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7. 3학년
입학했다고 좋아했던 게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3학년이 되었다.
자각하지 못할 만큼, 정말로 어느 틈에 3학년이 되어버린 나는 또다시 출발선에 섰다.
분명 이번 학기는 나에게 새롭다. 하지만, 이 새로움에 대한 설렘은 마냥 즐겁진 않다.
나름 고학번인 3학년이 되자 점차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줄어들었다. 이미 대학 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되었고, 교수님의 평가는 어떨지, 과제는 어떻게 나올지 대충 예상되었다.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는 일상들. 실기실과 집을 반복하는 삶. 생각하고, 그리고, 제출하고, 반복, 반복, 반복.
그럼에도 이룬 건 많지 않았고, 나만의 작업 세계는 부재했고, 하얀 캔버스 앞에서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렇게 버텨온 3학년 시절,
그리고 싶은 것도 없고 그릴 자신도 없는 슬럼프가 찾아왔다.
뭘 그릴 거니?
마음이 붕 떠있었지만, 사실 3학년 시기의 작업이 내겐 중요했다. 왜냐하면 3학년 1학기 때 학교 내에서 하는 중요한 전시가 있었다. 기존의 전시들은 수강생이나, 같은 단과대학 학생들만 볼 수 있었으나 이번에 하는 전시는 외부에서도 와서 볼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있는 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벽에 걸린 작품을 감상하는 장면을 상상하자면 설레면서도 한편으로 긴장되었다.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뭘 보여줘야 하지?
'뭘 그려야 하지?'
습관처럼 캔버스를 사놓고, 한참을 그 앞에서 가만히 있었다. 무엇이든 그릴 수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빈 캔버스가 뭐든 그려보라는 듯 날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뭘 그릴 건지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숙제 같은 거였다. 항상 당연하다는 듯 사람을 그려왔는데, 어느 순간 사람을 그리기 싫어졌다. 그러자 그릴 게 없었고, 다시금 빈 캔버스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쩌면 내가 부담을 느끼는 이유는 그림을 통해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이렇게 배워왔고, 그걸 집약해서 전시 때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꼈다. 그림이 주체가 되어 자신을 발산해야 하는데, 나는 자꾸만 나의 가치를 그림에 넣는다. 그림이 말할 기회를 뺏고, 앞에 나와 나 자체에 대해 평가를 받고자 한다. 제가 이 그림을 그렸어요, 잘 그렸나요? 못 그렸나요? 그럼 평가는 잘 그렸다, 못 그렸다 그 둘 중 하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빈 캔버스에 어떻게 담아내느냐가 중요한 건데.
내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한 건데, 그걸 알면서도..
구더기가 피더라도, 장을 담가봐야지
바로 캔버스 작업을 시작하지 못해서, 교수님과의 1차 면담 전까지 천을 작게 잘라 에스키스를 여러 개 그려냈다. 마구잡이로 선을 겹치게 그리고, 그 안에 색을 채우는 작업이 주였다. 그러다가도 이후에 뭘 더 해야 할지 몰라, 조금 그리다 멈춰 서고 다시 색을 채우다 멈춰 섰다. 당연스레 작업 속도가 더뎠고 그걸 나도 알아 답답했다.
그리고 1차 면담 당일이 되었다. 보여드릴 게 많지 않아 의기소침해진 채로 교수님과 1차 면담을 가졌다. 작업에 대해 설명해 보라는 듯 눈짓을 하셨고, 나는 마치 변명하듯 작업을 설명해 나갔다. 색이 많아 유치한 것 같고, 구도는 어떻고... 그런 나를 빤히 보시던 교수님은 이내 시원하게 웃으셨다. 그 웃음에 깜짝 놀라 교수님을 바라봤다.
'나는 어떤 느낌이냐면, 네가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 스타일인 것 같네.'
교수님의 비유적인 표현에 순간 당황했다.
'한국의 식문화에선 된장, 고추장이 정말 다잖아. 근데 그걸 잘 못 다루면 안에 구더기 벌레가 피어나고 그러니까. 그게 무서워서 아예 장 자체를 못 담그는 거지. 그렇지?'
그 말을 듣고 나니 지금 내가 어떤지 한눈에 보이는 듯했다. 결국 나는 우물쭈물거리며 내가 느끼는 슬럼프와 이번 전시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놨다. 교수님은 진지하게 내 고민을 들으셨다.
'근데 그거 생각해 봐. 이번 전시를 오는 관객들과 나중에 네가 직업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가 됐을 때 전시를 보러 오는 관객들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야. 지금 넌 학생이고, 작가 생활은 길잖아. 지금 그려온 것들은 비슷한 형식 안에서 조금씩의 실험들을 하고 있지만, 학생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난 네가 정말 실험적이고 도전적인걸 했으면 좋겠는 거야. A에 조금의 변주를 줘서 A'를 그려내는 게 아니라, 아예 C를 그려봐.'
교수님의 조언은 항상 알쏭달쏭하게 들린다. 하지만 동시에 명확했다.
나는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담그고 싶지 않아 했던 것이다. 평가받을 것이 두려워 아예 그릴 시도를 하지 않았고, 빈 캔버스 앞에서 붓을 잡고 그대로 서있었던 것이다. 전시가 다가오는 불안감이 고조되는 상황 속에서 움직이지 않으니 더 불안해질 수밖에. 그냥 시도해 봐도 되는 학생인데, 나는 어떤 것에 쫓기고 있었던 걸까?
교수님이 떠나시고 다시 빈 캔버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에 잡히는 물감을 캔버스에 무턱대고 찍어 발랐다. 그러자 더 이상 빈 캔버스가 아니게 되었다. 그렇게나 쉬웠다, 빈 캔버스에 무언갈 더해나가는 것은. A를 어떻게 C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방법은 여전히 몰랐지만, 그냥 이렇게 시작해도 되는 거라면 구더기가 생기더라도 장을 담가보고 싶었다. 물감을 바르고 테레핀을 부어 여러 색의 물감들이 섞여나가는 과정을 관찰했다. 흐르는 테레핀을 타고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가는 형형색색의 물감들.. 그 과정을 거듭하자, 캔버스 위에서 물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최후가 아닌, 과정이니까
날 긴장하게 하던 전시 당일이 되었다. 전시된 내 작업은 한식의 맛을 돋워줄 훌륭한 장이라고 보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감칠맛이 부족할 수도 있고, 간이 덜 됐을 수도 있고 훌륭한 장이 아닌 이유들이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새로운 장을 만들고자 시도했고, 맛이 부족하더라도 하나의 장을 만들어 사람들 앞에 내세웠다. 사람들은 내 그림을 보고 다양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그림이지? 궁금해할 수도 있고, 별로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자세히 들여다보며 흥미를 느낄 수도 있다. 그 과정 자체가 전시의 재밌는 부분이다. 가족들, 동기들, 타과 친구들과 전시된 여러 작품들을 구경하며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평가의 자리에서 항상 최후의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내가 지금 과정 중에 있다는 사실을 늘 잊는다.
A에서 B로 넘어간 것도 하나의 변화인데, 이 사실을 깨닫는 게 나에겐 왜 항상 어려울까.
이후의 내 작품은 어떠한 변화를 맞게 될까 다시 기대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