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반짝반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보나 Aug 23. 2024

노을을 보며 아들을 기다리다가

저녁노을을 보며 아들을 기다린다. 태백 준령을 넘어가는 해넘이가 남기고 간 주황빛과 푸른빛의 그라데이션을 보며 눈을 식힌다. 바람이 선선해지는가 싶더니 그래도 뜨거운 날이었다. 아파트 공사장 망치 소리가 다 저녁에도 꿋꿋하게 쾅쾅 거리며 귓전을 때린다. 퇴근들 안 하고 무엇하는지. 더위를 피해 남겨둔 작업을 저녁 바람맞으며 마무리하는 걸까. 해가 넘어갔다고 공기가 다르다. 차창을 열어 환기를 한다. 하루 온종일 태양열을 흡수한 깜장차의 열기가 신발을 데우고 다리까지 올라와 뜨겁게 열기를 더한다. 에어컨을 켤 때엔 바람구멍에서 뿜어대는 냉기에 집중하느라 느끼지 못했던 뜨끈함이 뭉근하게 끓는다. 고개를 내밀어 주황빛 가을의 바람 향을 맡아본다.


녀석은 안 온다. 이십 여 분이 지나간다. 가게는 바쁠 시간인데 조바심이 나지만 눈요기를 잘 한 덕에 마음이 한결 너그럽다.


배가 고프다며 도시락을 양손에 들고 탄 녀석의 팔뚝이 거슬린다. 학교에서 나무를 옮기던 중 가시가 스쳐 지나갔단다. 나무 막대기로 칼싸움할 나이는 아닌데. 허연 붕대 하나와 살빛의 커다란 밴드 하나가 몹시도 눈에 거슬린다. 손가락이 아닌 것이 어딘가. 시험 전에는 늘 얼굴이 창백해지던 어린이였다. 중학교 들어가서도 시험 때마다 답안지 마킹 실수를 하는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무대에 서는 날이다. 홀로는 아니지만 여럿이라 실수가 더 미안해지는 자리다. 팔뚝의 작은 상처가 내일 연주회 중 실수의 액땜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마나 긴장이 될까. 까만 객석의 가득찬 사람들의 눈동자가 저만 보고 있다 생각될 터인데. 내일은 긴장하지 말고 즐기기를 바란다.  


복이의 오케스트라 리허설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주차장에서 여름과 가을의 경계를 맞이했다. 한낮의 여름이 늦은 망치소리와 함께 힘겹게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건 아침 매미의 노래 소리가 힘을 잃고 가을 풀벌레 소리에 뒤처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엔 매미의 기상 알람도 없었다. 가을에는 풀벌레가 더 울어댄다.


복아 너의 노래를 힘차게 불러라.




매거진의 이전글 체육복을 빨아주세요 주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