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봉 Jul 06. 2024

딸 아들을 너무 차별하는 나의
         아부지

수백 년 동안 내려온 경주이씨 익제공파 종갓집 종손이다

딸만 둘 낳고 아들이 없어 아버지와 남매들에게 서러움도 많이 받았다.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아버지로부터  유산도 받지 못하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종손자 격을 박탈당했다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로부터 뼈 있는 말씀을 들으니 여간 서운했다.


종손인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집안에서 멸시당하고

아버지로부터 재산도 못 받고 무시당하는 저와 아내가 측은하게 보였는지

두 딸들은 없는 아들 부럽지 않게 열심히 공부하고 착실하게 성장해 주어 딸들은 

미국 유학을 다녀온 후 굴지의 외국 회사에서 회계팀장을 맡고 있다.


또 작은 딸아이는 기자가 되어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지금도 계속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원을 다니면서 주말이면 스터디룸과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다.

자녀들이 나이가 차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해주면

그게 효도일 것이지만 아직도 우리 애들은 30을 훌쩍 넘겼는데도 짝을

못 찾고 결혼에 신경을 쓰지 않고 공부만 하고 있으니 내 마음은 속이 타 들어간다.

     

어제는 주말이라 두 딸들이 작은딸이 운전하는 소형차를 타고

어딘가에 나가더니 몇 시간이 지나고, 한참 후에 작은딸 혼자서

집에 들어왔다.   

작은딸에게 “언니는 어디 가고 너 혼자만 들어왔느냐?” 고 물어

보니 “언니는 열심히 공부하라고 집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에서

집에 들어오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일부러 먼 곳에 내려주었다 “ 고 이야기했다.

     

언니가 집과 가까운 카페에서 공부하면, 가깝다 보니 심리적으로

집에 오고 싶어 할까 봐 일부러 집과 거리가 떨어진 카페에 내려놨으니 열심히 공부한 후 전화가 오면 다시 

언니를 차로 데리러 가겠다는 작은딸의 말을 들으니 두 자매가 서로 너무 우애가 있고, 서로 생각하면서 지내니 그동안 잘해주지는 못했어도 두 딸이 대견스럽고 마음 든든하고 자랑스럽다.     


우리 부부는 너무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1970년대 새마을사업장에 돈을 벌러 가고 신문배달과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며, 주경 야독하여 야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동안 쉼 없이 살며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서 아내와 함께 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학점은행제로 대학을 졸업 후 주말반으로

50대 늦깎이에 대학원을 다니면서 우리 부부가 사회복지를 전공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이제 7학년을 밑바닥에 깔아놓은 시니어 세대가 되었다.


자녀들인 두 딸들도 부지런하고 근검한 우리 부부를 닮았는지 어려운 시절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외국에서 공부하고 오더니 바로 외국계 회사에 합격하고

작은 아이는 신문 기자가 되어 취재활동을 하느라 바쁘게 살고 있다.

결혼 적령기는 지난 것 같은데  결혼을 하지 않아 항상 마음에 걸리지만 두 딸들이 서로

보호자와 조력자가 되어 정말 우애 있게 지내는 모습을 보노라면

“잘 키운 딸, 열 아들 부럽지 않다” 는 것 을 실감하지만 그래도 왠지 종손인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없어 아버지와 선조님들께는 불효한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열 아들 못지않게 잘 키워보겠다.   


나는 아들을 낳지 못해 동생들과 아버지 그리고 친척들에게 종손이 아들을 낳지 않았다고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시대가 변했으니 이제 딸, 아들 구별하지 말고, 차별하지 말았으면....                 

작가의 이전글 남동생과 할아버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