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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Sep 21. 2024

동부전선 최전선

    (추억으로 간직된 병영생활)

시골 촌놈이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4시간 타고 가면 내 젊은 청춘시절 푸른 군복을 입고 3년 동안 복무했던 군부대가 나온다.

사회가 혼란스러웠던 1980년 현역입영 영장을 받아 논산훈련소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마치고, 춘천 보충대에서 1박을 한 후 소양강 댐에서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빛나는 작대기 한 개  육군 이등병 계급장을 가슴에 달고, 더불백을 둘러메고 신남에 도착하니 육중한 군용 트럭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도로포장이 잘되어 차량이 지나가도 흙먼지가 나지 않지만, 1980년에는 비포장 도로여서 흙먼지 자욱한 비포장도로를 군용 트럭 뒷자리에 앉아 최전방 산악지대 군 주둔지로 갔다

바로, 그곳이 동부전선 최전방 군사분계선과 비무장 지대 dmz를 사수하는 00사단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자대부대에 배치되어 내무반에 들어서니 선임병들이 나이와 고향, 학력, 그리고 여동생이나 누나가 있느냐?

질문하면서 군기를 잡는다.

때로는 모포를 얼굴에 뒤집어 씌우고 폭행을 일삼는 문제의 선임병도 있고, 툭하면 식사 후 물품 창고 안으로 집합시켜 쇠파이프로 줄 빴다를 치는 무식한 선임병도 있었다


밤이면 잠을 자다가 2시간 간격으로 전투복을 입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외곽으로 보초(초병) 근무를 가야 했고

달 밝은 밤에는 부모형제와 친구들이 그리웠다.

봄이면 att훈련과 칠성고개를 넘어 사격장에서 밤 낮 없이 수천발의 실총사격을 했고, 여름이면 매번 유격장으로 가서 1주일 동안 계급장 떼고 유격훈련을 받았고, 가을이면 월동장비 준비로 바빴고, 겨울이면 동계훈련을 받기 위해 완전 군장을 하고 5일 동안 산속에 들어가 천막을 치고, 난방도 없는 차가운 에서 전선에서 전우들끼리 체온으로 버티면서

훈련을 하면서 나라를 지켰다.


겨울이면 폭설이 자주 내려 가슴까지 쌓인 전선야곡에서 겨울 내내 곡괭이와 삽, 빗자리, 리어카로 눈을 치우는 제설작업을 했다


간첩이 침투하여 철책선이 뚫린 흔적이 있으면 완전군장과 실탄을 장전해 험준한 동부

전선으로 투입하여 간첩한테 적발되면 안 되기에 얼굴까지 위장을 하고 매복근무를 갔던 20대 초반의

젊은 병영시절이 그립다기보다는 추억으로 생각난다.

                (1980년 병영생활을 함께 했던 전우들)


총기와 차량부속 물품 수령을 위해 귀둔리와 군수지원 사령부로 군용 트럭 뒷칸에 화물처럼 타고, 추워서

내부반에서 가지고 온 모포까지 둘러쓰고 밤늦게 귀대했던 영하의 추위 속에도 전우애로 불살랐던 전우들이  이리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서울 동에 살면서 부잣집 아들로 아버지가 자가용을 직접 운전해 부대까지 면회를 오면 그렇게도 부러워했던 어 병장이 보고 싶고 그립다.

가만히,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추운 겨울날 동계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잠시 포즈를 취해

카메라도 귀하던 시절에 찍은 사진인데 고생했던 그날들이 지금 와서 감상하면 몇 장 되지 않은 사진들이

정겹고 소중하기만 한다.


우리 부서는 고급 두뇌들이 모여 산업은행 재직 후

입대한 전하사님.  명문 연세대 재학 중 입영하여 전역 후 회계사가 되어 잘 나가는 한병장님. 외환은행 재직 중 미다 입영한 여수상고 전교 1등 출신 박병장님. 울산대 자학 중에 입영한

최고참 선임 최병장님ㆍ 자봉의 입영 동기이고 고교

동창의 친형이었던  정병장님ㆍ

울주에서 농협조합장을 하는 아버지 덕분인지  항상 성격이 쾌활하고 명랑해 병영생활에 웃음을 준 정병장님은 지금은 울산에서 7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소위 성공했다는 중소기업의 사장이 되었다고 한다


전주에서 조선무약 제약에 다녔다는 송병장님ㆍ

항상 막내로 눈치도 빠르고. 선임들의 기분을 잘 맞췄던 부산의 정주진 병장ㆍ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자봉은 대한민국의 육군 출신이다

육군의 최전선은 경기도 강원도의 동부전선

서부전선 중부전선으로 나누어진다


험준한 산악이 많았던 강원도의 최전선인 동부전선에서 화랑담배와 은하수담배 한 개비씩을

나누어 피우던 80년 초가 고생이었지만 그리운 게

뭣일까!


지금은  육군병장의 월급이 백만 원대이고

내년에는 200만 원 대라고 한다

80년에는 병장 봉급이 4300원으로 내무검열인지

뭣인지. 부대를 깨끗하게 청소 후 군용 트럭에  쓰레기들을 가득 싣고 병영 밖으로 나가 버린 후

라면 한 그릇에 막걸리 한잔 마시고 각각 조금씩

갹출하면 한 달 월급 다 떨어졌다


그때는 백 없고 돈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몸은 허약해도

징집되어 현역사병으로 최전방 최전선에 투입되었다

지금처럼 그 당시에 사병들에게 봉급을. 삼만 원

오만 원이라도 지급했더라면 경제적으로 쪼달리지

않고 전공서적이라도 사서 공부했을 것이다


그래도 야간 불침번 근무와 수시로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어 대학과 대학원 공부까지 하그

은퇴 후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써 올릴 수 있으니 이것이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리요!


3년 동안 동부전선에서 함께 근무했던 전우들은 지금은 대한민국 어느 하늘 아래서 나처럼 그 시절을 생각하고 함께했던 전우들을 그리워

하고 있을까?


이제는 세월도 가고. 너도 가고ㆍ꿈도 가고

사랑도 청춘도 버렸지만 운명처럼 우연히 라도

옛 전우들을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오늘도. 푸른 파도가 거칠게 일렁거리는 동해바다와

단풍이 짙어갈 설악산과 향로봉 군축령. 진부령이여! 

너는 알고 있니?

생사를. 함께 했던 전우들 소식을  알거든

알려주렴!

어윤정 병장과 정주진 병장. 최훈영 병장

최수준 병장 소식을!!!


아! 아!

푸른 군복이라고 한들

여름이면 무더워 팔을 걷어 접었지만

땀이 나  힘들었어도

그래도 푸른 군복의 시절이 그립구나!!



또한 그리운 옛 전우들이여!

 얼굴도 모르는 소녀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위문편지를  소중하게 써서 보내면

우표를 붙이지 않고

무료로 군사우편 소인을 찍어

 답신을 보냈던

수원과 청주 곡성에 거주했던

얼굴도 모르는  미지의 소녀들이 위문편지를 보내줘

삭막하기만 했던 병영생활이

즐거윘는지도 모른다.

 

이제 45년 지난 세월!

 이제 전우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또한, 보고 싶고 그립다.

푸른 군복을 입고 검정 전투화에 철 모를 눌러쓰고

동부전선 칠성고개와 전선을 누비면서 국토방위에 여념 없던  사회 혼란기 1980년!



이제 와서 왜! 이렇게 20대 청춘의 시절이 그리운지!

10월 1일 국군의 날이 다가오니 더욱더 병영생활이 생각난다...

이제는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었던 의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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