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6. 2학년
꿈을 가장 현실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언제나 돈이었다.
예고 입시에서 크게 좌절했던 것도 돈,
대학 입시를 망설였던 것도 돈,
작가로서의 진로를 고민하는 것도 돈.
2학년 때 들었던 전공 수업에서, 아주 사실적이게 물체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셨던 교수님은 작품에서 재료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거듭 강조하셨다.
'내가 원하는 색을 사용하는 게 중요해. 아무 색이 아니라.'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지.
그리고 여러 물감 제품 중 어떤 것이 좋은 지를 물어봤을 때 교수님은 본인이 잘 쓰고 있는 '올드 홀랜드'라는 제품을 추천하셨다. 붉은 계열 색이 정말 오묘하고 예쁘게 잘 나왔다나. 1학년 때부터 한창 화방 구경을 많이 했는데도, '올드 홀랜드'라는 제품명은 처음 들어봤다. 예쁘다면 한번 사볼 만 하지란 마음으로 호미화방에 갔다. 그러나 유화 물감이 모여있는 섹션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올드 홀랜드'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에 직원분께 '올드 홀랜드'가 없는지를 묻자, 카운터 앞으로 가보라는 답을 들었다. 카운터 앞으로 가자, 마치 귀중품을 전시한 것처럼 놓인 '올드 홀랜드' 물감을 그렇게 처음 보았다. 정갈하게 놓인 '올드 홀랜드' 물감들. 그 앞에 서서 가격표를 뚫어지게 보던 나는, 잠시간 그렇게 서있다가 결국 빈손으로 화방을 나섰다.
올드 홀랜드에서 시리즈가 D 이상인 물감을 사려면 작은 물감 하나당 10만 원이 넘었다. 한 달 용돈이 30만 원이었던 나에겐 전혀 가볍게 시도해 볼 만한 금액대가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학생인 내가 그 비싼 물감을 덜컥 사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음 수업 때 '올드 홀랜드' 물감을 사 온 동기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작품에 색이 중요한 건 알지만, 각각의 좋은 색이 나에게 10만 원 정도씩의 가치가 있나?
이런 걸 고민하는 나는 좋은 색으로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이 없는 걸까?
교수님은 왜 이렇게 비싼 물감을 추천하셨지? 살만하다고 생각하신 걸까?
... 내가 돈이 없는 건가?
한정적인 자본 내에, 최선의 예술을 도출해야 한다
재료비는 미대 입학 전 생각해보지도 못한, 현실적인 어려움이었다. 집이 어려운 편도 아니었고, 용돈도 꼬박꼬박 받았고, 모아둔 돈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재료비는 내게 꽤나 큰 부담이었다. 함부로 돈을 쓰기 싫어하고 비축하는 것을 안전하다고 느끼는 개인적인 성향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재료비 자체가 많이 든 건 사실이었고, 멋진 작품을 위해선 이것저것 여러 재료들을 시도해봐야 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허술한 가왁구를 쓰느니, 돈을 좀 더 보태서 정식왁구를 사는 게 당연했고
고르지 않은 면천을 쓰느니, 돈을 좀 더 보태서 아사천을 사는 게 당연했고
저렴한 신한 물감을 쓰느니, 돈을 좀 더 보태서 홀베인, 마쯔다, 램브란트, 윌리엄스버그, 올드 홀랜드 등
수많은 좋은 물감을 쓰는 게 작품을 위해선 합리적인 소비였다.
하지만 한 학기에 들어야 하는 전공과목마다, 각각의 재료비가 들었다.
그렇게 따져보면 가냘픈 내 통장을 위해선 전혀 합리적인 소비가 아니었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작품을 위해 흐르듯 돈을 쓰는 것은 내게 있어 합리적인 소비가 아닌 것이다.
난 결국 통장과 작품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한정된 자원 내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용돈 30만 원에서 꼭 필요한 금액을 제하고 남은 돈이 어느 정도일지, 방학 동안 알바를 하며 번 돈 중 어느 정도를 재료비에 투자할 수 있을지를 계산했다. 그리고 가진 돈 내에서 시도해보고 싶은 것 중 가장 최선의 선택지를 골랐다. 본 작업이 아니면 캔버스 틀은 재활용해서 사용했고, 정말 정말 이 색은 꼭 필요하다 싶은 것만 마쯔다, 램브란트 선에서 합의를 봤다. 호미 화방에 들릴 때 신중하게 고민하고, 어디서 캔버스 틀을 샀을 때 더 저렴한지 확인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지출했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자, 그리고 싶은 주제가 얼마짜리 일지 계산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다 포기하는 주제도 생겼다. 아끼고 아끼다 보니, 꼭 써야 할 것도 그다지 필요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줄다리기에서 통장이 작품을 이겼다. 내겐 표현하고 싶은 것보다, 돈의 무게가 더 무거웠다.
왜 늘 돈이 무서울까?
늘 최선의 결과를 냈지만, 최고의 결과를 내진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작품이라는 게 꼭 좋은 재료를 써서 나오는 건 아니지만, 재료비를 아끼고 아꼈던 그때 당시의 난 꼭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사지 못하는 좋은 재료들이 워낙 많았기에, 조금 더 좋은 색을 썼다면, 조금 더 좋은 캔버스 천 위에 그렸다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그림이 훨씬 더 멋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조금 더'를 자꾸만 포기했고, 금액 대비 최선의 결과에 머물렀다.
금전적으로 쪼들리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음에도, 미술에 돈을 쓰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그리고 싶은 걸 그려보고자 미대에 입학했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지출이 있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에 돈이 수반된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이었다. 미대에서 원하는 것을 마음껏 그려보자고 다짐했지만, 그 누구도 돈을 많이 쓴다고 탓하지 않았지만, 자꾸만 돈 앞에서 작아진다. 또 지출을 해도 되는 걸까? 지출을 해서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쓴 돈만큼의 가치를 하는 작품이 맞을까?
나는 미술에 이렇게 지속적으로 돈을 써도 되는 게 맞나?
투자한 만큼 결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이 숨통을 조였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진로를 꿈꾸는 것에도 발목을 잡았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도를 하고 무수히 많은 재료비를 쓰는데, 작품을 팔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게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것보다 나에겐 더 무서운 결말이었다.
그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겨우 대학교 2학년 때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