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접어들고 이제 12월과 크리스마스철이 서서히 다가오니 벌써 44년 전 어느 겨울날 강원도 인제에서 34개월 동안 동고동락을 함께 하면서 나라를 지켰던 전우들이 보고 싶고 그립다.
그때는 군 복무도 34개월(3년) 이어서 너무 지루하고 힘들게 느껴져 전역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오늘도 국방부 시계는 가고 있다" 면서 하루하루를 포기하며 병영생활을 보냈습니다.
강원도 전방이라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고. 폭설이 계속 내려, 수세식도 아닌 재래식 화장실에 큰일을
보고 나면 그대로 얼어버려 냄새도 나지 않은 화장실에 총 대신 곡괭이를 들고 그 현장을 수없이 처리해야 했던 가슴 아픈지난날의 추억들도 이제는 그리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전선에 참호도 구축하고 험악한 동부전선 산하를 누비며 철 모를 눌러쓰고 총을 들고 긴장감이 감도는 최전선을 지켰습니다. 푸른 숲이 우거진 신록의 계절에는 칠성고개 넘어 사격장에서 밤낮으로 수천 발의 사격을 하던 때를 생각하면 그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수천 발의 총알을 표적지에 백발백중하고 부대 우수 사격병으로 선발돼 일등병인 졸병이 선배 전우들의 부러움과 시기를 한 몸에 받고 포상 휴가를 가기도 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납니다. 가을에 오색 단풍이 들면 월동 준비로 험준한 동부전선에서 싸리나무 작업을 했던 시절도 있었지요. 계급 없는 유격장에 일주일 동안 출정해 다 떨어진 훈련복에 몸은 상처투성이였지만, 건강하고 늠름했었지요.
진짜 군대생활은 겨울이라고 했던가요. 특히 그곳은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몹시도 추운 곳이었습니다. 겨울이면 연병장에 쌓인 폭설을 삽과 곡괭이, 빗자루를 들고 밤낮으로 지겨울 만큼 치우곤 했지요. 그때는 왜 그렇게도 춥고 배고팠던지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때처럼 겨울이 되고 보니 전우들의 얼굴이 한 명씩 떠오르고, 보고 싶어 집니다. 길고 긴 34개월의 혹독한 병영생활로 강인함과 인내를 배울 수 있었던 내 청춘 20대에
함께 고생했던 전우들이 오늘따라 추억과 그리움이 돼 유난히 보고 싶습니다.
강원 인제 원통.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죽겠구나’라는 군대용 어가 유명한 12사단 병기 근무대에서, 동부전선 최전선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동기들. 그 전우들의 얼굴을 한 명씩 떠올리며 이름을 불러 봅니다. 어윤정·최훈영, 최수준 정주진 병장 등. 43년이 지난 지금도 얼굴과 이름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만 닿는다면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성탄절이 오기 전에 내무반에서)
그 무덥던 여름날 유격장에서 유격훈련을 하고, 영하의 엄동설한에 전선에 나가 얼었던 땅을 파서 텐트를 치고 5일 동안 야전 천막을 치고 숙영을 하면서 동계훈련을 하면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들! 겨울이면 폭설이 내려 수없이 제설작업에 투입되어 눈이 쌓이지 않도록 삽과 빗자루를 들고 밤새도록 연병장과 도로 위를 쓸면서 리어카를 끌고 지긋지긋하게 일했던 청춘의 피가 활활 타던 그 시절이 왜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부대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무장탈영을 한 전우를 찾기 위해 실탄을 장전해서 동료 전우에게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던 슬프고도 가슴 아픈 사연들! 아쉽게도 무장 탈영한 전우는 스스로 총을 쏴 자폭을 하고 숨져 갔지만.... 그날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마음이 아프지만 옛 전우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어디 그뿐이었던가요! 군수품 보급 수령을 갔던 전우들이 차량 전복사고로 사망해 부대 분위기가 썰렁하고 어제까지도 같은 내무반을 사용했던 전우들이 사망해 주검으로 돌아올 때 너무나 슬펐던 일들을 회상해 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내내 험악한 비포장 도로를 군용 트럭을 타고 삼복더위에 지치고, 겨울이면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모포를 뒤집어쓰고, 엄동설한을 극복하며 물품보급을 위해 가리산고개를 넘어 현리까지 다녀오면 어둠이 짙게 깔려 부대에 귀대하면 차디 차게 다 식어버린 콩나물국과
어묵, 차디찬 밥을 뜨거운 물로 말아먹었던 군 복무 병영생활의 추억들,,..
철조망을 뚫고 간첩이 넘어왔을 때 밤잠을 물리치며 컴컴한 동부전선 계곡에서 매복근무를 함께 하면서 20대 청춘을 국가를 위해 불살랐던 전우들이 사무치게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식사 후에는 재래식 세척장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식기판을 들고 스펀지에 빨랫비누를 묻혀 초록색 식기판을 손으로 닦았던 추억들!
모범사범 표창과 향로봉 전선)(
하얀 러닝과 군용 펜티를 손으로 세탁해 1층 내무반 뒤뜰 빨랫줄에 걸어놓고 햇볕에 말리면서 행여나 다른 전우들이 훔쳐갈까 봐 조마조마하게 가슴 졸이던 병영생활!
엉뚱한 사고방식으로 후임들을 괴롭혀 고문관으로 통했던 논산 출신의 0 병장. 군기를 잡겠다고 툭하면 군수품 창고에 후임들을 집합시켜 줄 빳다를 친 그 고문관 선임병도 이제는 보고 싶네요
많은 세월이 흘러 들은 이야기이지만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계약직 군무원으로 부대에 취직하여 입사한 이름은 생각나지않지만 키도 크고 귀여웠던 미스 한(한 양)과 기행사관으로 장교로 임관하여 중위로 전역한 백 중위 님(소대장:창고장)과 연이 맞아
결혼을 해 부부가 되어 어느 하늘 아래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좋은 소식도 있네요..
병영생활을 하다 보면, 그리운 추억도 있었고, 너무 가혹한 군기와 폭력으로 너무 힘들어 탈영까지 하고 싶었던 1980년 초의 최전방 병영생활들!! 당시에는 힘들었어도 70여 년의 삶의 뒤안길을 돌아다보니 그래도 고생은 했지만 생사를 함께했던 젊은 시절의 전우들이 간절하게 생각납니다
지금은 사병 월급이 50만 원 100만 원 심지어 200만 원까지 인상한다는 언론보도가 있지만, 43년 전 병장 월급 3,600 원을 수령해서 외출증 발급받아 전우들과 함께 라면과 막걸리 한잔씩 두 번 먹으면 한 달 월급인지 용돈인지 다 떨어져 바닥났어도 지금처럼 불평 한마디 하지 못했던 80년대 초반의 군대 생활이었지만, 젊은 청춘이 그리운 탓인지 목숨 걸고 나라 지킨 푸른 군복의 현역사병시절과
전우들이 더욱더 간절히 보고 싶고 그리워집니다
지금은 전국 팔도와 해외로 흩어져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 역전에 용감했던 전우들의 소식이 그리워지는 계절 12월이 서서히 다가옵니다
푸른 제복의 청춘 전우들이 자꾸만 생각나고 그립고 보고 싶은 게 이제는 인생을 많이 살아온
탓 이겠지요ㆍ
(엄동설한 겨울철에 동계훈련 때)
많은 시간과 세월이 흘렀지만 과거의 늠름했던 12사단 병기근무대 정주진 어윤정 최수준 최훈영 병장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