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산티페 vs 둘시네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 세 가지 중 한 가지

by 엄민정 새벽소리

살면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세 가지가 있다. 삶과 죽음이 그 두 가지이고, 남은 하나는 바로 '결혼'이다. 삶과 죽음에 필연적인 하늘의 개입이 있듯이 결혼도, 짝도, 하늘이 간섭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듯하다. 결혼할 것처럼 오래 만난 연인이 하루아침에 헤어지고, 오래 만나지 않은 커플이 금세 결혼을 결정하기도 한다. 결혼에 작용하는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비록 복잡해도 처음엔 명쾌해 보이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져 어느새 인간의 머리로는 알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너무 잘 맞아서 결혼을 결정한 커플은 맞는 게 하나도 없는 부부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상대가 내게 좋은 배우자인가를 묻기에 앞서 내면을 향한 물음을 던져본다. 나는 나 같은 배우자를 감당할 수 있는가. 상대는 다시 결혼해도 나를 택할까.


반쪽과 반쪽이 만나 온쪽을 이루었다는 생각은 상대를 종종 컨트롤하려는 모습으로 드러났다. '내가 너, 네가 나'라는 생각은 내 기준을 상대에게 요구하는 좋은 변명이 되었다. 정작 나는 고기를 먹고 탄산음료를 찾으면서도 상대가 그러는 것은 기어코 말려 말싸움을 내고 만다.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나트륨과다를 이유로 밍밍한 콩나물국으로 대체하고 있는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이러는가. 건강을 위해서라고 하기엔 다툼으로 오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 그 또한 건강에 좋지 않으니 경중을 따지기 전에 애초부터 선택하지 않은 화평을 탓한다.

결혼 초의 잦은 다툼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나와 같은 사람을 나와 다른 사람으로 분리하여 받아들이는 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상대에 대한 기대는 자연히 줄어든다. 백번 맞고 백번 옳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실제에는 갭이 있기 마련이다. 나와 같지 않은 모습에 대한 비난은 잔소리라는 형태로 자주 나타났다. 집안 제일의 잔소리꾼이 되어버린 아내이자 엄마는 어느새 함께 있으면 불편한 존재가 되고 만다. 나긋나긋한 여성이 전통적 현모양처 여성상으로 잔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주관이 강하고 고집이 센 아내는 어딘지 딱딱하고 뾰족한 감촉이다.


소크라테스 아내 크산티페에 대한 평가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그녀가 정말 참을 수 없는 잔소리꾼이었는지 그녀의 말을 들어볼 수 없는 것이 한탄스럽지만, 아들마저 엄마의 잔소리를 견디지 못했다고 한 걸 보면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꽤나 애처가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전해지는데, 어찌 보면 그녀의 악명 높음에 소크라테스는 동의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기록으로 남아있는 그녀의 지독한 행실은 결과적으로 남편을 철학자로 만든 데에 기여를 했다는 시선들이 주도적이다. 소크라테스를 시대의 현인으로 만든 중심에 그의 아내가 철학 뮤즈로 자리 잡고 있었을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꼬투리와 트집 잡기가 우리 사이에 습관이 되어버렸듯이, 우리의 밤산책에서 서로는 각자 다른 것을 본다.

내가 우리의 시간과 이야기에 집중할 때 남편의 의식은 종종 다른 곳에 가 있곤 한다. 그의 의식은 집 주변에 새로 들어선 술집에 있고, 잘 되는 식당의 테이블의 회전율을 계산하고 있다. 새로 짓고 있는 건물을 보면 ‘뭘 짓소?’하고 물어보며 나 외의 모든 것에 넉넉한 관심을 두루두루 뿌리고 다닌다.

나의 관심이 그의 관심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를 거쳐 밖으로 빠져나가 버리는 흐름에 맥은 자주 끊기지만, 이젠 그마저도 익숙해져 버릴 만큼의 시간이 지나갔다.


남의 일을 입에 담는 법이 없는 남편이 친구 부부의 일을 언급했다. 주방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에 찬반이 갈려 오래 미루던 결정은 결국 친구 아내의 의견대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그 후 분개한 친구는 와이프와 3개월간 말을 안 했다고 한다. "그놈이랑 살아주는 사람은 OO밖에 없어." 하며 이어지는 남의 아내 찬미에 나의 심기가 돌연 불편해진다.

“나니까 당신이랑 살지?” 익살스러운 물음에 “몰랐어? 나니까 당신이랑 사는 거야~” 하고 남편이 맞선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근거를 들어가며 꽤나 진지하게 나눴다.


편력기사 돈키호테가 그의 정조를 지키는 대상, 귀부인 둘시네아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름답다. 오로지 둘시네아를 위한 그의 모험은 어떠한 어려움에 맞서도 사랑의 힘을 발현한다. 실제로는 교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농가의 평범한 여인이지만 돈키호테의 시각에선 세상 제일의 미녀이자 귀부인이다. 그녀를 실망하게 하는 삶은 그에게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지금의 고난은 기쁨이고 수양의 시간이다. 그의 절대적인 사랑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그 사랑은 현실의 가변적 대상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강렬하고 지속적으로 영원할 수 있다. 그 사랑 덕분에 돈키호테는 살아갈 이유와 목표가 생긴다.


아내의 잔소리가 남편을 소크라테스로 만들기 위해서는 남편의 강한 멘털이 필수적이다. 약한 멘털로는 잔소리에 견뎌낼 수도 없으며, 히스테리, 노이로제, 트라우마로 발현되어 언감생심 소크라테는 잊어야 할 수도 있다. 행여 약한 멘털이 경로를 틀어 광기의 방향으로 잘못 틀어 돈키호테가 된다면 과분한 사랑은 받겠지만 돈키호테의 광기를 감당해야 하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맨 정신으로 살자니 아내를 참아내기 힘들고, 제정신이 아닐 때에야 비로소 원하던 사랑을 얻는 실제와 허구인물의 표상이 오늘도 나를 그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하게 한다.


남편을 소크라테스로 만든 것은 크산티페이지만 돈키호테를 미치광이로 만든 것은 둘시네아가 아니다. 잔소리는 지금처럼 유지하되, 과분한 사랑은 남편이 미쳐야만 가능한 것으로 단순하게 인정해 버리니 사랑싸움으로 애면글면할 일은 없어 보인다.

결혼 12년, 생일엔 반드시 미역국을 먹어야 하고, 아내가 다려준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하는 것을 본인의 권리로 생각하는 동시에 아내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남편이 만 12년째 내 옆에 있다. 빳빳한 와이셔츠를 갑옷처럼 입고 노트북을 검처럼 어깨에 둘러맨 채 떠난 출장길의 뒷모습에 편력기사 돈키호테가 떠오른다. 설령 크산티페를 떠오르게 하는 아내일지라도, 돌아와서는 둘시네아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다시 봐주길 바란다. 마음먹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하고 귀한 일이라는 것을 기념일을 맞은 김에 다시 상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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