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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Sep 16. 2024

새벽을 여는 사람

새벽을 여는 사람치고 이루지 못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게 무엇이든.

김밥가게 상호에 웬 '달님'이 들어가는지 의아했다. 무심하게 지나치려는 순간 영업시간이 적힌 유리창에 눈이 간다.

영업시간: 오전 5시- 오후 2시



더위가 길었다. 하루의 루틴을 새롭게 바꿔본다. 새벽과 저녁 시간에 운동과 바깥나들이를 계획하고 대낮에는 무조건 집에 있기로 했다. 오랜만의 새벽 운동이라 이부자리를 걷어차고 나오기까지 무수한 심적 갈등을 마주한다. 뇌가 줄기차게 보내는 타협의 메시지를 뒤로하고 바깥공기 안에 기어이 나를 담는다. 절로 첫발이 떨어지고, 오른발이 왼발을 밀고 왼발이 오른발을 당기며 하루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역시 나오길 잘했어."


새벽이라도 기온은 30도 안팎으로 절대 시원하지 않다. 기온 때문인지 운동량 때문인지 1시간의 조깅 후 전신의 모공이 급하게 땀을 토해낸다. 급격하게 밀려오는 허기에 새벽을 여는 그 김밥집이 떠올랐다. 진작부터 불을 환하게 켜고 영업이 한창이었다. 오며 가며 아침을 먹으러 들르는 손님들로 주인장의 김밥 마는 손놀림이 분주하다. 종류도 많다. 돈가스 김밥, 치즈 김밥, 참치 김밥 등등 손님의 입맛에 맞게 준비하는 주인장 옆의 커팅 기계도 쉼이 없다. 김밥을 말아서 기계 위에 얹으면 기계는 일정한 간격으로 김밥을 한 번에 썰어낸다. 이 신박한 기계의 역할이 크다. 눈치 있는 포장 손님은 기계가 썰어낸 김밥을 포장지에 둘둘 말아 테이프를 붙여 검은 봉투에 착착 담는다.



홀에 앉아 치즈김밥을 조용히 먹으며 오가는 사람 구경에 내 시선도 바쁘다.

출근시간을 넘긴 시간, 한숨 돌리는 주인장 언니에게 말을 붙인다.

"새벽 몇 시에 일어나세요?"

"3시에 일어나요."

달님을 보며 출근하시는 사장님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가게 문고리를 열고 들어오실 생각에 가게 상호를 떠올렸다. 김밥은 재료가 많아 손이 많이 가는데 그걸 혼자 감당해 내는 야무진 손에 감탄했다.

"원래는 세컨드잡으로 하려던 거였어요. 제가 요 근처 사무실에서 경리 업무를 했거든요. 새벽에 일어나서 가게 문 열어요. 김밥재료 준비해 놓고 출근하면 친정엄마가 오후 2시까지 김밥 말아 팔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이게 주업이 되었네요. 안정적인 고객층도 생기고 이제 좀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아요." 흐뭇한 미소 안에 고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가게의 위치는 주거지역도 아니고 학교 밀집지역도 아니다. 한산한 대로변에 낯부끄럽게 서있는 성인샵의 옆자리. 가게 입지로 보나 위치로 보나 건물 월세는 분명 높지 않았을 것이다. 남들은 읍내에서 조금은 치우친 그 자리에 생각하지 못한 것을 사장님은 보았다. 매일 새벽, 대로를 달리는 큰 무리의 화물차가 그 대상이었다. 이른 새벽이라 먹을 것도 마땅치 않은 화물차 기사님들에게 김밥집은 아침을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출퇴근을 하는 바쁜 직장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루아침에 주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는 이들을 주변에 간간이 본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차려 사장님 소리 듣고 처음엔 좋겠지. 시간이 지나면 온갖 비용과 실적에 그전보다 큰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

김밥집 사장님의 지혜와 혜안에 눈이 번쩍했다. 관련 사무실 업무를 통해 화물 기사님의 하루 일정과 식사 문제에 대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생각을 발전시켜 온 덕분일 것이다. 세컨드잡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새벽시간을 활용하여 행동으로 옮긴 그 실행력에도 감탄했다. 일찍 시작한 하루로 얻은 이른 오후의 퇴근이 꿀처럼 달다.  조금은 버겁더라도 두 가지 일을 겸하다가 마음이 가는 쪽으로 옮겨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부담도 적다.




일주일간 새벽 운동을 이어갔다. 왼발이 오른발을 잡았고, 오른발이 왼발을 돌아봤다. 망할 게으름.

다시 마음을 고쳐 잡고 한걸 나를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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