 첫 수업 시간. 각기 다른 성별, 연령, 직업,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자리인 만큼 자연히 다양한 관점과 생각들을 접하게 되었다. 지겹도록 익숙한 주변 환경을 문득 생경하게 바라보게 된 경험이나, 결혼 생활과 그에 따른 관계의 변화 등 솔직하고 흥미로운 수강생들의 이야기가 꽤 신선한 감각을 일깨웠다. 나는 오래전부터 비혼을 지향해 온 사람이지만, 몇몇 기혼 수강생 분들의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전해 듣고서 ‘어쩌면 나도...’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어쩌면, 나 또한 현재의 내가 언제까지고 굳세게 지킬 거라고 믿는 신념을 허물고 다른 선택을 하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어딜 가나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선 종종 ‘유별난’ 캐릭터를 만나기 마련이다. 이 수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상의 변화나 보편적 이치에 반하는 자신만의 독특하고 굳센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래서 때로는 다른 수강생과 의견 충돌을 빚어 수업 분위기를 흐리기도 하는 불편한 존재. 그런 이를 포함해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는 수강생들을 지켜보다 보면, 그들은 본래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을 애써 연기하지 않아도 괜찮아 보인다. 자신과 다른 존재, 다른 의견을 배척하지 않고 두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런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앞으로 많은 난관을 뚫고 수업을 이끌어가야겠지만, 애써 유능한 강사인 척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열심히 수업에 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떨리면 떨리는 대로.
나는 여전히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리더를 동경하다가도, 때로는 자신의 분야에서 묵묵히 입지를 다지는 사람이 더 멋져 보이기도 한다. 이럴 땐 차라리 누군가 ‘이렇게 사는 게 세상살이에 더 유리하다’고 정답을 귀띔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내향적이면서도, 부족한 사교성을 들키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를 보며 태도를 바꾸다 보니 무엇이 진짜 내 모습인지 잘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고정된 나’가 있다는 믿음 자체가 착각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앞으로도 수많은 타인들을 각자 다른 모습으로 상대하려 들 것이다.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타인의 기분이나 태도에 맞춰 나를 바꾸려고 너무 애쓰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게 ‘진짜’ 내 모습에 가장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