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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Oct 01. 2024

흔들리는 연습

나는 왜

불혹이라고 불혹(不惑)이 아니다. 아직도 아기처럼 넘어지고 울고 짜증 낸다.

요즘 자꾸 넘어진다. 사피엔스와 성경을 동시에 읽어서 그렇다. 일독하고 다시는 돌아볼 일 없다고 생각한 이 두책을 요즘 동시에 다시 본다. ph농도 1과 10을 오가며 진리를 탐하고 의심하고 자꾸 돌아본다. 

다시 창조론과 진화론의 챗바퀴로 회기했다. 

 

우연과 필연


 사피엔스는 인류를 우주 에너지의 진화로 우연히 만들어진 존재로 본다. 자다가 생겨나고 자다가 사라지는 그런 미미한 존재가 인간이다. 자연의 사이클 안에서 그저 그곳에 그냥 있는 존재로서의 인류. 특별한 목적 없이 이야기를 일삼고 모함을 즐기고 무리를 이루고 힘을 경쟁하는 그런 이기적이고 야욕적인 존재가 인간이다. 첫 챕터의 제목이 망치가 되어 뒤통수를 내리친다.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연약한 혼자를 보완하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고 정치와 사회와 종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 실재를 만들며 사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 존재, 바로 현 인류에 대한 이야기다. 한 낱 개미에도 목수 개미, 잎꾼 개미, 군대 개미, 직조 개미 등 그 종류가 허다한데 하물며 인류는 현 인류 하나뿐이었을까. 이를 궁금증으로 삼고 풀어가는 썰이 흥미롭다. 사료를 바탕으로 추측해 낸 스토리 텔링이 참신하다. 사피엔스의 언어, 소통, 이야기, 협력, 전략과 같은 장점은  덩치 큰 네안데르탈인을 지배하고 멸종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비방과 험담이란 독자적 능력 덕분에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피엔스가 북극이라면 성경은 남극이다. 어느 책이든 첫 챕터의 제목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책의 아이덴티티는 보통 첫 챕터와 첫 문장에서 드러나기에 그렇다. 

신이 세상을 창조한 이야기, 즉 창세기는 성경 구약의 첫 챕터에 자리한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하나님이 만든 세상의 모습과 창조과정을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는데, 이곳에 등장하는 인류는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이 아닌 아주 중요한 동물이 된다. 

천지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을 닮아 만들어진 인류다. 개개인의 창조에는 신의 의미가 있고 의도가 있다.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였으면 본인과 똑같이 만들었을까. 혼자의 힘을 보완하기 위해서 여기에도 공동체가 등장한다. 성경의 그것은 사랑과 믿음을 기반으로 선을 이루는 공동체다. 사피엔스와 그 시작과 여정이 향하는 방향이 현저히 다르다.


흔들리는 연습


어느 쪽이 되었든 한쪽이 답이고 진리다. 어느 편이든 결국은 믿어야 한다. 외는 없다. 

50대 50의 확률에서 어느 쪽이 내게 이로운가를 생각해 본다. 나는 흔하고 우연한 존재인가, 아니면 나는 귀하고 유일한 존재인가. 전자와 후자의 삶을 비교하여 갈리는 인생의 두 모습이 쉽게 예견된다. 지나다 주운 선물갈망하던 선물을 받는 이가 받아들이는 의미를 비교해 보면 비슷할까. 

우리는 한낱 돌멩이인가, 누군가 빚어낸 조각인가.

어느 쪽이든 한쪽을 정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보인다.. 


한 신념을 진리라 믿고 거의 평생을 살았다. 그것만 답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아직 쉽게 흔들린다. 이 챗바퀴에 돌아오면 그간 쌓아 올린 성이 와르르 무너진다. 

언제까지 쌓고 무너지고를 반복할지 모르나, 이참에 충분히 흔들려 보려 한다. 진리의 지름길을 갈 것인지, 돌아 돌아 진리에 도달할 것인지, 아니면 도달할 수 있기는 한 건지 알아보아야 알 수 있다. 


날이 흐리다는 핑계를 댔고 집에 있으려고 했다. 그래도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저기 한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나만큼이나 흔들려 보였다. 다가가니 쑥스러운지 줄타기를 멈추던 그에게 한걸음 더 다가갔다. 용기를 내어 물었다. 방금 그거 한번 더 보여줄 수 있냐고. 얼굴 안 나오게 뒤에서 한 장 찍어도 되겠냐고. 그리고 그는 내가 무안하지 않게 줄 위에 올라 현란한 흔들림을 보여주었다. 


흔들림도 연습이다. 많이 흔들려보고 떨어보고 헷갈려 봤을 때 남는 것이 결국 내 것이다. 

흔들리는 것을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겠다. 정신없이 흔들려 보겠다. 

그렇게 평정이 온다. 

불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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