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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Jun 15. 2024

토마토달걀볶음을 만들려면

난관에 맞서는 용기

상대가 누군지에 따라 내게 해주는 말의 무게가 다르게 다가온다.

삶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는 쪽일수록 더 그렇다.


주변을 돌아보면 금수저, 혹은 다이아몬드수저로 태어나 그 부(富)가 마치 본인이 이룬 것 마냥 으스대며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반면, 흙수저로 태어나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잡초뿌리 근성으로 살아가는 위대한 사람들이 있다.


오늘은 그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우리의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다는 것.

우린 8년 전쯤 아기 수영장에서 처음 만났다.


상하이에는 돈을 벌러 오는 외지인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도시에 꼭 필요하지만 누구도 하고 싶어 하지 않을 일들을 주로 한다.

그들을 사회는 농민공(農民工)이라 칭한다.

도시 인프라를 위해 꼭 필요한 인력이다.


외벌이로는 쉽지 않은 객지 생활이다.

그녀는 딸아이를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맡기고 상하이에서 남편과 돈을 번다.

다행히 전문대 학력이 있어 꽤 괜찮은 IT 보조 업무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녀 부부는 실직했다. 


그녀는 이튿날부터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도시락 20인분을 만든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 회사 앞이나 공사장에 가서 도시락을 판다.

내게 은행 잔고를 보여주며 생각보다 벌이가 괜찮다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침에 조금 고되지만 오후는 편히 쉴 수 있다고 했다.

이젠 제법 단골이 생겨 연락처를 교환하고 메뉴를 미리 예약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그녀의 모든 시작에 두려움이 없다. 주저가 없다.


그녀를 따라 식자재 도매시장에 갔다.

전동오토바이에 아이스박스를 싣고 다니는 그녀는 그곳 상인들에게 인기다.

도매상인들은 그녀가 큰 손인 줄 알고 단골을 삼으려고 식재를 싼 값에 준다. 덩달아 나도 싸게 샀다.

(그 후로 혼자 갔는데 그 가격은 안된다고 하더라.)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일거리가 되기도 한다.

늘어놓는 푸념이 습관이 되기도 쉽다.


그녀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다. 무엇보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무작정 발 벗고 손 걷고 뛰어든다. 모든 시작과 결정에 대담하고 망설임이 없다.

난 그녀의 이런 건강한 마인드를 참으로 귀하게 여긴다.

탁상업무만 하던 그녀가 하루아침에 공사장을 일터삼은 결심에 나는 경탄한다.

인생의 모든 난관 앞에 두려움이 없다.

아... 스승이다.


흙냄새와 미나리가 가득한 곳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흙냄새의 정서가 있다.

그녀가 사는 이곳은 나의 그런 정서를 보듬어준다.


말도 없이 찾아온 우리 식구를 보며

글씨 연습을 하시던 그녀의 친정아버지가 우리를 반겨주신다.

몇 글자 따라 써봤지만 쉽지 않다. 역시 붓글씨는 내공이다.


아버지의 축복 메시지

"中韩友谊永存" (중한우정뽀레버)

우리 우정 포에버


점심이 가까워진 시간

여자들은 식사 준비를, 남자들은 다과를.

느린 손이지만 도움이 될까 하여 옆에서 거든다.

그녀는 내가 가장 중요한 일을 한다며 마늘을 까고 당근을 채 써는 내 서툰 솜씨를 칭찬한다.


공용주택의 공용주방은 여럿이 각자의 식사를 만든다.

끓이고 볶고 씻고...

음악이다. 삶의 리듬이다.

생활의 활력은 분명 여기서 출발할 것이다.  

풍성하고 건강한 식사


모처럼 에너지가 충만한 식사를 경험했다.

몇몇 채소들은 그녀의 텃밭에서 온 것이고, 다른 채소들은 바지런한 그녀가 이른 아침 도매시장에서 사 온 것들이었다. 모든 식재에 그녀의 단단함이 느껴진다.  


"계란을 깨지 않고 토달볶을 만들 수는 없는 법이지."


요즘 작가의 꿈이 생겨 매일 새벽 4시 반에 기상한다는 내게 해준 그녀의 말은 내 마음속에 오래오래 간직될 것이다.

그건 그녀의 말이기에.

더욱 힘이 있다.





글, 사진 엄민정

상하이 거주 13년.

한국의 김치와 상하이의 샤오롱바오처럼 익숙한 것들을 다시금 들여다보며 의미를 찾는 일에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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