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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my Park Apr 22. 2024

031 실패하지 않는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Jailbreak

"Our problem is not that we aim too hign and miss, but that we aim too low and hit." (Aristotle)


대기업은 혁신을 할 수 없다.


2007년 LG전자에는 신임 CEO가 부임하셨고 회사를 혁신시키고자 하셨다.
전임 CEO가 혁신학교라는 걸 만들어 정신력을 강조하셨다고 하면
신임 CEO는 선진 Process를 믿는 분이셨다.
10명에 가까운 C-Level 책임자들은 CFO만 제외하고 모두 외국인들로 임명이 되었고
회사의 분위기는 구석구석을 모두 혁신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빠르게 바뀌어 갔다.
이러한 신임 CEO의 Innovation Drive 덕분에 나는
i-TDR이라고 이름 붙여졌던 CEO Task에 차출되어 새로운 업무를 시작했다.
i-TDR의 i는 Innovation과 Incubation의 앞 글자를 딴 거였다.
Task 발족 후 한 달 만에 리더셨던 부장님이 다른 CEO Task의 리더로 가시면서
차상위자였던 내가 Task의 리더 역할을 물려받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았다. 순전히 운이었다.
혁신울 프로세스적으로 반복 가능하게 만들라는 미션은 쉬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정말 여기저기 뛰어다녔던 것 같다.

일본 McKinsey 사무실로 찾아가 Innovation 전문가 파트너와 미팅을 하기도 했고

미네소타의 3M 본사, 뉴욕의 IBM 본사에 가서 며칠씩 Full day 워크숍을 하기도 했다.

많은 글로벌 회사들이 혁신을 위해, 신사업 창출을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그걸 제도적으로 어떻게 녹여내어 시도하고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그때 배운 혁신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과 깨달음은 지금까지도 매우 유용하다.


IBM은 EBO(Emerging Business Opportunities)라는 신사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000년에 시작된 IBM의 EBO 프로그램은 Horizon 1(기존 사업),
Horizon 2(신성장 사업), Horizon 3(이머징 사업)으로 사업을 분리 운영하는데,
이 중 Horizon3 신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별도의 독립된 EBO팀을 운영한다.  

EBO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핵심 몇 가지가 있는데
첫 째, EBO팀의 과제는 기존 사업들과는 철저히 다른 프로세스와 버젯을 따른다.
조직은 협업을 위해 기존 사업조직과 분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의사결정 기준과
버젯은 확실히 분리하여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힘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둘째, 2~3년 간의 Incubation Process를 지나면 EBO를 졸업시킬지 말지를
미리 정해진 기준 아래 명확히 의사결정한다.
가령, '2017년 6월 기준 EBO는 xx개'라고 말할 수 있도록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이다.
셋째, 최고 경영자가 직접 관심을 가지고 직접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경험이 많고 사내 외 네트워크가 좋은 임원들을 EBO의 리더로 임명해서 운영한다.
기존 임원들도 커리어 패스에서 EBO팀을 맡아 성공시킨 경험이 있어야
미래 최고경영자 후보군이 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만들어서 힘을 실어 줬다.

그렇게 IBM의 EBO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혁신 신사업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혁신에 관한 세계 최고 구루이신  하버드대학의 클레이텐 크리스텐센 교수는

그의 저서 'Innovator's Dilemma'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들은 기존 사업을 고객의 니즈에 맞게 조금씩 개선을 해나가는
존속형 혁신(Sustaining Innovtion)을 지속하는 것은 잘 하지만

전혀 새로운 접근을 통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은 하기 어렵다.

파괴적 혁신은 대체로 더 단순하고 이익이 적게 나며, 처음엔 시장이 작고,

고객들이 잘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이유로 대기업에서

파괴적 혁신 기반의 신사업은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시도를 해보자고 해도 그쪽에 좋은 리소스를 할당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대기업에서 혁신은 원래 어려운 것이다.

IBM은 이런 대기업의 근원적인 혁신 추진 과정의 단점을 이해하고
EBO라는 별도의 프로그램과 독립적인 Process를 통해 극복하려 한 것이다.


i-TDR 이후, 신사업을 직접 해보라는 미션을 받고 EBO팀의 팀장이 되었을 때

과거 신사업을 많이 추진하셨던 선배님들을 찾아다녔다.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가신 분들이니 뭔가 배울 게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분들은 하나 같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대기업에서 신사업하는 거 아니다. 괜히 고생만 하고 인정받기도 힘들다.

그냥 주력사업에서 본인의 역할을 잘 찾아서 성장하는 게 현명한 거다.

난 분명히 이야기해 줬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참 아이러니 했다.

CEO가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혁신의 필요성을 역설하셨고

별도 조직까지 만들어 시도해 보라고 힘까지 실어 줬는데도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신사업을 어렵게 만든다는 말인가?  


묘한 도전의식이 생겼다.

특정 사업을 푸시하여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어려운 대기업에서의 혁신, 신사업에 도전하여

시스템적으로 잘 되게 만들어 보는 것도 정말 의미 있겠구나.  

그걸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언해주신 선배님들께는 죄송했지만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날 이후 헬스케어, 태양광, 수처리, ESS, LED조명, 웰니스, 로봇, 파워반도체 등
정말 많은 전문가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한 것 같다.

어떤 사업은 거의 900억 원을 투자하여 인큐베이션을 했지만 사업화에 실패하기도 하고

어떤 사업은 2년 남짓 인큐베이션한 끝에 사업조직을 만드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대기업에서 신사업이 힘든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대부분 탄탄한 주력사업이 이미 존재한다.
따라서 신사업을 내가 굳이 하지 않아도 큰 불이익이 없다. 

반대로 신사업을 시도하다가 실패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그러므로 대기업은 태생적으로
혁신을 성공시키려는 열망보다 실패하지 않으려는 두려움이 크다.
그 때문이었다.


성공하는 것은
몇 번의 실패를 거치더라도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그게 성공이다.
성공을 진정 원하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여러 번 실패하여 온몸에 상처가 나더라도

결국 그곳에 도달하여 크게 뭔가를 이룬 삶을 살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창피해하는 것은
거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여러 번 실패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번도 실패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패하지 않는 것은
뭔가를 하는 과정에서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것이다.
실패하지 않는 것을 진정 원하는 사람은
달성할만한 그만그만한 목표를 세우게 되고 정말 큰 문제에 도전하기는 어려워진다.
실패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목표를 달성한 사람은
정말 중요한 큰 혁신은 이루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목표를 빠짐없이 달성했는데도 말이다.

성공과 실패.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힘들다.
어쩌다 실패 없이 성공을 하더라도 지속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Fail Fast, Fail Small 이란 말이 나온다.
작은 실패들을 쌓아나감으로써 성공의 확률을 높여나가는 것이다.
긴 호흡으로 궁극적인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실패의 리스크에 대한 질문을 하기 전에
성공했을 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
나에게, 회사에, 국가에, 인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게 정말 의미가 있다면
그다음엔 성공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면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추진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은 모두 리스크가 된다.
그 리스크들을 미리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차피 그런 리스크들은 지나가 보기 전엔 다 알기 힘들다.
조금씩 추진하고 점검하고 개선하고 하는 과정에서
계속 해결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요소일 뿐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렇게 최선을 다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하게 된다면
그건 시작하기 전에 뻔히 알 수 있었던 그 리스크들 때문이 아니라
시작하기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돌발 리스크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Unknown unknown.

아무리 분석하고 예측하여 전략을 잘 세웠더라도
누가 COVID19으로 온 세계가 Lock-down 될 거라 예상했을까?
Bestbuy, Walmart 등 최고 기업의 차별화 요소였던 오프라인 매장들이
하루아침에 가장 큰 리스크가 되리라 어느 누가 예상했을까?
그들이 뭘 잘 못 한게 아니다.
그냥 자고 났더니 세상이 변한 것이다.
리스크는 예상하는 것이 아니다.
Manage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혁신에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뻔한 리스크 때문에 출발도 못하고
실패의 두려움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
 
실패하지 않는 것과 성공하는 것은 다르다.
실패하지 않아야 하는 건 두려움 때문이고
성공하고 싶은 건 꿈 때문이다.
 
진정 원하는 것이
실패하지 않고 싶은 게 아니라 성공하고 싶은 거라면
실패의 리스크에 집중하기보다는
성공의 방법에 집중해야 한다.
두려움에 집중하기보다는
에 집중해야 한다. 
 
기회를 이야기하다 보면 그 말이 맞다.

그러니 한번 해볼 만하다고 한다.

리스크를 이야기하다 보니 그 말도 맞다.

그러니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한다.

기회도 찾아보고 리스크도 따져보니 둘 다 맞다.

아직 잘 모르겠으니 조금 더 검토해 보자고 한다.

결국,

기회와 리스크의 문제가 아니다.

하고 싶은가 하기 싫은가의 문제이다.

결정은 이미 나있다.


마음 깊은 곳을 잘 들여다보면

결정은 이미 나있다.


PS.
2011년 MIT Media Lab에 새로운 Director가 부임했다.
Joi Ito라고 일본계 미국인이었다. 처음엔 논란이 많았다.
Media Lab의 상징성을 감안할 때 일본계가 헤드를 맡은 것 자체가 놀라웠고
엘리트 교육을 받고 학계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니라 VC 출신을 발탁한 것도 쇼킹했다.
당시 Media Lab은 세상과 동떨어진 연구에 매달리기보다는
세계적인 혁신기업들과 시너지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신 LG스폰서십을 주관했던 나는 Joi와 대화를 해볼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한 번은 Joi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가 밖에서 문을 두드리면 많은 회사들은 먼저 확인을 하고 싶어 한다.

이 사람이 나를 해칠 사람인지 아닌지. 나한테 이득이 될지 아닐지.
문 열기 전에 그걸 먼저 확인하기 위해 계속 시간을 소모한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문을 열고 그 사람을 안으로 들여 잠깐만 이야기를 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그렇다.
먼저 문을 열어 줘야 한다.

과거 많은 사례들이 오버랩되면서 그날 Joi의 말이 너무 공감 갔다.   


(Media Lab, Powered by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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