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속에는 자기보다 등수가 쳐지는 친구를 안심시켜 시험에 너무 용쓰지 않게 하려는 계산이 들어있다. 계속 내 뒤에 머무르기를 바라는 속 마음은 감춰두고 겉으로는 친구의 힘을 빼주는 것이다. 설령 점수가 안 나오더라도 "봐~ 내가 공부 못 했다고 했잖아." 할 수 있는 핑계도 된다.
반면, 자기보다 등수가 위인 친구에게는 팽팽해진 경쟁심과 긴장감을 잠시 느슨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 그러나 예상 밖의 고득점으로 친구를 좌절시키려는 고도의 작전이 기저에 깔려있다. 성적이 친구보다 잘 나오면 '나는 공부를 충분히 못 해도 너 정도는 가뿐하게 뛰어넘을 수 있다'는 우월감으로 드러나고, 그렇지 못하면 공부를 충분히 못 했다고 한 것에 인과응보라고 생각할 테니 지능이나 실력에 대한 의심은 피할 수 있다. 지독한 심리 게임이다.
여초학과를 나왔다.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고 샴푸를 할 때 눈 위에 덮어주는 천조각을 통해 그 당시 유행하던 아폴로 눈병이 내 눈에 옮았다. 유행병이라 일주일간 학교를 병결했다. 수업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제일 친했던 애한테 강의 노트를 보자고 했을 때, 그 아이의 떨떠름한 속마음이 얼굴에 비쳐 적잖이 실망했다.
자격증 시험이 있는 날, 나는 그 아이를 시험장에서 보았다. 늘 붙어 다녀 남들에게도 단짝으로 알려진 우리는 서로에게 자격증에 관한 언급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시험장에서 만나다니.
그 아이는 나를, 나는 그 아이를 멀리서 못 본척하였다. 그리고 다시 만난 학교에서 우린 예전처럼 단짝으로 지냈다.
시작은 초등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간, 기말, 반배치, 성취도 등등의 시험과 성적표의 공개가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시험마다 우리는 책상에 가방을 올려 자신의 답안지를 상대로부터 철저히 가리는 법을 배웠다. 초등 시절 내 가방은 보따리를 닮은 백팩이었다. 어깨 끈에 쿠션이 거의 없어 가방에 중량이 더해지면 어깨가 아프고, 얇은 재질 탓에 책 모서리가 등을 찔렀다.
너와 나를 가로막던 내 가방은 우리의 우정만큼이나 쉽게 흐물흐물 무너져 내렸다.
아이가 학교에서 시험을 쳤다. 데자뷔다.
최재천 교수는 시험이 교사가 학생을 평가하는 가장 간단하고 안전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의 신간을 읽다가 인상 깊은 구절을 발견했다.
나는 미국 어느 인디언 보호 구역의 학교에 새로 부임한 백인 교사의 일화를 늘 가슴에 품고 산다. 시험을 시작하겠다고 하니 아이들이 홀연 둥그렇게 둘러앉더란다. 시험을 봐야 하니 서로 떨어져 앉으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이렇게 말하더란다. "저희들은 어른들에게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함께 상의하라고 배웠는데요."
<숙론, 최재천>
어려울 때는 손을 잡자, 함께 해야 한다, 힘을 합치자 등등 온갖 서적에 저명한 이들이 한결같이 외치고 있다. 그런데 실제 교육에서 이루어지기 힘든 까닭은? 갈수록 개인주의와 혐오와 차별이 판치는 이유는?
미국 원주민의 가르침도 품앗이와 나눔이 생활이었던 우리 선조들의 농업 사회와 같이 실제 삶에 덕이 되는 참 교육이었다. 어쩌면 학교는 옛 것을, 옛 생각을 다 버리고 있다.
눈에 띄는 티브이 여행 프로그램이 있었다.
장소는 마다가스카르. 한 청년의 이야기가 기억에 오래 머물렀다.
그곳의 청년들의 각자의 목표에 맞춰 배를 한 대씩 만들고 있었다. 각기 목표와 일정이 다르기에 필요할 땐 서로 돕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며 건강한 협동을 이뤄갔다. 성실과 근면으로 채우는 나날들은 배를 물에 띄우는 그날을 속히 불러왔다.
여행 크루들이 이곳에 도착한 날은 배를 완성한 한 청년이 처음으로 배를 바다에 띄우는 의식(진수식)을 치르는 날이었다. 온 동네 사람들은 밤새 춤을 추며 그날의 주인공을 축하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의 힘으로 그 거대한 배는 바다로 천천히 밀려들어갔다. 한 청년의 꿈을 마을 전체가 응원하고 모두가 제 일처럼 기뻐했다. 사돈이 땅사면 배 아픈 우리네의 경쟁과 다툼에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수년간의 톱질과 못질로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원재료 자체로서의 아이는 잘 다듬어진 선박과 닮은 어른이 되었다. 특별한 교육기관이랄 곳이 없는 현지에서는 인간 본성의 공허함과 내면의 빈틈을 배의 틈과 틈을 이으며 매워갔다. 배가 완성되는 시기는 대략 이들이 성인이 되는 시기와도 맞물렸다.
배의 완성과 인격 완성의 합일.
다른 집 아이를 이기고 누구를 뛰어넘는 것이 '목표'의 정의라면 그들에겐 목표는 없었다. 경주를 완주하는 것, 즉 배를 물에 띄우는 것 하나만으로 그들의 젊음은 의미가 되었다. 느리면 느린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포기를 모르는 근성, 그뿐이다.
세상 모든 교육이 궁극적으로 맞닿는 곳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공원에 새로 심긴 묘목이 바로 서고 잘 정착하기 위해 죽은 나뭇가지는 지지대가 되어 돕는다. 받쳐주는 힘은 쓰러지는 힘을 넉넉히 이긴다. 끝을 모르는 낙하감과 앞이 안보이는 막막함이 있다면 반드시 손을 잡아주고, 몸을 지탱해 주고, 걸음을 이끌어 주는 이도 있다.너는 너의 최선을 다하고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한다. 경쟁 그 반대편에도 삶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