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나 나부랭이)
드디어 신임 회장의 임기가 내일부터 시작된다.
직제가 개편되면서 우리 부서는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부서가 신설되고 내 업무는 다른 부서로 이관된다. 신임 회장의 측근들이 계획한 대로, 기존의 질서를 뒤엎는 대대적인 인사가 곧 시작할 것이다.
나는 그 혼란의 소용돌이 속, 주된 희생양인 일개 직원으로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무심코 던져진 돌에 맞아 죽는 무기력한 개구리와 같은 처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리저리 (마음속으로) 발버둥 치며, 하찮은 어필(전 직원이 다 제출하는 선호 부서 신청서 하단의 고충란에 적어낸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으니 제발 서울에서 근무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제출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부지런하게도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 불안이란 녀석은 새로운 문제를 만나 전력을 과소비하며, 일할 기운조차 남기지 않는다. (일하기 싫은 합리적인 원인 제공 땡큐)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부담을 떠안고 싶지는 않다. 모험해 볼 만한 가치는 있을지 몰라도, 파급력을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감당하기 두렵다.
가장 큰 우려는, 회사 특성상 지방 근무지가 계속 개발됨에 따라 파견 근무로 인해 아이를 돌보기가 어려워지고, 그로 인해 생계가 위기에 처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애초에 이 회사도 내가 원해서 온 것이 아니라, 여러 우연이 겹친 결과였다.
그리고 장애아를 키우면서 잦은 휴직으로 이젠 그만둘 수밖에 없겠다고 자포자기할 때마다, 휴직 관련 규정이 나에게 유리하게 개정되었고, 마치 미래를 예견하고 이곳에 꼭 붙어있으라는 것처럼 회사원으로서의 유효기간이 연장되었다.
혹독한 사회생활 체험을 한 후 세 번째 직장인 이곳에 정착한 지도 벌써 햇수로 20년째. 신입 시절, '가면 큰일 나' 부서에서 '절대 발 담그지 마' 업무를 도맡아 하며 고생한 것을 트로피 삼아 버텨왔고, 아픈 아이가 태어나자 이래저래 장기 휴직자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가 되었지만, 여전히 잘리지 않고 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나의 곱절의 급여를 받던 남편이 있었기에 '최대한 버티다가 정 안 되면 그만두면 되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남편이 갑자기 퇴사하고 나니,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 끈을 놓았더라면 우리 가족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인다.
문득, 비교적 안정적인 이곳에 보내진 것이 내 인생 설계도에 미리 계획되어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나에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보루’로 주어진 준비된 자리인 것처럼. (남은 라이프 5개 중에 3개... 코인을 넣으시오!)
오늘 팔순을 넘긴 아빠가 엄마를 돌보기 위해 여섯 번째로 도전한 요양 보호사 시험에서 드디어 합격통지를 받았다는 기쁜 소식이 도착했다. 아빠의 학습능력 감퇴로 걱정했는데 퇴사 후 실업급여 지급 가능 기간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합격하셨다.
갑자기 성경구절이 떠오른다. 하나님께서 작은 들꽃조차 돌보시고 입히시니, 하물며 우리를 더 소중히 여기고 돌보시지 않을까 하는 내용의...
그러니 내 삶의 변화들은 나 나부랭이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충실하자.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