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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Jul 10. 2024

[단편소설]후회

죽고 나니 후회가 되더라

나는 죽었다. 정확히는 자살.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 생각한다. 삶이 힘들었으니까. 사는 것과 죽는 게 다를 바 없었으니까.


 "이걸 보니까... 약간 후회되기도 하고."


 밧줄에 목을 맨 후 새하얀 방 안에서 눈을 떴다. 폭신한 침대와 주변 가구 배치가 익숙했다. 어렸을 때 살던 집과 같았으나 새하얗다는 것. 그게 달랐다. 죽으면 색깔이 사라지는 걸까.


 여기에 살 때... 어렸을 땐 참 행복했는데. 걱정 없이, 사회의 일원으로 겪을 불안도 없이. 남들이 나를 그렇게 괴롭히지 않았었는데. 그냥 해맑게 살았었는데. 어른이 되면 왜 그게 힘든 걸까.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한번 사는 인생 멋지게 살아보고 싶었는데.


 -누굴 원망해?


 ".......?"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 자세히 보니 천장에 커다란 스피커가 달려 있다. 중성적인 목소리가 방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후회할 거면 왜 죽었어?


"......누구... 세요?"


 -그건 알 필요 없고.


- 너는 이제부터 몇 가지 선택을 하게 될 거야. 그것만 하면 영원히 쉬게 해 줄게.


 영원히.


 라는 말에 실소가 나온다.


 "무슨 선택인데요?"


 -간단해. 네가 다음 생을 살고 싶은지, 아니면 그냥 영원히 소멸될지 선택하면 돼.


 생각보다 무거운 주제는 아니라 다행인가. 자살했으니 벌이나 받아라! 같은 말이나 할 줄 알았는데.


 너무 질문이 쉽잖아.


 "음....... 저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당황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 음, 잠깐만. 천천히 생각해 봐. 천천히. 너는 영원히 소멸하는 거야. 너의 생각도, 신체도, 기억도 영원히!


 "괜찮다구요."


-......뭐가 괜찮아?! 너 완전히 사라진다니까? 다시 살아보며 삶을 바꿔보고 싶지 않아?

 너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이미 한 번 살아봤으면 됐어요. 그저... 삶을 더욱 멋지게 살 수 있었을 거란 후회는 되네요."


-........


 내가 생각의 방향을 완곡히 정한 탓일까. 스피커는 침묵과 소음만 치지직 나올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몇 분이 지나고. 따분해진 나는 방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방 안은 익숙하고 그리웠던 것들이 가득했다. 옛날 교과서, 만화책, 생활용품. 그리고 가족사진.


 이땐 우리 모두 다들 젊었네. 신기하다.


 이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순수한 감상을 할 때 즈음.


 -어때. 돌아가고 싶지. 다시 살아보고 싶지. 후회되지? 그렇지?


 "........"


 -그래. 지금쯤 자살한 게 후회되고 그럴 거야. 이때의 너는 참 행복했는데. 왜 그렇게 삶을 끝냈을까?


 "그건 그냥....... 네, 맞아요. 후회돼요."


 -왜 후회되는데?


 "그때의 저는 삶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살 바엔 죽어서 편해지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스피커 뒤에서 누군가가 웃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그냥... 다시 사는 것을 선택해도 될까요?"


-아니. 안 돼.


"......."


 -내가 너한테 선택권을 다시 줄게. 생각해 봤는데, 너는 이게 맞을 것 같아.


 ".......?"


 "그게 무슨 소리......."




 -돌아가면 알게 될 거야.




*




눈을 뜨니, 소독약 냄새가 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족들이 보였다. 꿈에서 본 가족사진과는 꽤나 달라진 모습. 나이가 든 모습. 나를 위해 희생하다 몸마저 굽어 버린 모습.


 나를 부둥켜안고 뭐라 말하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두 번째 삶을 얻었다는 복합적인 감정이 나를 물들인다.


삶이란 내가 꾸려가는 것이다. 삶도, 죽음도, 생도, 현재도.


 죽음까지의 과정을 아름답게. 죽어서 후회하지 않도록 다시 한번 주어진 삶을 멋지게 살아야지. 그러다 늙어 몸이 굽을 즈음에...... 나도 모르는 새에 삶이 끝나겠지.


그렇게 예쁘게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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