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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Nov 22. 2024

고향집을 고치다

3년 전 인터넷 기사를 우연히 읽으면서 국가 보훈처에서는 생활이 어려운 국가유공자들이 살고 있는 집을

기업체의 후원을 받아 국가유공자들에게 매년마다 주거 환경 개선사업으로 낡고 불편한 집들을 개, 보수해 주고 있다.


명칭이 "국가 유공자 주거 환경개선 사업"이다

필자의 부친은 1950년에 현역병으로 강원도 양구에서 이등중사(지금의 병장 계급)로 6.25 전쟁 중이라

전역도 되지 않아 5년 동안 군복무 생활을 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허벅지에 적군이 쏘는 총탄에 맞아 기절을 한 후 깨어나서 다시 총을 들고 많은 피를 흘리면서 살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하다가 전역하여 필자가 28세가 되던 해에 원호처(현:국가 보훈부)에 국가유공자

등록신청을 해 심사 후 국가유공자 6급으로 등록되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아버지가 전쟁 중에 총상을 당했지만, 상이군이라는 부정적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국가

유공자 신청을 하지 않아 다른 분이 신청하여 국가유공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국가유공자 등록을 하지 않아 우리 7남매는 보훈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해 중, 고등학교에 수업료를

내면서 힘들게 공부했고, 여자 자녀들은 더 혜택도 받지 못했다


 암으로 일찍 별세하신 불쌍한 내 누나는 가정이

어려워 초등학교 졸업이 전 학력이다

(집수리 마루)

아버지는 6,25 전쟁에 참전하여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전투를 치르셨지만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할 줄 몰라 수십 년 동안 신청도 하지 않고 자동차도

다니지 않고 인적도 드문 산촌에서 대 여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서  농업과 산촌의 일을 생계로 하면서 꽁보리밥에 너무 힘들게 생활하셨다

더군다나 아버지는 종손에 장손이다

학교를 다니시지 않아어도 한학을 많이 수학해

대학 중용 논어 맹자까지 터득한 한학에 조예가

깊으신 분이다


이렇게  한문과 한학에 조예가 깊어 시골에서 농촌지도자와 리장 면의원까지 당선되는 등

유능하시다


필자가 어렸을 때도 각종 선거가 있으면 선거관리위원으로 이른 새벽에 동이 트기 전에

엄동설한 12월 동짓달에도 선거가 있으면 10리 길을 자전거를 타고 투표장으로 나가 선거 관련업무를 하셨다

알고 보면 이버지는 깨어있는 분 같은데도 불구하고 유교주의와 보수적인 사상이 몸속 깊이 세뇌되어

지구를 떠나 우주에 가는 세상에도 변하지 않아 너무 답답할 때가 너무 많다.


아버지는 내가 장남이고 장손에 종손인데도 불구하고 딸만 낳고 아들을 못 낳았다고 너무 미워하고 차별을 하신다


그렇지만 2016년 별세하신 어머님은 자상하고 합리적이었다

내가 아들이 없다고 아버지가 차별하면 생전의 어머님께서는 아들없는 큰 아들을 차별하고 미워하지

말라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말씀하시는것을  여러차레 목격해 서운했지만 부모 자식은 천륜인데

원망할수 없어 효도했다


남동생 둘은 교통사고와 질병으로 이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에게는 큰딸인 누나가 50대 초반에 암에 걸려

생사를 오고 가는데도 "여자는 출가외인"이라고 아들을 낳은 남동생과 너무나도 많이 편애를 하셨다.

어머님도 별세하시고 자녀들도 3남매가 먼저 부모님 보다 먼저 떠났는데 무슨 아들 손자에 그렇게 미련이

많으신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졸업사진과 어머니 할머님 사진)



아들을 낳은 남동생은 사업운이 없는지

시작한 사업마다 실패하여 결국에는 이혼하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 답과 선영이 모셔진 선산 임야까지 팔아 남동생과 나이어린 네살짜리 조카 찬혁이에게  아버지께서 자식들 모르게 증여해주니 친권자로 되어 있는 남동생 부인이 다 팔아버려 지금은 모두 남의

소유로 다 넘어가 우리 집은 갑자기 가세가 기울여 버렸다


남동생이 이렇게 배우자를 잘못만나 조상대대로 내려온 재산은 결국에는 배우자와 장인에게 다 바친꼴이 되어 버렸고 지금은 혼자 살면서 힘들게

일하고 있다


남동생 이름으로 동생의 부인과 장인이 나를 모함하여

내가 직장에서 해고 되도록 온갖 허위사실로 고소하여

경찰서와 검찰청 검사에게 불러가 하루종일 진술을

하고 조서작성을 한후 무혐의 처분을 받아 엄청나게

고생했다


직장에서나 지인들은 아버지와 가족들을 단절하고

연을 끊고 살아라고 한다


이러한 남동생을 옆에서 지켜 보노 있노라면 억장이 무너지고 화도 나지만

친동생이 저렇게 배우자를 잘못 만나 이혼후 혼자서

고생하고 있으니 친형제이어서 그런지 짠하기도 하불쌍하고 측은하다


이러한 모든 원인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은

보수와 유교주의와 폐쇄적인 남아선호사상에 깊게 빠져서 개화하지 않고 시대에 뒤떨어진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가 모든 전답을 팔아 전 재산을 아들낳은

며느리에게 주지 않았다면 없어져버린 전재산도

그대로 유지되었을것이며 남동생도 이혼하지 않고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유지 했을것이다


이직도 연세가 95세가 되어 보수적이고  폐쇄적으르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이다

필자는 장남에 장손 종손인데도 불구하고 딸만 낳고

대를 이을 아들을 못낳았다고 천대와 멸시를 당하고

살아왔다


현직생활을 하면서 아버지 회갑연 어머님 칠순잔치도

해드렸고 어머님과 남동생들의 장례식도 다 치러두고

심지어는 교통사고로 우리곁을 떠난 남동생의 배필을 찿아 영혼결혼까지 시켜들였는데 이렇게 아들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천대를 받아야만 되는건지!


다른집들은 장남들이 호강스럽게 컸다는데

줄줄이 커 오는 동생들도 입고 먹고 최소한

중ㆍ고등학교라도 진학해야 되는데 고생하시는

부모님과 형제들을 보면서  일찍히 세무직공무원이나 은행원이 되기 의해 대학진학은 뒤로 미루고

독학하여 공무원이 되어 늦계나마 방송대학과

학사편입으로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은 놀러 다니고 쉬는 50대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수년간 휴일도 없이 학교와 직장일을 하느라

바쁜세월을 보냈다


어린시절 부모님이 뙤약볕에서 논ㆍ밭ㆍ산일을

하시면서 다 떨어진 옷에 쌀이 부족해 배부르게

먹지 못하던 시절의 부모님과 가족들을 생각해서

누나와 여동생들의 희생도 컸다


장남 장손 종손인데도 불구하고

단지 대를이을 아들을 낳지 않았다고 아버지에게 종손자격을 박탈당하고 낫으로 목을 쳐 버린다 는 등 언어폭력을 수없이  당 하고 벌초를 하느라 조부모님 산소에 가서 술잔을 올리면 술도 아들 낳은 동생한테 올려라고 하면서 술잔도 못 올리게 학대와 차별을

너무 많이 하셨다

                        <그리운 부모님 사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너무 측은해 자식된 도리로써 부모님께 보약도 해드리고 수세식화장실도 설치해 드렸다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살아오면서 또한 사회복지협의체와 굿네이버스에 집안에 어려운 사연들을 구구절절 써서 신청했더니 하늘이 도와준건지. 조상님이 도와 준건지 아니면 하늘나라로 일찍 떠난 누나와 남동생이 도와 줬는지 모르겠으나

고향집 개보수 선정자로 지정되었다

빈집이나 다름없는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집을  보기좋게 개ㆍ보수까지 해 드렸는데. 아버지는 나에게 만원짜리 한장 준적이 없다

수고한다고 격려한마디 없어 아버지가 원망스러울때가 너무 많다


필자가 태어나 자란 고향집도 15년 동안 사용하지 않아 집 앞뜰 대밭에는 죽순이 수없이 번져 대밭이 되고,

심지어는 부모님이 기도하면서 생활하고 잠을 주무셨던 방까지 대나무 뿌리가 번성하여 방바닥에서는  장판을 뚫고 대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어머님과 형제들이 떠나버린 고향집을 가보면 눈물과 어린 시절들이 떠 올랐지만 이상하게도 누추한

고향집에서 하룻밤을 자더라도 마음이 편안하다.

(씽크대 교체ㆍ전기판넬  설치)

은퇴 이후 조용한 고향에 내려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남동생이 가끔씩 집을 오고 가면서 생활을

하고 있어 정리되지 않은 고향집에 올 때마다 마음이 심란했다.


그러던 3년 전 어느 날, 일간신문을 보니 국가유공자가 어렵게 살아가는 가구들을 대상으로 가구를 개, 보수

해주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신청서를 받아와 아버지와 남동생의 사업 실패로

어려워진 우리 집 이야기들을 자세하게 공모신청서에 글을 써서 접수했더니 재산현황과 주거환경

생활실태를 전산조회와 심사하여 무난히 통과되었다.


서류심사에 통과되어  사회복지협의체와 굿네이버스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1차 현장 조사를

통과 후 2차에는 설계사가 와서 개, 보수해야 할 부분들을 설계하고, 3차에는 공사입찰을 받은

공사업체가 방문하였는데  공사가격이 다운되고 예산이 모자란다고 당초계획과 달리 개, 보수할

부분들을 대폭축소해 버리고, 약속날짜에 약속시간도 지키지 않고 지체되었다.

5월 봄부터 시작한 주거환경개선공사가 11월 12일에 시작하여 24일 끝나는 예정으로

고향집 내부의 살림도구들을 전부다 다른 곳으로 옮기는 조건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주방의 낡은 싱크대를 교체하고 화장실 세면기와 샤워기 설치, 주방을 포함한 방 3개소

천장과 도배 그리고 엄망진창이 된 큰방에 전기패널을 설치하는 작업인데 이렇게 10일 이상

소요되니 서울과 고향을 자주 오고 가는 내 몸도 힘들었다.

방을 개, 보수하기 위해 내부를 뜯어 놨으니 잠을 잘 방이 없어 광주와 읍내 모텔에서 잠을

자면서 폐가로 변해가는 고향집을 일부라도 개, 보수해놓으니 이제는 고향에 내려가면

고향집에서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고, 어머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남동생 들 제사를

고향집에서 지낼 수 있으니 다행이다.


아직은 마당과 대밭에 풀들이 너무 자라 잡동사니와 가시 달린 식물들이 온통 앞마당을

뒤덮고 있고, 대나무 뿌리가 번성하여 방바닥에까지 대나무가 자라고 있지만,

다음 주에는 다니던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나서 고향에 내려가 집안과 마당도 서서히

정리하면서 큰 방벽에는 하늘나라로 떠나신 조부모님과 부모님 남동생들의 사진을 액자에

걸어두고 어릴 적 동생들과 함께 보냈던 추억들을 고향집에서 회상해 보련다.

(생전의 어머님과 하늘로 일찍 가버린 남동생 둘)

어렵고 힘들게  아버지와 남동생의 힘든 사연들을

수기로 작성해  주거환경 개선사업 공모에 신청하여

대기업들이 후원한 2000만원 범위 이내의 지원을 받아 토지주택공사와. 굿네이버스 아동보호기관 등

여러곳에서 지원한 사업으로 고향집 곳곳을 보수하고

새것으로 교체하여 집은 새집처럼 좋아졌다


이럴때 어머님과 남동생들과 누나가 살아 계셨다면

다들 좋아 했을것이며 깨끗한 고향집에서 자주 모였을것인데 다들 하늘나라로 떠나 버렸으니

너무 허전하고 어머니와 누나 남동생들이 보고싶고

그립다

         <세면대)


이제 새집같은 깨끗한 집을 은퇴한 나도 자주 이용할것이지만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는 남동생이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한 고향집에서

편하게 살았으면 한다


그립고 보고싶은 어머님이 지금까지 살아 계셨더라면

어머님이 가장 좋아 하시고 행복해 하실텐데.

고향집을 새롭게  수리하고 가꾸니 생전에 같이 살았던

어머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누나와 남동생이 더욱더

보고싶고 그리워진다


내 어머님과  누나와 동생들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정말 행복할것인데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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