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첫날, 근로자의 날이 노동절로 격상되었다
세상은 온통 푸른 기운을 뿜어내며 뜨거운 청춘의 계절로 치닫고 있다. 3일간의 연휴를 맞아 사람들은 산림욕장으로, 한강으로 지방으로 봄의 절정을 만끽하러 떠났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때 카톡 진동이 울렸다.
전직 직장 동료이자 입사 동기인 일연 씨가 보낸 영상이다.
보성 녹차밭 근처 웅치면이 처갓집이라더니, 그곳 논밭의 싱그러운 풍경과 정겨운 개구리울음소리가 휴대폰 화면을 넘어 전해온다.
그는 나와 같이 입사 후 정년퇴직했지만, 아직 돈을 잘 버는 아내 덕에 집에서 편히 쉰다.
게다가 운전까지 잘하는 아내와 전국 방방곡곡 맛집과 명소를 유람하며 산다니, 그 소박한 자유가 내게는 왜 이리도 멀고 부러운 남의 나라 이야기만 같은지. 내 처지를 돌아보니 가슴 한구석에 서늘한 바람이 지나간다.
나의 집 안 풍경은 동료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아내와는 사소한 주장 끝에 큰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라, 나는 어느덧 입을 닫고 눈치를 보는 처지가 되었다. 평생 일을 하면서 은퇴 후 받아온 연금도, 일터에서 얻은 수익도 모두 아내의 손으로 들어간다.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면 화부터 내는 아내, 운전대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그 사람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내게 허락되지 않은 사치다.
결국 나는 혼자 걷는다. 돌이켜보면 이 외로움은 뿌리 깊은 곳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경주 이 씨 익재공파의 종손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문의 대를 잇고 부모를 공양하는 것이 숙명이라 여겼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단지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 둘만 두었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나를 장남이 아닌 남의 자식처럼 취급하셨다.
인덕이 없다는 사주팔자 탓이었을까.
내 평생의 가장 큰 상처는 타인이 아닌 혈육들이 남겼다.
형제자매 간에 가장 우애가 깊었던 남동생 두 명은 교통사고로
누나는 암으로 빨리도 세상을 떠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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